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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양념이 뭐길래.

혼자 살아요

by 기차는 달려가고

에고, 갖춰야 할 양념은 끝이 없네.


어머니가 살림에서 물러나시고 내가 살림을 시작했던 초기에,

초보자의 의욕이 넘쳐서리 살 게 얼마나 많던지.

조리도구는 물론 양념까지 욕심을 부렸었다.

식초만도 댓 가지.

요리에는 양념도 한몫하더라.

솜씨를 익히기보다 비용 지불을 택해서일까.


그러다 혼자 살게 되니 적은 용량을 사고 밥을 열심히 해 먹어도 양념이 없어지질 않는다.

음식, 특히 우리나라 음식에는 '갖은양념'이 필요한데,

양념은 식재료의 맛을 살리고 돕는다.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거든.


하지만 자신이 해 먹는 밥은 디테일이 좀 약해도 괜찮아.

어차피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이니 좀 안 생겨도, 빠진 게 있어도.

위생적이고 건강하면 된다.

맛있으면 더 좋겠지만.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에서는 그리 예민한 미식가였는데,

스스로 밥을 해 먹게 되니 입맛이 어찌나 관대해지시던지.



혼자 사는 사람들의 간편한 식생활은 장기 여행자의 배낭에 준한다는 생각이다.

가급적 핵심 재료만 챙길 것.

이고 지고 살 여유도 없을뿐더러 냉장고 털이 만찬을 함께 할 식구가 없으니,

저장이 가능하고 두루두루 쓰이는 양념으로,

얼른얼른 먹어치우고 다시 새 것을 먹는 편이 낫다.


식습관과 입맛에 따라 다르겠는데.

내 경우에는 말린 허브 몇 가지,

참기름, 현미유, 고추장, 된장, 새우젓, 고춧가루, 간장, 식초, 소금, 통후추, 통깨, 겨자, 올리브유, 마요네즈, 레몬즙, 정도가 있다.

식초가 떨어지면 새로 살 때까지 레몬즙으로 대용하기도 한다.



된장은 고추장보다 적게 먹는다.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는 고추장.

찌개, 불고기, 조림, 볶음, 양념장 등에 다양하게 쓰이거든.

고춧가루는 늘 생고추를 갖고 있지는 않은 자취러에게 깔끔한 매운맛을 낼 때 필요하다.

소금의 경우 맛소금은 합성조미료가 첨가된 것이라... 순수한 짠맛이 아니다.

소금도 한 가지만 고른다면 굵은 천일염을 권한다.

고운 소금이 필요할 때는 빻으면 되니까.

깨도 볶지 않은 생통깨를 냉동실에 넣어두고 조금씩 웍에 닦아서 먹는다.

생통깨는 가격은 싸지만 일일이 티를 골라내어 볶아야 하니 인내심이 요구됨.


설탕은 조금만 쓰기 때문에 사탕수수 추출해서 건조한 원당을 한 봉지 사두고.

단맛 낼 때는 무와 양파 같은 채소를 많이 넣기도 하고,

꿀이나 조청, 또는 매실액 같은 각종 진액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엿은 쓰지 않는데,

물엿을 넣은 음식은 들큼하고 냉장고에서 뻣뻣해지심.


마늘, 고추, 파.

우리 음식에 자주 쓰이지만 쉽게 상하기도 해서 혼자 먹는 식생활에서는 취급이 어렵다.

말린 것을 사거나, 생것이 남으면 잘게 썰어서 조금씩 나누어 냉동 하기-를 권함.

생강은 조금 사도 남더군.

그때그때 채 썰어 설탕에 절여둔다.

차로 마시거나 요리에 양념으로 넣는다.


불고기, 볶음에 쓸 고추장 양념장, 간장 양념장은 기름과 파를 넣지 않고 만들어 두면 며칠은 괜찮다.

오히려 쓰기 하루쯤 전에 미리 만들어 숙성시키면 맛이 더 조화로운 느낌.

산패 문제가 있어서 참기름과 깨는 요리할 때에 넣고,

다진 파는 미리 넣으면 물러지므로 역시 요리할 때 추가한다.

간장, 고춧가루, 설탕, 다진 마늘 등(청주도 조금 넣는다. 요리주보다 깔끔한 맛임)으로 기본적인 양념장을 만들어두고.

음식에 따라서 단맛, 매운맛, 신맛을 그때그때 추가한다.

소불고기는 미리 재우지 말고 먹기 전에 양념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굽는다.

돼지고기 고추장 불고기는 하루 전에 양념을 넉넉히 넣고 재워야 간이 고기에 잘 배더라.

장아찌나 계란장을 만들어먹으면 장아찌 간장이 남는다.

끓여서 한두 번 더 장아찌를 해먹기도 하고,

볶음이나 조림 음식에 넣기도 한다.



음식에 양념을 잘 쓰는 여부에 따라 원재료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고.

음식 전체의 맛이 확 올라가는 마술이 된다.

넣어야 할 때,

덜어야 할 때,

그리고 적절한 양념을 고르는 것은 경험과 미각이 필요해 보인다.

맵고 짜고 달디 단 양념 범벅으로 원재료의 장점을 가리지는 말자.


요리는 개별적인 식재료의 맛과 낱낱의 양념의 맛을 미리 익혀두어야,

재료들이 어울렸을 때 완성된 맛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경지에 이르렀다면 장금이라 하겠지.



맛있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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