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통화도 꼭 필요한 용건만 한다.
길게 말하면 목이 아프다.
청각에도 굉장히 예민하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이 통화 용도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브런치에 뭘 쓸 때 말고는 전화기를 들고 있지도 않는다.
전화가 와도 못 받을 때가 많고.
지극히 적은 수의 아는 번호 아니면 받지 않는다.
전화 신호가 울렸다.
지르르르, 전화기의 진동 벨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쭉 빼어 번호를 확인하니 모르는 숫자네.
나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전화기는 상당히 오랫동안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음이 약해져서 하마터면 받을 뻔했다.
알림을 지우면서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는 몇 분 동안 무언가를 기대했을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응답해주는 이 없이 신호음이 울리기만 하는 전화를,
그 사람은 왜 했을까?
길게 울리던 벨의 진동에서 어떤 다급함이 전해졌다.
살기 위해서 무어라도 해야 했을지도 모르지.
내 사정은 급한데 눈앞에서 날아다니기만 할 뿐,
도무지 손에는 잡히지 않는 돈을 잡기 위해서.
아우성을 지르며 돈 내놓으라고 덤벼드는 생계라는 악귀에 쫓기면서.
아무 번호나 눌러 제발, 제발, 나를 살려줘.
절규하는 심정으로 통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다급한 무엇을 갖고 있다.
구하는 다급함 또는 갚아야 하는 다급함.
건강을, 사랑을, 평화를, 구원을.
자신만의 다급함을 자신의 방식으로,
응답 없는 허공에다 오늘도 탕탕 두드렸겠지.
간절히, 간절한 마음으로.
그 모든 이들의 다급함을 안고서,
수많은 제각각의 소원을 얹은 채.
세상은 그저 세상의 속도와 방향으로 덤덤히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