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 부재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지금도 주민등록이라는,

거주지를 기반으로 하는 신분 등록제도가 있고.

모든 행정 처리가 여전히 주소지를 기반으로 이루어지지만.

외부와의 연락은 이제 주거지와 상관없어졌다.

곧바로 본인에게 날아가는 이메일과 휴대전화로 거의 모든 연락이 가능하고,

자신임을 증명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현재 거주하는 주소지가 확실해야 외부와 연락이 되었거든.

전화는 집에 딱 붙어있었고.

대부분의 공적, 사적 연락은 우편물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주소지에 당사자가 없으면 우편물은 "수취인 부재"가 되어 발송지로 되돌아갔다.

지금은 이메일과 휴대전화는 장소 불문, 통신망이 연결된 곳이면 지구 위 어디라도 찾아가니 피할 수가 없네.

이메일과 휴대전화 번호를 바꿀 수는 있겠지.

아마 이름 바꾸는 것만큼이나 번거로울 듯.



리적인 실체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전자주소와 휴대전화 시대.

[괴도신사 아르센 루팡]을 읽다 보니 바다에서 배를 타면서 전신으로 대륙과 연락된다고 무척 감개무량해하더라.

봉수대로, 사람이 직접 마라톤으로, 파발마를 달려 먼 곳으로 소식을 전하다가.

서양에는 한때 우편마차가 있었고.

근대식 우편제도가 시행되면서 암호 같은 전신으로 긴급한 소식을 전하고.

전화기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얼마나 신기했을까.


또 우리들은 편지로 기쁘고 반갑고 안타까운 소식을 얼마나 주고받았던가.

편지를 띄우고 받는 그 시간의 격차에서 느꼈던 설렘과 조마조마한 기분을 이제는 되돌릴 수 없겠지.



휴대전화, 이메일, 카톡.

장소를 선택해서 택배를 받는 스마트 픽까지.

딱히 고정된 장소에서 주거하지 않아도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데 불편하지 않다.

일정한 주거지에서 나의 물건을 갖고 살아가는 지금의 주거형태에 변화가 올 지도 모르겠다.

노매드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고.

한달살이, 일 년살이 등등 여기를 떠나서 다른 곳에서도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들이 있다.


서양 점성술에서는 이제 바람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더라.

땅에 발붙이고 사는 시대가 지나가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영향을 주는 바람처럼.

물리적인 실체 없이 존재하고 가치를 발휘하는 그런 것들이 전면에 나선다는 뜻일까?

이를테면 사랑이라든가, 존중, 배려, 소통과 공존, 정직과 공정함 같은 가치들.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으면 소유를 확신 못하는 사람들이 불안해도 하지만.

이미 우리는 신용카드라든가 계좌이체 같은 방식으로 현물 없이 숫자만 찍히는 상징들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나.

지금도 사이버 세상은 숨 가쁘게 진화 중이니.



사이버 주소지에 적을 두고 몸은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날들이 곧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들고 다녀야 하는 물건들이 번거로워져서 소유가 아닌 이용으로 중점이 옮겨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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