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우리 집에서 밥상이라 함은,
재료를 사다가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국, 밥, 고기, 생선, 채소 반찬들이 주르르 놓인 상차림이었다.
세상은 변했고, 상황은 달라졌다.
자, 이제는 영양가가 적당히 계산된 출처 다양, 먹을 것 몇 가지 얹힌 테이블을 밥상이라 부르자.
내가 매끼 쌀밥을 먹지는 않는다.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는 않으므로 제한하는 식품군은 없다.
밥은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 는 믿음은 여전하지만.
그 맛있다는 내용은 살아가면서 변화가 좀 있네.
육십 년 가까이 두부를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데 환갑을 기점으로 갑자기 두부를 잘 먹게 되었다.
연두부에 드레싱이나 양념장을 뿌려 먹고.
부침용 두부를 들기름에 지져서 초간장에 살짝 찍어먹는다.
고추장찌개, 된장찌개에도 듬뿍 넣고.
토마토소스에 치즈를 얹어서 연두부를 끓여 먹어도 맛있더라.
소고깃국에는 깍둑 썰기한 두부를.
팬에 두부를 지지고, 남은 기름에 계란 프라이를 한다.
잘 익은 총각김치에, 양념장을 얹은 구운 두부와 계란 프라이, 뜨끈한 잡곡밥이면 맛있게 식사할 수 있다.
명란젓이나 낙지젓이 더해지면 말할 나위가 없지.
혼자 밥을 먹으니 문제가 나물반찬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래도 즐기지는 않았는데 더 심해졌다.
콩나물 한 봉지 산다.
다진 마늘과 소금 조금 넣고 데치다가 살짝 익었을 때 반은 덜어내고,
나머지는 푹 익힌다.
중간에 덜어낸 것은 양념해서 콩나물 비빔밥으로 먹고.
푹 끓인 것은 콩나물국으로 하거나,
불린 쌀과 다진 소고기, 다진 채소를 더해 콩나물 죽을 쑨다.
그러면 이틀은 먹지.
콩나물은 만들기가 어렵지는 않은데, 맛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와플팬이 유행이다.
전자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작은 와플팬을 사서 식탁 한 구석에 두었다.
올리브유를 뿌려 식빵을 굽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소시지를 구우면서 천천히 식사하기에 좋더군.
쥐포도, 마른오징어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와플팬에 굽는다.
땅콩이랑 먹으니 맛있다오.
견과류.
아무래도 혼자라 먹는 음식 종류가 다양하지 않으니 영양분이 혹시라도 부족할까, 하는 염려에서
견과류도 잘 먹는다.
말린 과일이랑 같이 먹으면 맛은 꽤 조화로운데,
그러면 쯥, 칼로리가 쫌 나가겠습니당.
선식이나 미숫가루도 가끔 찾는다.
즐기지는 않는데 입에서 당길 때가 있다.
나는 아주 되게 먹는 걸 선호해서,
컵에 가루를 붓고 따끈한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젓고.
여기에 꿀을 뿌려 빡빡한 죽 먹듯이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개봉하면 쉽게 변질될까, 일회분씩 소분된 것을 구입한다.
상큼한 이파리 채소, 토마토, 사과, 건포도로 샐러드를 만든다.
마요네즈 드레싱도, 올리브유에 간장을 넣은 오리엔탈 드레싱도 괜찮다.
삶은 감자나 고구마로 만든 퍽퍽한 샐러드에 바싹 구운 잡곡빵을 곁들이고.
계란이랑 햄을 더해도 좋고,
인스턴트나 레트로트 수프를 같이 먹어도 괜찮다.
입가심으로 오렌지 하나 더하면 입이 개운함.
누룽지도 애정 한다네.
시리얼이랑 섞어서 두유를 부어먹기도 하고.
팔팔 끓여 푹 무른 누룽지는 언제나 맛있지.
그냥 끓는 물만 부어서 몇 분 두면 오돌오돌, 구수한 누룽지가 된다.
누룽지는 물기 없이 볶은 멸치볶음, 건새우볶음, 장조림 또는 노릇노릇 바싹 구운 간고등어구이랑 먹는다.
참 맛있는데 냄새가... 환기 필수.
어묵을 좋아하지만 들큼 짭짤 인공 가득한 맛이 뒤에 남아 별로다.
그래서 제대로 다시마, 무, 멸치로 우려낸 육수로 끓인 게 아니라면 그냥 어묵만 먹는다.
도톰한 어묵을 끓는 물에 꼬들꼬들한 식감이 남을 정도로 데쳐서,
고추냉이 넣은 초간장에 찍어먹는다.
조미료 맛이 덜어지니 먹을 만하다.
참기름, 들기름, 올리브유 종류는 작은 용량으로 산다.
가성비 따지느라 큰 걸 사면 빨리 먹지 못하기 때문에 산패 여부가 찜찜하거든.
고추장, 된장, 간장은 오래 두고 먹을 수는 있지만
큰 용량을 사서 여럿이 나눈다.
요새는 다들 집에서 매일 밥해먹지 않으니,
양념들이 꼭 필요는 하지만 많은 용량은 거북하다.
같이 나눌 이웃이 있으면 과일이든, 채소든, 고기나 생선도,
큰 용량을 사서 나눠먹으면 좋기는 하다.
나중에 서로 손해 봤다는 느낌이 들기 쉬우니 신중할 것.
혼자, 맛있게, 건강하게 밥을 먹으려면 솜씨보다 의욕이 있어야 하더라.
자율이라는 게 마음에서 우러나야 몸이 움직이는 거라,
내 마음이 우울하고 지쳐있으면 꾸역꾸역 먹겠다고 부지런히 움직이게 되지는 않는다.
이 밥이 나를 일으키고, 행동하게 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줄 것이며.
그 위에서 나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것이다.
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옷을 차려입고-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행위.
기본이 튼튼해야 사랑도 잘하고, 일도 열심히, 번뇌도 다스리지 않겠는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힘껏 보살필 것.
비록 초라한 집이라도 깔끔하게 정돈하고,
깨끗이 씻은 그릇에 소박한 음식을 담아,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하며 먹자.
그러면,
얼굴에 반짝반짝 빛이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