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세련된 것, 최신의 것 그리고 번성하고 부유한 것에 끌렸던 것 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들고 재물이 넘치는 뉴욕이나 런던, 도쿄, 홍콩에 가면 심장이 뛰었었다.
뭐랄까,
나도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꿈틀거렸었다.
뭐 생각만 그랬다.
그때는 낡은 것, 뒤떨어진 것, 초라한 것은 가치가 없어 보였다.
그 초라함과 부족함이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었다.
생활인이 되고 세상이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님을 알게 되면서,
(내 맘대로 살아졌다면, 그것이 재난이지.
이런저런 시련과 굴곡을 겪으면서 세상과 사람을 알아간다.)
멋지고 튼튼한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하나를 세우고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재화가 있어야 하는지, 이제 알겠다.
서유럽 도시의 수백 년 된 튼튼한 건물들과 일일이 돌을 깨어 박은 길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교회들을 보라.
동서 교역의 상업적 이익으로, 식민지에서 수탈한 엄청난 재화를 들이부은 흔적이고,
유지를 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쓰인다.
지금처럼 코로나 19 팬데믹이 계속된다면,
지난 시대의 유산이 여전히 잘 보호, 관리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폐허에 마음이 끌린다.
그러니까 희망으로 들뜬 건설의 시대를 지나 기고만장한 전성기를 누리고.
고인물이 썩으면서 사회가 활력을 잃고 시들시들 연명하다가,
마침내 비바람에 부서지고 무너져서 흔적만 남아버린.
이제는 잊힌 고요하고 적막한,
번성했던 시간의 흔적.
대학교 때 익산의 미륵사지에 갔다가 대단히 크고 넓은 절터와 시멘트로 이겨진 탑의 규모에 깜짝 놀랐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무성한 풀밭이 되어 버린 옛 절의 흔적에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약간의 뭉클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로마에서도 콜로세움이나 다른 유적지의 쓰러지고 무너져가는 풍경에 마음이 끌렸었다.
허물어져가는 풍경 속에서,
강건한 돌로 거대한 제국을 세우고,
잠깐의 재미를 위해 노예와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다뤘던 오만방자한 로마인들을 상상해보니.
오, 인생무상.
후배와 경주를 여행한 적이 있다.
경주에 몇 번을 가고도 번번이 늦잠 자느라 놓쳤던 석굴암을 마침내 보아서도 좋았는데.
감은사지의 허허로운 풍경이 더 마음에 남았었다.
날이 흐렸지.
경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갔더니
보통의 농촌, 빈 땅에 서있던 담백한 동, 서, 삼층 석탑 두 기.
의외로 탑들은 컸고,
절터는 넓었다.
얼마를 걸어서 물속의 큰 바위가 보이는 바닷가에 섰을 때 물살이 거칠었다.
홍성의 홍주성을 좋아한다.
옥사를 재건하고 낮은 건축물을 세우기는 했지만 성 안 상당한 넓이가 비어있다.
오래된 높고 굵은 나무들이 변화무쌍했던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무성한 그늘을 드리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한반도에서 물질적으로 가장 번성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인 지도 모른다.
전국적으로 곳곳에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지나간 시절의 유적들을 발굴하고 복원한다.
대부분 역사적 고증 과정을 거치면서 고심하며 복원하는데.
마치 신축 같은 복원의 경우를 보기도 한다.
현재만이 아니라 지난 시절까지 돌볼 여력이 된다는 말이겠지.
때로는 허물어지고 부서진 흔적을 그대로 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정점에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없다.
태어나고 발전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수풀로 덮인 폐사지를 거닐며.
풀벌레 소리와 스쳐가는 바람과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을 뒤쫓으면서.
흙에 묻힌 주춧돌과 깨진 기와 조각으로 남은 한 시대의 자취를 더듬어 보고.
쓸쓸하고 적막한 한나절을 보내는 기분도 썩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