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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Sep 22. 2021

흐느적흐느적 연휴 끝날

일상 속에서

느릿느릿 두둑하니 아점을 먹었다.

한밤중에는 빗소리가 요란하더니,

옴마나 날이 이리 좋을 수가!

가방에 책 한 권 넣고 거리로 나선다.



경희궁은 서울의 궁궐 중에서 덜 알려진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싹 다 밀어버리고 상당 부분은 상업지역이나 주택가로 바뀌고,

새문안 길에 면한 부분에는 일본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버렸다.

독립하고 우리 형편이 나아진 뒤에 학교를 이전하고 예전의 궁궐 일부 건물은 복원했지만.

한편은 서울역사박물관이 되어 궁궐 치고는 좁은 면적에 상당 부분이 텅 비어 있다.

그래서인지 입장료도 없고 아는 사람만 온다.


나무 그늘에 놓인 벤치에 멍하니 앉아서 한가하게 오가는 가족들을 보다가.

솔솔 불어오는 시원하고 청명한 바람에 행복한 기분으로 책을 조금 읽었다.

의 왜곡이 있는지 눈으로 보는 풍경과는 비율이 조금 다른데,

하여간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붉은 단청의 궁과 살살 부는 시원한 가을바람.

아름다운 풍경, 기쁜 휴일, 좋은 계절이었다.

다들 충분히 쉬었는지 오가는 사람들에게서도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그렇게 책을 좀 읽다가 뜰을 한 바퀴 돌고는 바로 옆 역사박물관으로 간다.

이런 돌길을 걷고 돌계단도 지나서.

박물관에는 아이들과 나온 가족들이 드문드문, 딱 좋을 정도로 있었다.

천천히 전시회장을 둘러보고,

영업하지 않는 구내 카페의 빈자리에 앉아서 다시 책을 펼친다.

건물은 내 취향이 아닌데 요기, 건물에 둘러싸인 마당은 좋다.

(코로나 시국인 지금은 나갈 수 없게 막아두었다.)

화창한 볕이 내리쬐는 요 자리에 앉아서 또 책을 읽었다.

아. 참 좋은 시간.



그러다 냉장고에 넣어 둔 맛있는 케이크가 막 어른거리는 거였다.

살짝 출출하니 케이크 한쪽에 홍차 한 주전자가 딱인 것을.

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그대로 벌렁 누워버리겠지.

안 돼, 이 좋은 날씨에 방구석이라니,

좋은 날씨는 아껴야 해.

그래서 테라스가 있는 식당으로 가서 바깥에 앉아서는,

속에서는 배부르다, 고 아우성인데 꾸역꾸역 음식은 남기지 않고.

식당을 나와서 또 경희궁으로 가서 한참 걷다가 들어왔다.

한동안은 가을, 좋은 날씨려니.

아끼고 사랑하자.

아름다운 가을을 실컷 누려야 극심한 겨울 날씨를 묵묵히 견딜 수 있겠지.


좋은 날.

연휴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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