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근대란

일상 속에서

by 기차는 달려가고

오랜만에 서울도서관에 갔다.

높다란 현관을 들어서서 굽은 계단을 오른다.

층계참 벽에 붙어있는 올록볼록 무늬의 짙은 색 나무 장식판을 보노라니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일 보러 시내 나가실 때면 꼬맹이인 나를 종종 데리고 다니셨다.

아마 종로, 명동, 을지로 주변을 자주 다니셨던 것 같은데.

어린 나는, 여기는 소공동이야,

알려주시는 아버지께.

"뭐라구? 소금동이라구?"

입안 가득 우물우물 사탕을 빨면서 까불었었다.

"아하, 소금 나오는 동네구나. 아빠, 소금 사러 왔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유머란 그 모냥, ㅋ



지금 서울 시내 번화가는 갖가지 형태를 뽐내는, 첨단의 고층건물들로 번쩍거린다.

50년 전 서울 도심에는 여전히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시기 건물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서울 시청으로 사용되었던 서울도서관 건물 같은.


유럽을 처음 갔을 때 어릴 적을 떠올리게 하는 근대기 건물들이 시내 한복판에 가득 차있다는데 흥분했었다.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묵직하고 고색창연한 건물들, 거리들.



나에게는 1960, 70년 대가 우리나라의 근대기 같다.

건설의 시대.

낡고 오래된 것들은 불도저에 싹 밀려나고,

멋대가리 없는 층층의 시멘트 건물들이 쑥쑥 올라갔었다.

산을 무너뜨리고, 길을 만들고, 다닥다닥 집을 지었지.

산업이 일어나고 서양식 교육이 확대되고.

미군기지를 통해서 서구식 생활용품들이 전해졌다.

학교나 관공서 벽돌 담장에는 붉은 페인트로 구호들을 찍어냈었는데.

'반공방첩' 다음으로 '근대화'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 않았었나, 싶다.


나의 친가나 외가 조부모 대에도 당신들의 근대가 있었다.

기독교와 외국어라든가, 철도라든가.

일찍 근대를 받아들이신 분들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당신들의 근대가 있었다.

전등을 켜고, 양복을 입고, 서구식 고등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직접 독일에서 공부하는 경험도 하셨다.



수십 년째 소설을 읽는다.

아직도 근대문학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작품들도 많고 소설은 그 시기에 적절했던 표현 방식 같다.

어쩌면 근대 소설이 인간사의 워낙 많은 부분을 다뤄서,

현대에는 독창적으로 소설을 쓸 만한 주제가 모자랄지도 모르지.

현대 소설을 읽다가도 다시 이전 시기로 돌아가게 된다.


사회사나 생활사에도 근대 시기에 관심이 많다.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갔던 방식, 가치관, 욕망, 생활방식이 모두 궁금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서구에서의 근대시기는 갑자기 끝나 버렸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류는 급격한 시대의 단절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훗날 역사가들은 우리 시대를 상상하고 이해해내려 머리를 싸매겠지.


이 시대에 함께 속해있으면서도 각자는 서로 시차가 엄청난 자기만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후대 사람들이 이 시대의 우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해하는 지난 시대 또한 마찬가지로 오해와 한계를 갖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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