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한동안 제주도에 자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내게 제주도는 이국적인 풍경의 휴양지여서,
늘 중문의 호텔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푹 쉬는 일정이었다.
자동차로 달리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았지.
감탄하면서 말이죠.
차에서 내려 몇몇 곳을 구경하고 맛있는 밥도 먹었다.
하지만 제주도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왔다, 는 점에는 소홀했었다.
한 번은 옥돔을 산다고 제주도를 떠나기 전날 어머니와 서귀포 시장에 갔었다.
해가 질 때 우리는 옥돔 꾸러미를 옆에 끼고 버스를 타게 되었다.
어두운 밤, 버스는 컴컴한 꼬불꼬불 좁은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마을들을 들어갔다, 나왔다.
이곳저곳을 빙빙 돌아 마지막으로 우리를 내려주었다.
자동차 불빛에 드문드문 보이다 말다 하던 돌담들, 슬레이트 지붕들,
휘어진 귤나무와 버스에서 내리던 구부정한 할머니들의 뒷모습들.
버스 안을 감돌다 사라진 알쏭달쏭한 억양들이 여운으로 남았다.
그 뒤에 우리는 큰일을 겪었다.
악전고투.
인생의 쓰디쓴 위기를 지나가던 쉽지 않은 긴 시간이었다.
가끔, 어두운 밤 제대로 보지도 못한 제주도 시골마을이 떠올랐다.
다음에 제주도에 가면 꼭 가보리라.
마지막 방문 이후 10년쯤 흘러 어느 봄날에 제주도에 다시 갈 수 있었다.
남쪽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숙소를 구했다.
올레 길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즈음이었고.
해외여행이 활발해서 제주도 여행은 세간의 관심이 주춤하던 시기였다.
동네 큰길에서 몇 걸음 들어가 있는,
대문을 밀고 들어가는 양옥집인 펜션에 짐을 내렸다.
볕이 잘 드는 마당에는 배꽃이 활짝 피어있었지.
큰 도로에서 언덕을 뱅글뱅글 돌아 내려가 있는 마지막 그 동네는 제법 들판이 넓었는데.
너른 밭에는 유채꽃과 양파가 한창이었다.
들판은 노랑빛으로 흔들리고.
짙은 초록의 밭은 돌담이 둘러싸고 있었다.
바다는 더할 수 없이 파랗게 빛났지.
환하고 따가운 봄볕.
그리고 바람.
아, 세찬 바람.
동네를 둘러보았다.
집들은 있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한가하고 적막한 동네.
바닷가로 나가니 동네 할머니 몇 분이 모여 앉아 일을 하고 계셨다.
바다를 바라보며 카페가 두 곳.
부녀회에서 하는 식당에서는 미역국과 보말죽을 팔았던 것 같다.
양이 많아서 놀라고.
먹다 보니 그걸 거의 다 먹어서 또 놀랐다.
해가 지니 동네는 캄캄해졌다.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적막했다.
꼭꼭 문단속을 하고 어머니와 같이 드러누워서 TV 뉴스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 잠이 깼는데.
여기가 어디더라?
어둠 속에서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사방 어디에도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하고,
도무지 아뭇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치 우주의 빈 공간 같던 진한 어둠과 진공 같은 고요함.
시골마을, 골목 안에 있는 집에서 처음 지낸 날이었다.
그 동네에서 며칠을 보냈다.
푹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고.
하루에 한 번,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중문이나 서귀포로 나가 밥을 먹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바닷가를 갔다가.
동네를 배회하다가.
올레 길을 조금 걷다가.
마냥 빈둥빈둥.
돌담으로 이어진 골목골목에 들어앉은 허름한 집들.
길이 끝나는 곳에는 방파제.
부서지는 물보라, 파아란 바다.
저 멀리에 우뚝 서버린 절벽.
모든 풍경 위에 쏟아지던 밝디 밝은 햇빛.
조각배를 타고 출렁출렁 바다에서 흔들려보고도 싶었고.
멀리 보이는 오름까지 마냥 걸어보고도 싶다면서도.
몸은 가만히 동네에 멈춰있었던 그 며칠 동안.
이웃집 해녀분이 건져 올린 문어를 삶고 물미역을 꾸려 마을을 떠났다.
낮밤 없이 하루 종일 불빛과 소음이 윙윙 떠도는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