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
막 40대에 들어선 대학 동창 넷이 여행을 떠났다.
변산반도로 해서 어디더라?
기억에서 사라진 어딘가를 거쳐 남쪽 바다 보성까지 다녀왔었다.
여자 넷이 번갈아 운전하니 평소에 혼자 가기에는 멀거나 구석진 곳도 가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내소사에도, 아이스크림이 맛있던 보성 차밭에도 갔었지.
득량만 근처 어디쯤에서 길을 묻기 위해 꼬불꼬불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바다에 면해서, 바다를 바라보던 작은 동네.
여름날의 한낮,
파란 바다는 잔잔하고 햇빛은 강렬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늘진 큰 나무 아래 평상에서 나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아장아장 꼬맹이부터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느닷없이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자 심심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활기가 치솟아,
어디서 왔냐, 무슨 관계냐 호기심이 폭발했다.
우리는 한가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느긋한 기분이 되어,
동네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꼬맹이에게 용돈도 주고.
방파제에 말리고 있던 빨간 고추를 다섯 근씩 사서 차 트렁크에 그득 실었다.
매운 냄새 오래가더군.
동네를 나오면서 내가 저렇게 한가하고 이웃들끼리 친한 곳에서 살다가,
바쁘고 복잡하고 개인주의인 대도시에 오면 힘들겠다-했더니.
어릴 때 작은 촌에서 자란 친구가 부르르 치를 떨면서,
저렇게 남의 집 수저 숫자까지 다 아는 좁디좁은 마을이 얼마나 피곤한지 아니?
흠, 그렇구...나.
칠팔 년 전쯤인가, 무등산 아래 농촌 마을에서 친구와 하룻밤을 머문 적이 있다.
오래된 농촌 마을이었는데,
농촌 체험마을 사업을 막 시작한 즈음이었다.
담양과 마주하여 화순 가는 큰길에서 산 쪽으로 쑥 들어가 있는 마을은,
촌동네가 그렇듯 고령자들만 남아 벼농사를 지었는데.
큰 산 아래 평평한 땅에 들어선 양지바른 동네는 단정하게 돌담을 두른 집들과
너른 논과 졸졸 흐르는 개울이 참 예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구석구석 야무진 손길로 다듬어서 깔끔하고 정갈하며 평온했다.
어스름한 저녁,
볕에 말린 쌀을 거두는 농부들과 나지막한 학교가 있던 평화한 들판의 풍경.
아침에는 가까운 저수지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이슬 맺힌 산길을 걸어서 길 건너 소쇄원과 오래된 정자들을 찾아다녔지.
광주로 나올 때 마을에서 탄 버스는 무등산을 지나갔는데,
아름드리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산길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축복받은 가을날이었다.
추운 겨울날, 학교 후배들이랑 일면식도 없는 까마득한 후배의 과수원에 간 적도 있었다.
같은 시기에 동아리 활동을 했던 후배들과 한참 아래 모르는 후배들이 어울려 산속에 뚝 떨어져 있는 과수원을 찾았는데.
준비해온 음식을 차려 먹고, 각자 돌아가면서 한 문장씩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게임도 하고.
서로의 스무 살 시절을 돌아보면서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져 버렸다.
노래를 불렀고 누구는 여신이라는 딸 자랑도 했지.
자식이 장애 판정을 받은 날,
개인으로서의 인생은 모두 포기하고 아버지로서의 역할만 하기로 했다고 한 후배는 담담하게 말했고.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떠올린 어느 아들은 울컥 말을 잇지 못했다.
캄캄한 밤에 추운 바깥은 왜 나갔더라?
다음날 아침에는 멀리 남쪽의 산을 바라보면서 테라스에서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렸지.
기차역 바깥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출발을 기다리던 아쉬운 시간.
우리의 스무 살 시절이 이어준 귀한 인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