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 울릉 울릉도

by 기차는 달려가고

오랫동안 울릉도를 가고 싶었는데 뱃멀미 때문에 결심이 서지 않았었다.

그래도 가봐야지?

마음 단단히 먹고 단체여행 상품을 예약했다.

울릉도는 자유여행이 쉽지 않다길래 니이 드신 어머니와 함께 가는데 모험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벌써 십 년도 훨씬 더 전의 이야기이다.



국내 단체관광이 처음이라 내가 몰랐는지 여행 형태가 특이했다.

서울에서 계약한 여행사는 모객만 담당하는가.

서울에서 동해항까지 가는 새벽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계약 여행사와 상관없이 사는 지역 별 탑승이었고.

지독한 뱃멀미에 시달려 초주검으로 도착한 도동항에서는 계약한 여행사와 연결된 현지 여행사 별로 인원을 모았다.

그리고는 다시 각각 지불한 금액에 따라 다른 숙소에 내려주고.

하여간 숙소, 관광, 이동 등등 움직일 때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달랐다.


우리와 첫 식사 자리에 함께 했던 분들은 효도관광 오신 노부부였다.

젊어서 자식 키우고 먹고 사느라 숨 돌릴 틈이 없었는데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여행 다닐 만큼 살 만해졌다고,

뿌듯한 마음으로 노년을 보내시는 부부셨다.

이분들은 나중에도 두어 번 더 마주쳤는데 소박하시고 언행이 반듯한 분들이셨다.

관광 다니면서 산 호박엿을 드렸더니 구운 오징어를 나눠주시면서,

옛날에는 없이 살아도 나눠먹었는데 지금은 너무 자기 것만 챙기고 살아 안타깝다는 소감을.



울릉도 자연경관은 정말 멋지다.

짙고 푸른 바다에 가파르게 솟아오른 지형은 같은 화산섬이지만 제주도와 또 다른 특이함이 있었다.

돌아보는 곳곳마다 찬탄할 만한 특별하고 멋진 풍경이었는데,

날씨까지 좋아서 따가운 햇살 아래 하늘과 바다와 풀들이 선명한 제 빛깔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람은 세차서 풀들은 내내 옆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명소라고 이름 붙인 곳들은 물론 특별했는데,

그곳이 아니라도 울릉도는 모든 곳이 특별하고 아름다웠다.

짙푸른 망망대해에 오두막이 서있는 푸른 섬은 그것만으로도 경이롭다.

용기와 자신을 지킬 힘이 있다면 식량 주머니를 메고 한 달쯤,

아직은 자연 파괴 정도가 덜한 울릉도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신기한 나리분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뼘의 땅도 평평한 곳 없이 가파르게 비탈져있어서.

도대체 깊은 바다 한가운데 뚝 떨어진 이 절벽에서,

예전 사람들은 생계를 이어가려고 얼마나 고단했을까,

깊은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목숨만 이어가기에도 너무나 힘들었을 박하고 또 척박한 땅.



여행사 분은 울릉도에는 먹을 만한 게 없어요, 하셨는데.

재료가 신선해서 양념을 많이 하지 않은 음식들을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지금처럼 울릉도 명이나물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때였는데,

명이나물 장아찌에 반한 우리는 식당에 부탁해서 큰 걸로 한통 사들고 왔었지.

호박엿과 오징어도 당연히.


길들은 섬의 이곳저곳 뚫려 있었지만 마치 두 팔 들고일어난 모양새로 경사가 심해서.

겨울에 눈까지 내리면 몸을 가누며 걷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런 환경에서 울릉도 분들은 밭을 일구고 채소를 키워내신다.



비탈에 기댄 집들은 아주 작고.

바람에 시달리는 지붕은 상당히 낮아서 몸을 곧추 세울 수 있을까, 걱정되는 집들도 있었는데.

어쩌면 눈으로 길이 막히고 휭휭 울어대는 풍랑으로 망망대해 뱃길이 끊긴 겨울 한때를,

비탈에 기댄 어둡고 납작한 방을 하나 빌려 눈에 고립되어 지내보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나처럼 뱃멀미가 심하신지 노인 한 분이 여기 헬기 타고 올 수는 없는가,

호텔 로비에서 직원에게 물으셨다.

나도 궁금하던 차라 귀를 쫑긋 세웠는데 직원분 대답이 소방 헬기가 왔다가도 바람 때문에 착륙을 못해 되돌아가기도 한다고.

그 대답이 기억나서 울릉도에 비행기 활주로를 만든다는 뉴스에도 나는 금세 좋아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번 여름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니, 어쩌나.



뱃멀미가 두렵지만 꼭 다시,

혼자서는 겁이 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울릉도에 가서 길게 머물러보고 싶다.

낮은 방 하나 빌려서 근거지를 삼고 동서남북, 여기저기 다 다녀보고 싶다.

항구에서 오징어를 팔던 억척스러운 할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옛날이야기도 다시 듣고 싶고.

바람에 묶인 뱃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그리운 내 집에는 언제 돌아가나, 애태우고도 싶다.


캄캄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

산비탈에 핀 작은 꽃들.

벼랑을 기어오르며 밭을 가꾸던 농부들.

나리 분지에 콸콸 쏟아지던 차가운 물줄기와

맑고 싱그러운 공기와.

짙푸른 바다가 넘실대던 아슬아슬 해안산책로.


내 꼭 다시 갈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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