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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Sep 26. 2021

영수증, 아, 이 흔적들

끄적끄적

가방에서 영수증을 꺼낸다.

수북이 손에 잡히는 영수증들.

지난 며칠 돌아다닌 나의 흔적들이다.

시간은 소비를 낳고,

소비는 영수증을 남긴다.

그 영수증들은 텅장을 만들지.


앱으로 확인한 소비의 증거는 잘게 잘라서 휴지통으로 보내버리니,

한 주일의 소비는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갔다.

더불어 은행 잔고도 자취를 감추리라.

가렴,

결제된 대금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내 몸에 살이 되고 피가 되었으리라, 쓰린 마음을 달랜다.



살아있음은 곧 소비가 되었다.

생산은 하지 않아도 소비는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숨을 쉬는 매 순간이 즉 소비이다.

내가 한 소비는 낱낱이 저장되고 분석된다.

띠리링,

또 다른 소비를 부르는 유혹은 쉼 없이 날아들고.

오직 소비자로서만 존재는 의미를 갖는가, 싶기도 하다.


소비에 뒤따르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만 남기고 나는 지구를 떠나게 되려나.

지옥이 있다면,

생전에 탐욕을 부려 쌓은 재물과 생각 없이 해댄 소비의 무게를 온몸으로 떠받치는 벌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무고한 남을 괴롭힌 죄 또한 대가를 치를 날이 있으리.

수북한 영수증들과,

퇴직금으로 무려 세전 90억, 세후 50억을 받으셨다는 누군가의 아드님 소식이 짬뽕되어 떠오른 뻘 생각.

짤깍 짤깍,

일요일이 가고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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