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강북 사람이라...
서울역에서 시청을 지나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종종 지나간다.
인구 이동이 많은 번화가여서 그런지
지날 때마다 확성기의 볼륨을 한껏 높여서 뭐라 뭐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있더라.
왕왕 삑삑,
기계를 통해 확대된 그들의 절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내가 본 한에서 그들의 주제는 개신교 쪽 전도와 극우적인 허무맹랑한 소리가 거의 다임.
간혹 목탁을 두드리는 승려 복장도 나타나긴 하더만
겨룰 만한 사이즈가 결코 못 된다.
서울역 앞에는 번갈아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팀이 있지 않나 싶게 개신교 계열이 자리를 꽉 잡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밀착하여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부터
고래고래 피 토하는 설교를 하거나.
재능 없이 오로지 극성으로 부르는 떼창까지.
아무리 봐도 전도가 아니라 혐오를 불러올 것 같던데
무슨 생각으로 광장에 나서는지 기이하더라.
서울역 앞에는 늘 여러 팀이 서로 경쟁하듯 앰프 소리를 높이는 통에 고문에 가까운 굉음을 피할 수가 없다.
그 소리를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노숙인들도 어려움이 많을 듯.
덕수궁 정문 대한문 앞은 극우들의 고정석이 되었다.
강렬한 색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극단적인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고,
날이 잔뜩 선 확성기 소리로 저주를 퍼붓는다.
전에는 부정선거, 백신 무효, 한미동맹 같은 구호 더니
지난 토요일 오후에는 "문재인 타도"를 한없이 외치더라.
할아버지 혼자 마이크를 들고 주변에 할머니 몇 분이 플래카드 들고 앉아있던 듯.
코로나가 지구를 휩쓸든 말든,
남들이야 괴롭든 말든
나는야 내 맘대로 떠들란다!, 는 강력한 호기.
몇 년 전,
광화문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우리가 질소냐 시청 쪽에서는 주말에 태극기 집회가 있었다.
어머니 병으로 뉴스에 무심하던 때라 그 주말 시청 쪽에서 태극기 시위가 있는 줄을 모르고.
하필이면 시위의 한가운데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했었다.
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창문을 통해서는 왕왕거리는 소음만 들렸는데.
잠깐씩 거리로 나가보니
유머도 없고, 여유도 없고, 풍자도 없고, 해학도 없이.
술과 음식을 먹거나 건물 화단에 담배꽁초를 수북이 버리면서.
상당히 불량스러운 자세로 무질서하게 도로를 점령하고는.
오직 지지 않겠다는 억지와 증오와 저주의 몇 시간.
그분들이 살아온 시대와 노인 세대의 황폐한 내면을 확인했었다.
나라의 비참했던 근현대사로 인해 개개인이 받은 상처를 치유할 틈도 없이 거친 생존경쟁에 내몰린 사람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존재를 키울 여력도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차였던 시대.
그래서 껍데기만 성장했지 속은 상처 투성이로 고스란히 늙어버렸다.
뭐가 뭔지 사리 분별할 능력은 없지만 마음에 쌓인 설움은 크다.
나가서 떠들자- 이렇게 된 걸까.
거리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은 노인들만이 아니다.
그 노인들을 내보내는 실제 인물은 따로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은 한두 해 해본 솜씨가 아닌 경력사원 포스더라.
서울역 개신교 쪽 종교인들은 거의가 중년 또는 청년층이다.
왜!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서 울부짖는가?
속이 터져서 도저히 집에 못 있고 밖으로 나와 절규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그들을 밀어내는 내면의 동기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