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거리로 보면 서울 사람들이 훌쩍 떠나기에 좋은 곳이지만.
가는 길, 오는 길이 자동차로 밀리니 서울 시내를 통과해서 어디론가 간다는 건 쉽지 않다.
평온하게 살아온 우리 집에 외환위기로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 위험이 우리를 어떤 세상으로 데려갈지 가늠이 안 되던 안갯속 같던 시절에.
어머니와 나는 불안을 떨치고 마음을 안정시키려 애를 썼다.
강화도 정수사는 그때 여러 번 찾아갔던 절이다.
서울을 지나, 김포 너른 땅도 지나, 다리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선다.
그때는 초지대교가 없었던 때여서 읍내를 지나서 마을들과 언덕을 넘었다.
그렇게 강화도 동쪽 지역을 빙둘러서 마니산 동남쪽 한적한 동네,
정수사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절 아래에 차를 세우고 계단이 많은 숲길을 학학 숨차게 오르면 작고 예쁜 절,
고요한 정수사에 도착한다.
꽃으로 조각한 문살이 화려하지만 세월에 바래고 삭아가던 작고 소박한 법당.
부처님 앞에 옷깃을 여미며
괴롭고 힘든 제가 왔습니다, 고하고는,
몇 번 절을 올린다.
그리고는 무얼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그냥 앉아만 있다가,
도무지 헤아려지지 않는 앞날을 제가 잘 겪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다시 부탁드리고 법당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 어머니는 절 마당에서 하염없이 저편의 풍경만 바라보신다.
찾는 사람도 거의 없던 산비탈 좁은 땅에 들어앉은 절은 온화하고 편안해서.
절 마당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시끌시끌하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더랬다.
동막 바다는 참 멋지다.
절에서 내려와서 차를 세우고 멀리 물이 밀려 나간 동막 바다를 바라보았는데.
흐릿한 회색빛 잔잔한 바다,
해가 뉘엿뉘엿 내려가던 너른 갯벌로 기억에 남았다.
절을 가기 전에 강화도에 들어서면 읍내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있고 푸짐한 모둠순대 한 접시.
시장에 들러 샀던 새우젓.
서쪽의 외포리까지 가본 적도 있었다.
강화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그때 더 다녀볼걸,
매번 다니는 곳만 다녔네.
강화도에서 나와서는 김포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약암온천에 들렀다.
물도 좋고 그때는 시설도 깔끔하고 중간에 들리기에 위치가 딱 마땅했다.
온천 뒷마당 한 귀퉁이에는 쪼그리고 앉아 소쿠리에 담아온 밤이나 콩, 도라지 같은 먹을거리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주머니들에게서 산 날밤 한 봉지 날름날름 깨물어먹던 기억.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래도 그때가 아직은 괜찮았구나, 싶은데.
이후 급격하게 추락하는 경제적 위기를 겪어내면서도 심신의 건강과 안정을 어느 정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재물은 잃더라도 자신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던 그 시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어찌 세월은 간다.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옛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