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예기치 않게 서울 시내 도보여행을 해버렸다.
한낮이 막 지나갈 무렵 거리에 나갔다.
얼마만인가, 문득 삼청동 구석에 있는 작은 절이 떠올랐다.
왠지 그곳에 가서 절을 하고 싶어 졌다.
몇 번 하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지.
차를 타려면 어차피 걸어야 하기에 발동된,
걸어가는 데까지 가보자, 정신.
시청을 지나서 광화문을 걸어서 경복궁 길을 쭉 올라가,
청와대 옆에서 골목을 틀어 삼청동 깊숙이까지.
멀기는 하더라.
쉴 곳도 없고 힘은 든데,
그냥 두리번두리번, 거리 구경하다 보니 목적지에 닿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
날이 따뜻하고 봄날은 마음을 들뜨게 하니,
오랫동안 고립되어 비대면이라는 낯선 상황을 견뎌야 했던 청춘들은 밖으로 나오고 싶었겠지.
식당에도, 카페에도 줄을 서거나.
길에도 두, 셋이 하하호호.
밝은 표정들이라 좋아는 보였는데,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코로나 상황에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무쪼록 조심, 또 조심, 탈이 없기만 바랄 뿐.
경복궁 주변에는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청춘들이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금박을 두른 화려한 옷감이 먼지가 낀 듯 뿌옇더라만,
세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여 가격이 파격적이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 따뜻하고 환한 거리에,
거짓으로 가득한 망상을 쏟아내는 확성기들이 있었다.
한미동맹 강화, 간첩, 좌파, 나라 빚...
질리지도 않는지 수십 년째 뻔한 슬로건.
매우 성공했던 아이템이라 도무지 벗어나질 못하는군,
귀청을 찢는 주파수에 발걸음을 빨리 하면서.
증오로 펄펄 끓어 넘치는 저 사람들의 영혼이 잠시 걱정됐는데,
막상 당사자들은 이미 찢어진 영혼이라 걱정할 단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까지 품고, 어디부터 내쳐야 하나.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을 떠올리면서 답답한 심정이 되었지만.
뇌리에 딱딱하게 고정되어 바뀔 구조가 아니라서.
앞으로 수 십 년,
살아있는 동안 저분들은 저렇게 떠들어대겠지.
절을 나오니 마을버스들이 있어서 탈까, 했다가.
서늘한 법당에 앉았더니 몸 상태가 좀 나아졌기에 또다시 발동된
가는 데까지 가보자, 정신.
사실은 가다가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삼청동에서 안국동으로,
수송동으로 해서 덕수궁까지.
문을 연 카페에는 사람들이 가득가득해서,
나는 식당에도, 카페에도 들어가지 못해 더운 날씨로 몹시 목이 말랐는데.
마스크를 올리고 물을 마실만한 곳도 보이지 않아 가방에 있는 물을 꺼내지도 못했다.
담장 밖으로 푸른 나무들이 보이는 덕수궁에 들어갈까, 하다가.
대한문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많네.
그냥 서소문 방향으로 또 걸음.
순화동이 이렇게 변했구나.
대로변 고층건물 뒤 순화동, 옹색한 면적에는
몇 년 전까지 1950, 60년 대 서울의 모습이 남아 있던 동네였다.
그동안 우뚝우뚝 올라선 대형 고층건물들에 놀라면서.
한적한 토요일 오후의 그늘진 오피스가를 느릿느릿 걸었다.
토요일, 해가 뉘엿뉘엿 내려가는 시간에.
작은 배낭 둘러메고 운동화 끈을 묶고는.
혼자 몇 시간 거리를 걷는 건 꽤 괜찮다.
연푸른 이파리들로 뒤덮인 봄날의 가로수들이 거리를 환히 밝히고.
큰 건물 앞 작은 화단들에는 튤립이 탐스럽게 피어있더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모처럼 식당과 카페에 손님들이 가득해 다행이다, 하면서도,
좋아할 수만은 없는 복잡한 심경.
코로나 시국의 봄날 주말, 서울 풍경이었다.
강남에 가본 지는 몇 년이 지났군.
언제 한번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