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병원을 하셨으니 우리 집에는 많은 간호사 언니들이 오갔다.
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간호조무사 학원을 나온 갓 스물의 언니들은,
아버지 병원에서 보통 3~4년은 일했다.
길게는 12년도 넘게 있다 결혼한 언니도 있다.
참 무던하고 참을성 있는 멋쟁이 언니였지.
언니들은 전국 각지에서 왔다.
우리 집에 온 첫날 저녁 밥상에 앉은 언니들은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 물론 호기심으로 눈이 똘망똘망한 우리들도, 만나게 된다.
밥을 수북이 담아주면서,
어디서 왔나?로 인사는 시작되어.
정읍, 청주, 부산...
지도책을 펼친 나는 언니들 입에서 나온 지명을 찾아내서는 지도를 눈앞에 들이대며 여기 맞냐고 묻는다.
처음이라 안 그래도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어른들은 밥 많이 먹으라고 자꾸자꾸 떠주지,
아이들은 옆에 앉아서 빤히 쳐다보지, 아, 이, 무슨.
그렇게 진땀 나는 상견례를 마치고 우리 식구가 된 언니들은 곧 뽀얗게 살이 오르면서 세련된 서울 아가씨가 되어갔다.
언니들은 서로 화장품 정보도 나누고 백화점 구경도 함께 다니고.
라디오에 클리프 리처드의 노래를 신청했다가.
가끔은 싸우기도 했다.
한창때의 아가씨들이니 얼마나 발랄했을까.
돈을 모아 결혼한 언니들이 많았고.
이직을 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우리와 함께 했던 청춘의 한 시기가 나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다들 사연은 있기 마련인데,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훌쩍 큰 키에 날씬하고 서글서글한 언니가 있었다.
무난하게 잘 지냈는데 한 번은 다른 언니가 우리 어머니한테 귀띔하기를,
그 언니가 지나치게 복권을 많이 산다고.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언니더러 왜 그렇게 복권에 돈을 들이는지 가만가만 물었더니,
울면서 털어놓기를.
시골에 있는 자기 어머니가 아주 가난한 집 딸이었단다.
어릴 때 나이 든 자기 아버지의 작은 부인으로 들어와 그 언니를 낳았다고.
평생 본처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자식 때문에 도망도 못 가고 종처럼 일만 하고 살았다.
그 해 여름휴가로 집에 다니러 갔는데 어머니 처지가 더 나빠져 있었다.
얼른 방을 마련해서 엄마를 모셔오고 싶은데,
월급 받아서는 하세월이라...
우리 집에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여드름이 잔뜩 난 떠꺼머리 오빠가 기사였는데.
머리를 양갈래로 딴 동글동글한 간호사 언니랑 서로 마음이 있었던지.
나랑 동생을 데리고 그 언니랑 뚝섬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우리를 따라 보낸 걸 보면 부모님도 암묵적으로 응원하신 거겠지.
에유, 그런데 눈치 없는 아이들은 주제를 모르고 신나서 펄펄 날뛰었으니.
두 예비 연인은 말괄량이들 뒤치다꺼리로 진이 다 빠져버렸다.
참, 그런데 오빠,
뚝섬에 물놀이 가면서 양복은 왜 입으셨을까?
한때는 꽃미남 기사 아저씨도 있었다.
이번에는 비극이다.
애기를 업은 기사 아저씨의 부인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병원에서 불려 온 얌전한 간호사 언니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만 들썩이던 뒷모습을 내 기억에 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