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남서쪽 그리고 기형도
마음에 남긴 풍경들
서울에서 태어나 여태까지 살고 있지만.
서울에서의 내 생활 반경은 넓지 않다.
지도를 펴보면 아직 내가 안 가본 곳 투성이다.
특히 서울 남서쪽으로는 정말 갈 일이 없었다.
내 기억에 남은 여의도 아래쪽이라고는,
어릴 적 친구가 이사 갔다고 해서 버스 몇 번 갈아타며 찾아간 신길동이 있다.
벌써 40년 전쯤인가?
광명시에 갈 일이 생겼다.
KTX를 타고 남쪽으로 갈 때 광명역을 지난다.
그동안 내게 광명시라면 온통 시멘트 구조물 사이에 정차한 객차 안에서 두리번두리번.
그렇게 오가며 주변의 아파트 단지들만 보았을 뿐이었다.
서울역에서 남서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승객이 꽤 많이 타고 내렸다.
초행길답게 더 길고 더 멀게 느껴졌는데.
갈수록 지역이 굉장히 넓고.
옴머나, 거의가 평지네.
넓은 도로가 쭉쭉 뻗어 있었다.
상당히 번화해서 놀랐다.
고층빌딩도 많고.
도로 옆으로는 빽빽하게 어디까지나 끝나지 않는 상가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인구가 꽤 많겠는걸.
요새 강북 번화가에는 공실이 많아 활력이 기울어가는 분위기에 익숙해진 터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여전히 활발해 보이는 번화한 상업지역이 새롭게 느껴졌다.
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안정적인 상업가인가 보네.
그렇게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 풍경에 얼치기 경제 분석까지 하면서 진지하게 구경했다.
그래서 먼길인데 멀미도 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지난여름이던가.
두 번쯤, 정말 오랜만에 서울의 북동쪽에 갔을 때도 그 번화해진 풍경에 놀라기는 했었다.
그곳에도 인구가 더 많아졌고 번쩍거리는 높은 건물들로 상업지역은 번창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의 북동쪽은 지형 자체에 높낮이가 있고 사람들이 살아온 지 오래된 동네들이라서.
도로는 구부러지거나 오르락내리락하고.
사거리, 오거리에서 복잡한 버스는 행선지를 급격히 꺾곤 해서 나는 멀미를 했었다.
또 동네마다 노후도나 분위기에 차이가 많다거나.
높다란 북한산이 전면에 장벽처럼 서있어서 내게는 익숙한 강북 풍경이었다고 할까.
광명시에서 돌아올 때는 캄캄해진 뒤였다.
낮에 갈 때보다 풍경은 훨씬 더 화려해져 있었다.
건물 창마다 불이 켜지고 간판들은 번쩍번쩍.
하지만 환하게 불이 들어온 가게 안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한창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코로나 19 팬데믹에서 여기라고 다르겠는가.
속이 까맣게 타버린 사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버스 타기 전에 표지판에서 '기형도 문학관'이라는 정류장 표시를 보았었다.
아, 여기였구나.
언젠가는 가봐야지, 했던 곳인데,
그렇게 기형도 시인은 갑자기 훅 치고 내 안으로 들어왔다.
서른 살 언저리에 기형도의 시를 즐겨 읽었었다.
침대에 뒹굴뒹굴 초콜릿을 입안에서 뭉개며 시집을 들추다가.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쓴 시인의 말간 우울감에 가슴이 찡해져서는.
엄숙한 기분으로 입에 남은 초콜릿을 꿀꺽 삼켰다.
몸을 일으켜 허리를 곧추 세우고는 진지하게 시를 읽었지.
그러다 표지를 덮으면서 후, 한숨을 내쉬었다.
나랑 같은 나이에 이 사람은 어쩜 이리 훌륭했단 말인지...
내 서른 살 무렵.
촉촉하게 나의 정서를 울려주었던 기형도 시인은 세상에 없다.
그때부터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은 얼마나 크게 달라져 있는가.
시인은 예전 시대를 살다 갔지만.
시인이 고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내놓은 맑은 시들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똑똑, 두드리겠지.
고맙습니다.
내 꼭 다시 광명으로 시인의 문학관을 찾아가서는.
고마워요, 소곤소곤 속삭이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