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뜨개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생 때, 코바늘 뜨기는 꽤 했었다.
가정 시간에 배운 기본기를 바탕으로,
패턴을 얻으려고 명동 뒷골목 외국 잡지 파는 곳에서 일본 뜨개질 책을 사곤 했었다.
이상하게 시험 때만 되면 뜨개질 의욕이 샘솟았다.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
음악 틀어놓고 패턴 보면서 하얀 레이스를 뜨곤 했었다.
흠, 보기엔 아름답지.
보기에는.
대학 들어가서 바쁘고 즐겁고 하니 뜨개질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사하면서 뜨개질 책은 다 버렸지.
그러다가 대학 졸업하고 다시 뜨개질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대바늘 뜨개질을 배워서 옷을 만들어 보자!
코바늘 뜨기와 대바늘 뜨기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
뜨개질 잘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일부러 선생님을 찾아갔다.
초보 몇 명이 둘러앉아서 선생님께 뜨개질을 배웠는데,
아니, 나는 도무지 첫 발걸음도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였다.
도대체 왜!
열등생을 가르치셔야 하는 선생님이 힘들어 보여서 내가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난 배운 적도 없는데.
친구들 하는 거 보고 그냥 따라 했는데?
생글생글 웃으시더군.
그 이후 뜨개질을 하지 않다가 며칠 전 갑자기 뜨개질을 떠올렸다.
환갑이 되어서 뜨개질을 다시 해보겠다고
싸구려 털실과 제일 싼 코바늘을 사 왔다.
바늘을 잡아본지 40년이 넘었으니 머릿속에서는 뜨개질에 관해 구체적인 어는 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책부터 사야 하나,
유튜브로 따라 할 수 있을까,
의아했는데.
신기하게도 털실과 코바늘의 포장을 뜯어 손에 잡으니까.
저절로 오른손에는 코바늘이 쥐어지고, 왼 손가락 사이에는 실이 감기더니.
자세가 딱 잡혀서 어느새 손가락이 능숙하게 움직인다.
캬.
사슬 뜨기.
맞아, 이게 기본이었지.
이름도, 방법도 의식의 수면 위로 확실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일단 집에서 쓸 머리띠 하나 만들어 주시고.
음, 뿌듯해서 이 글을 쓴다.
겨울밤의 낭만이라면 역시 뜨개질 아니겠습니까!
깊은 밤.
방에는 음악이 흐르고, 빨갛게 타오르는 난로에는 보글보글 물이 끓고.
차 한 잔과 귤 몇 개.
마음은 고요하고.
바쁘게 놀리는 손가락 사이에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누군가를 위한 따듯한 스웨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ㅋ, 완벽하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