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겠다- 오대산

마음에 남은 풍경

by 기차는 달려가고

비 때문에 지난주 일정을 취소했었다.

비가 내린다지만 오늘은 그냥 가기로 한다.

오늘 못 가면 봄의 오대산을 그냥 보낼 것 같으니.



진부역에 내리자 시내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친절한 기사분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오대산 깊숙이 들어간다.

진부는 서울처럼 날이 흐렸는데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들어가는 흙길로 접어들었을 때,

연두색 봄 산에는 반짝,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졌다.

와.


봄의 숲은 순하다.

여리고 야들야들한 아기 이파리들이 한들한들 바람결에 흔들리면서 햇빛에 반짝거렸다.

봄의 숲은 경쾌하다.

녹음이 짙은 여름처럼 무겁지 않다.



상원사는 물이 콸콸 흐르는 계곡을 따라 산 깊이 들어가 있다.

절에 들어서면 툭 트인 전망이 아니고 깊은 산속에 조용히 들어앉은 절이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곳이었는데,

오랜만에 왔더니 내가 기억하는 고즈넉함이 아니네.

기억의 오류일까?

가는 빗방울이 떨어져서 나는 전각 아래에서 가만히 앞산을 바라보았다.


상록수와 활엽수.

강원도 산골이라 확실히 봄이 늦는다.

여러 수종들이 어울려 피어나는 이파리는 빛깔이 참 다양도 하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한번 지나간 절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고,

법당에서는 스님이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목탁소리, 새의 지저귐.

절 아래엔 아직 분홍 벚꽃이 남아 있어.



산 위쪽에 있는 상원사와 산 아래 월정사를 잇는 숲길인 선재길은 꽤 길다.

9km가 넘는다.

혼자라면 인적이 드문 숲길을 걷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중년의 부부가 있었다.

나는 그분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말없는 배려.

나중에 인사를 나누었다.

고마워요.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서 유지되는 길일 텐데,

도시 사람이 이런 숲을 걷기가 쉽나.

감격스럽다.

두어 시간 길을 걸으면서 숲도 실컷 보고 생각도 좀 해야지, 했었으나.

선재길은 크고 작은 돌이 많고 도랑이 흐르고 나무뿌리도 많아서,

오직 길바닥만 보면서 조심조심.

걷는 데만 몰두해야 하는 길이었다.

잡념이 끼어들 수가 없다.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어서 콸콸 힘찬 물소리가 함께 한다.

새소리는 얼마나 예쁜지.

아직 날벌레가 극성을 부리지 않아서 거리낄 게 없더라,

중간에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려서 우산을 쓰고

큰길로 나와 걷기도 했는데.

상쾌한 숲의 공기를 마시면서 기분 좋게 걸었다.

음,

다리는 많이 아팠어.

떠날 때부터 몸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


그래서 월정사에 닿았을 때,

몹시 기뻤다.

법당에 들어가 절도 올리고.

기도도 했다.



월정사는 큰절이기는 하지만 절집 규모보다 부지가 상당히 넓은 것 같다.

터널을 몇 번이나 지나서 들어가는 산이 겹치고 또 겹치는 곳인데 신기하게 진부 시내부터는 꽤 넓은 평지로,

위에서 흘러온 계곡이 오대천으로 흐르고.

저기 한참 아래 일주문에서 절집까지 잘 자란 전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너른 길

편안한 길.

나무들과 강.




이제야 피어나는 오대산 단풍나무

아기가 꼬물꼬물 손가락을 내미는 듯하다.


좋은 하루였다.

서울로 돌아가는 지금.

기차는 계속 터널을 지나가는구만.


자야겠다.

참,

오대산 채나물은 정말 맛있다.

또 먹으러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