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세대의 탄생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두어 달이면 될 줄 알았다.

코로나 19 가 본격적으로 회자될 때쯤 마스크를 쓰면서, 한두 달은 가겠지? 했었다.

차츰 진정되어가던 반년을 보내면서는 이러다 끝나겠지, 낙관했고.

음, 그런데 아닌 듯싶다.


'뉴 노멀' 이란다.

지금까지 알아온 상식이 달라질 거란다.

무념무상.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또 적응하겠지.

팬데믹이 곧 끝나리라는 기대는 포기한다.


세상은 항상 달라져왔다.

속도와 방향이 지금까지의 관성을 벗어났을 뿐.

지금 우리는 역사의 전환점을 통과하는 중일 수도 있다.



기운 넘치는 아이들을 집에 붙들고 있어야 하는 부모님들은 정말 힘들겠다.

한창 활발하게 뛰놀고 또래들과 어울릴 성장기에,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배달 온 밥을 먹으면서 집에서 인터넷으로 학습한다.

이제 막 세상과 접하는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놀고 매일매일 학교에 다니며 셔틀버스 타고 학원에 다녔던,

이전의 어린이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지금처럼 살아가는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어릴 때부터 거의 실내에서 생활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기구를 이용해 학습하고 양방향 소통하는 지금의 어린이 세대는,

아마 그들 특유의 성향과 생활 방식을 키워가게 될 수도 있다.



밀접, 밀집, 밀폐-의 3 밀을 멀리하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인간관계를 인맥의 관점에서 접근했던 이전 세대와 다른 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들에게 팬데믹의 P 니, 코로나 19의 C 니 하는 또 다른 알파벳 세대를 명명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선포하겠지.


이들의 성향과 정치적 입장, 소비 패턴과 사랑의 방식 같은 주제를 연구하고 발표하겠다.

어른들은 좋네 나쁘네, "라떼"를 시전하며 왈가왈부할 것이고.

기업들은 주요 소비자층이 된 이 세대를 겨냥한 신제품을 만들고 홍보 전략을 세우느라 바쁘겠지.



변화가 빨랐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쉴 틈 없이 분주하고 긴 노동시간이 절대선이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서 자유로울 사람 거의 없고,

경쟁하고 성공하며 소유하는, 이긴 자의 가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이만큼 살게 되기까지 필요한 덕목이었을지는 모른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바쁜 동선으로 외향적인 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은 지금 이 시기를 몹시 힘들어한다.

종일 누군가를 만나고 늘 말을 하고 다른 이들과 어울려 맛집을 순례하던 사람들에게 코로나 19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악몽이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의 과정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쉬지 않고 움직여왔다.

집단에 휩쓸려서는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경험이 익숙지 않은,

심신 모두 과부하가 일상이었던 사회.

그 안에서 일어난 갈등은 회피하거나 감정적으로 폭발하거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그냥 덮어버렸다.


성찰과 사색이 필요하다.

나에게 던져진 자극을 찬찬히 소화하고 분석하여.

옥석을 가리고 찾아낸 의미를 체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 19의 시대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지나친 행동과 밀접한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자라난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생생한 감각을 지니고

관조와 여유를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립과 고독은 사색의 기회를 주고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줄일 수 있게 한다.

내면을 튼튼하게 하고 본질과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이다.


이 좋은 것들을 우리 아이들이 꼭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쫓기듯 바쁘게만 살아온 우리 기성세대들도 고립과 여백의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이나 관계에 지나치게 기대 왔던 삶의 방식을 재정비합시다.



그래야 이 재난이 의미가 있다.

삶의 발판이 뒤집힌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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