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내 건강도 좋지 않았고.
날은 춥지 코로나 상황은 심각하니,
서울 바깥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 가면 좋을까, 이불속에서 여행을 상상만 하다가 봄을 맞았다.
해서 나는 기지개를 켜며,
떠나야겠다!
기차 시간표를 살피면서 장소를 검색하고,
블로그들과 지도 속을 돌아다녔다.
가고 싶은 곳은 왜 이리 많은가.
일단,
강릉으로 갔다가 내륙 깊숙이 쭈욱 내려가 안동까지 가는 일정을 생각해 본다.
음,
....
아무리 가볍게 챙겨도 며칠치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한다.
늦게 하루를 시작하는 체질에,
종일 돌아다닐 체력이 안 되어 늘 숙박 일정으로 느긋하게 여행했었는데.
콕, 틀어박혀 겨울을 나면서 몸이 더 힘들어졌다.
짐이 힘들겠어.
에잇, 몰라.
당일이라도 다녀오자.
몇 가지 일정을 염두에 두고
새벽에 출발하는 강릉행 KTX 자리만 예매한다.
미리 홍삼을 먹어두고.
들고 갈 배낭과 입고 갈 옷을 의자에 걸쳐 놓는다.
일찍 누웠지만 흥분했는지 잠도 들지 않아 자는 둥 마는 둥.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 세수는 하지 않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만 담아 배낭에 넣고 나온다.
캄캄해서 기차는 출발했고 어딘지 모를 경로를 따라 서울을 벗어났을 때쯤 어둠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기차에 타면 곧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정신이 말똥말똥.
창에 코를 붙이고 바깥을 내다보았지.
사위는 점점 밝아오는데.
강을 끼고 달리는 기차는 중간중간 앞이 안 보이는 자욱한 안갯속을 지나다가 다음 동네에는 시야가 트이곤 한다.
원주에 다가갈 때는 둥글고 붉은 해가 가까이서 떠오르고 있었다.
하아!
진부 부근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지난주에 폭설이 내렸다더니.
강릉에 도착했을 때는 8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쨍 하니 화창하고 투명하게 맑은 날씨.
어째 서울의 새벽보다 더 추워.
계획하기로는 남항진으로 가서 안목 해변까지 걸어볼까, 했었는데.
역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안목해변까지 가는 버스를 보자 그만 홀랑 타버리고 말았다.
아침 안목해변에는 가끔 사람이 보일 뿐 한적하다.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눈부시다.
빛으로 반짝거리는 바다는 더, 더 파란색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구나.
무겁고 세찬 물살이 출렁출렁 다가와서 하얗게 부서진다.
바다에 다가가 젖은 모래에 발자국을 내면서 조금 걷는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래밭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아름드리 해송들이 숲을 이루며 길게 해변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다.
굵고 푸른 나무들.
하,
의자에 앉는다.
숲에 앉아서 푸른 바다를 바라본다.
청량한 공기를 깊이 들이쉰다.
벅차서, 정말 벅차서 차가운 나무 의자에 앉아 바다와 숲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있는다.
보온병을 꺼내 따끈한 커피를 내리고,
오물오물 과일을 먹는다.
그러면서 예정대로 남항진으로 갈까,
북쪽으로 갈까, 우왕좌왕하다가.
발길 닿는 대로 어느새 강문까지 갔다지.
숲을 걷고 바다를 보고 바람결을 느끼고 깊게 호흡하면서.
좋았다.
참 좋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다리와 가슴이 씩씩하게 걸어 나가던걸.
이렇게 잘 자란 숲 속을,
이렇게 파아란 바다를 옆에 두고.
하얀 구름 두둥실 맑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청량한 공기에 감탄하면서.
강문에는 추억이 있다.
35년 전쯤에 친구 아버지께서 강릉에 부임하셨다.
친구가 우리를 불러주어서,
우리는 숲에 있는 관사에 머물면서 친구 부모님께 황송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때 단골이라고 강문에 있는 횟집에 데려가 주셨는데.
그 이후 우리 가족끼리 몇 번,
강원도에 오게 되면 일부러 강문의 그 횟집을 찾아갔었다.
한 이십 년 만에 왔더니 동네가 너무 변해서 마음이 이상했다.
'강문'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바다로 흘러드는 개천은 기억에 또렷한데,
그 개울까지 얼마나 근사해졌던지.
기억 속의 횟집 이름은 보이지 않아
살짝 서운한 기분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아, 정면에 눈 덮인 늠름한 산이 딱 보이더라.
그러니까 강문 다리에 올라서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면 파란 바다가 무한정 펼쳐져 있고.
저쪽을 바라보면 크고 웅장한 산들이 하얀 눈을 덮고 단단히 제자리를 지키며 서있는 것이다.
(오대산이겠지?)
(이 사진은 경포호에서 바라본 풍경)
벅차고 벅차서 부근을 맴돌다가,
됐어.
충분해.
강릉에서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바다를 옆에 두고 숲을 걸었으며,
눈 내린 큰 산까지 바라볼 수 있었던 몇 시간.
내 마음이 족했다.
가슴이 기쁨으로 꽉 차 버렸다.
이제 어디로 갈까?
* 사진이 못나 죄송합니다.
워낙 막손이고요,
보급형 휴대폰이어요, 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