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여행을, 1부

마음에 남긴 풍경들

by 기차는 달려가고

혼자 또는 어머니와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친구들과도 꽤 다녔다.

친구들과 다닌 여행은 장소나 풍경보다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더 진하게 기억된다.

음, 너무 떠들었나?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에 동아리 친구와 대구를 거쳐 부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

대구에서는 대모님이 계시던 수녀원에 머물렀는데.

그 나이 때는 수녀원이라는 청결해 보이는 장소가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 어머니가 싸준 튀김 같은 음식이 든 식량 주머니를 기차 안에서 까먹고 남은 것은 밤에 잠옷 입고 먹었는데.

이미 저녁도 잔뜩 먹은 터라 헉헉 배가 불러서 소화시키겠다고 일어나 방에서 뛰었더니.

같이 간 친구는 킥킥 웃으면서

"너는 입을 한시도 쉬지 않는구나,

떠들던지, 노래 부르던지, 먹던지."

이런, 핵심을 찔렀어.


방학하기 전에 여행 간다니까 대구, 부산 남학생들이 오면 꼭 연락하라 했다.

남의 말은 철석같이 믿는지라 당연히 연락했다.

나 왔어^^

대구에서는 근엄한 동창에게서 따로국밥을 얻어먹은 기억이 나고.


문제는 부산.

밤에 도착해서 유스호스텔에 갔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어쩌나, 눈앞이 캄캄했지.

부산 남학생에게 전화하니까 꼼짝 말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래.

얼마 뒤 나타나더니 무조건 자기를 따라오라고.

아니 뭐 설명도 없이 어두컴컴한 길을 앞장서 갔다.

도착해보니 잉? 자기네 집이었다.

"여자애들 여관에서 재울 수는 없잖아?" 하면서.


동창 부모님은 우리에게 안방을 내어주시고.

다음날 아침,

실컷 늦잠까지 자는 우리를 기다리다 못한 동창은 방문을 두드려 잠을 깨웠다.

이불을 벽으로 밀어놓고 눈곱만 겨우 뗀 채 잠옷 입고 앉아서 동창과 어머니가 낑낑 들고 들어온 수라상을 받았다.

아, 부끄럽네요.



대학교 삼 학년쯤 겨울,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강릉에 갔다 왔다.

바다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참 재미있었지.

밤에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종일 그렇게 떠들고도 할 말이 남았는지 아예 뒤돌아 앉아서는 내 집처럼 떠들어댔다.

실내등이 꺼진 어둠 속에서 피로에 지쳐 잠이 드신 아저씨 승객분들은 한참을 참다가

아가씨들,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어머 죄송해요. 조용히 할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잘못은 냉큼 인정하고 사과도 잘했지만,

결의는 모자랐다.

얼마 못가 소곤소곤 수다는 다시 시작되었고.

깔깔 웃고 떠드는 몰상식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잠 못 드신 승객 한 분이 허허 웃으시면서 거, 참, 아가씨들, 한창 때라.

버스 안 승객들은 하하하, 다 같이 웃음보를 터뜨리고.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어요!

사과도 너무나 명랑하게 했던 해맑은 영혼들.

가끔 기차 안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청춘들과 마주친다.

나의 20대를 떠올리면 나는 도저히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


하하, 너털웃음으로 민폐를 받아주셨던 그분들께 지극한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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