코로나 19와 긴 비로 올해는 내내 히키코모리 생활이다.
고립된 나날은 마음에 여백을 주고,
한가한 시간에 나는 종종 옛일을 떠올린다.
몸을 비틀면서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다 한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내 또래? 아니면 50대 후반은 충분히 되었겠다, 싶은 여자분 블로그였는데.
연출된 듯한 자신의 사진들만 잔뜩 올려놓았다.
흔히 공주 스타일이라고 하는.
마네의 그림에 나올법한 풀밭을 배경으로 해서
꽃무늬 또는 레이스로 장식된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갖가지 포즈를 취하면서 멀리서, 가까이서 찍은 사진들.
비스듬히 앉아 살짝 어색한 미소를 띠고 꽃병이 놓인,
아니면 찻잔과 케이크가 놓인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앉아서 상념에 젖은 듯한 이미지라든가.
모자의 챙에 손을 얹고 큰 나무에 기대어 먼 곳을 응시하며.
혹은 간이역 낡은 의자 끄트머리에 다소곳이 앉아.
아, 재미있고 신기했다.
중학교 때, 그러니까 거의 5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는 1970년 대 초에.
"나중에 부잣집 사모님이 되고 싶으면 지금부터 부잣집 사모님처럼 말하고 행동해.
그러다 보면 부잣집 사모님이 될 수 있어.
혹시 안 되더라도 최소한 부잣집 사모님처럼 보일 수는 있어."
라고 진지하게 충고하셨던 여자 선생님이 계셨다.
건방졌던 나는,
어린 여학생들한테 저런 속물 같은 말이라니!
비분강개했었는데.(그래서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돌고래 울음소리로 떠들면서 천방지축인 여중생 몇에게는 그 말이 먹혔는지.
한동안 웃을 때도 호호, 입을 가리고.
걸음도 사뿐사뿐 걸으려는 애들이 있었다.
(음, 옛날이라는 점을 참작해 주세요 ^^)
그 선생님이 정말 본인이 그런 가치관을 가져서인지,
단지 시끄러운 여중생들을 조용히 시키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사진들을 보면서 까마득한 시절,
선생님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라면서 여러 가지 포부를 갖는다.
"어른이 되면!"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서, 얼른 어른이 되려고 조급해하지.
막상 어른이 되어보면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해서 원래 자신이 어디로 가려했는지 방향을 잃기 쉽다.
동시에 자라면서 바랐던 소망이 꼭 옳은 것도, 가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인생을 많이 살아버린 사람이라고 '나중'을 기약하는 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살아있는 한 누구나 다음에 올 시간을 기대하며 자신에 대한 꿈과 소망을 갖는다.
그런데 종종 옛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에 맞닥뜨린다.
즉, 자신이 기대했던 '부잣집 사모님'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인지,
'부잣집 사모님처럼 보이려는' 욕심만 남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본질은 사라져 버리고 껍데기만 흉내 내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일종의 아류가 되어버린.
내게도 그런 게 있겠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런데 자꾸 자신을 위한 합리화 혹은 변명이 늘어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