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 새벽 공기는 차갑다.
난방이 되지 않는 목조 건물 너른 공간에서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어도 몸이 떨린다.
각자 마음이 가는 자리에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차갑고 조용한 새벽의 산사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거나,
돋보기를 쓰고 기도문을 읽거나.
그렇게 고요함을 지키면서 밤샘 기도를 마치고 새벽예불을 기다렸다.
우리나라에서 절은 대부분 깊은 산에 있다.
유명한 산에 있는 큰절까지 들어가는 대중교통이 있기는 하지만,
운행 시간이 뜸하거나 여러 번 갈아타거나 해서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 낭비도 있다.
또 큰길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니 여자 혼자 가기에는 겁이 날 때도 있다.
서울에는 조계사에서,
지방에서도 중심 사찰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를 보았는데.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기도드리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매달 또는 특별한 때,
차량 편의를 제공하는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있다.
(찾아보니 올해는 코로나 19 사태로 중지되고 있구나.)
이른 새벽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거나,
오후에 떠나 새벽에 기도와 예불을 드리고 다음날 돌아오는 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절에서는 공양이 제공되고,
방문하는 절의 스님들이 기도 의식을 이끌어 주셨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강제적이거나 필수적인 것이 아니어서.
매우 자유롭고 자율적인 분위기였으며.
무엇보다 상당히 조용하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차에서 내리기 직전 낮은 목소리로 함께 찬불가를 부르고,
"성불하세요" 덕담 한 마디가 소리 낸 것의 전부.
절에서는 공양 시간과 순서, 기도 예절, 자동차 출발 시간만 지키면,
그 외는 모두 자율적이다.
20여 년 전에 강화도 옆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에 갔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절 아래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잔잔한 서해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가 참 아름다웠던 기억.
새벽에 격려하러 들어오신 주지스님이 음, 무슨 자수성가한 기업가의 성공담 같은 말씀을 하셨다.
불가에서 당당히 세속적인 가치관을 설파해서 좀 놀랐다.
겨울에 갔던 해남 미황사에서는 새벽 예불을 마치고 떡국을 주셨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어찌 끓이셨는지 참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미황사도 거의 폐허가 된 절을 당대에 크게 일으킨 것이었다.
풍경도 아름답고 음식도 정갈하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우리 사회가 어디나 할 것 없이 규모의 성공을 최고 가치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하러 간 이유는 자녀 합격, 건강 회복, 사업 번창, 망자 천도 같은 현실적인 염원이고.
신자들의 물질적인 부조를 기대하는 분위기는 있다.
그러나 절대 강요하지는 않으니,
나처럼 단지 풍경과 절집과.
그리고 약간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절에서 운영하는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마음에 괴로움이 있다거나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차비에 해당하는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
누가 태워주는 자동차에 실려 깊은 산사를 찾는 것도 괜찮다.
종교에 상관없이 좋은 풍경,
그리고 절집은 확실히 마음에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