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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Mar 30. 2022

도시에 대한 자부심

끄적끄적

<문학의 도시 런던, Literary London>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엘로이즈 밀러와 샘 조디슨이 쓰고 이정아가 한국말로 옮겼으며,

올댓북스 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다.


런던에 연고가 있거나 런던에 근거한 작가들과 문학작품들을 훑어보는 문학사적인 내용이면서,

동시에 작품 속 배경이나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한 런던의 바로 그 장소를 소개하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지은이들은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런던이라는 장소에 대한 애정으로 서문에 밝히다시피,

고적한 습지대였던 먼 옛날의 런던부터..... 종말 이후를 그린 여러 작가들이 예측한 런던의 모습까지 대략적으로 살펴(10쪽) 보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정말 런던의 문학적 자산은 풍부하더라.

지극히 대중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작가만 보아도,

셰익스피어부터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나 바이런 같은 시인들, 셜록 홈스를 쓴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에.

최근 해리포터의 배경으로도 런던은 나온다.

마르크스도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자본론>을 썼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런던이라는 장소에서 예술가로 성장했으며 런던이라는 장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냈다.

내가 부러운 건 이런 것이다.


 런던은 대대로 좋은 문학적 친교의 장이 돼주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이 도시로 모여들었고,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싸구려 와인을 마시며 모종의 계획을 세웠고, 새로운 운동을 생각해 냈으며, 성명서들을 썼다....... 런던은 무수한 학파와 반대 학파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집합소였다. 또한 런던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즘(-ism)들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런 이즘의 대부분에 딸려 나온 프리(pre-), 포스트(post-), 안티-포스트(anti-post-), 프리-포스트(pre-post)의 중심점이었다. 심지어 런던은 공연 시인들에게 마음 놓고 연습할 장소가 돼주었다.

 이와 같은 조화로움과 자유로운 사상의 교류에는 장점이 많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학적 경쟁도 똑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수세기 동안 런던의 작가들은 경쟁을 통해 문학에 대한 독기와 절박감을 키우고 피와 살이 되는 독설을 퍼부으며 자신을 채찍질해왔다. (94쪽)


작가들이, 예술가들이, 학자들이 모여들고.

세계에 대한 시각과 인식, 사유를 나누고.

인생과 세계를 함께 번민하고 고민하면서 꿈틀꿈틀 무언가를 이루어갔을 것이다.


빈약한 토양에서도 한 걸출한 개인이 초인적인 업적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발성으로 끝난다.

런던처럼 오랫동안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는 파도처럼 물결치는 문화적 성과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그저 물질적 성취에 따라오는 당연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적 소양이 있고,

인문학적인 사유를 존중하면서.

개개인이 문화를 소비하고 즐기면서 탐구하는 생활 속의 문화를 가질 때.

비로소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었다, 말할 수 있겠지.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이 좋아졌지만.

한때의 어수선한 물질적 성공으로만 끝날지,

이를 바탕으로 세련된 정신세계와 높은 문화 수준으로 발돋움할지,

기로에 서있다.


불안한 건 사실이다.



* 덧붙여, 


하나,

오매, 다는 아니겠지만, 

작가들이 보여준 유치함은 상상을 넘어서더라.

책에서는 그리 고매한 아름다움과 정신세계를 탐구하던 작가들이 서로를 시기, 질투하는 유치한 모습을 보자니, 와~~~


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는데...

조용하게 응원을 보내주시는 몇 분만 간간이 들어오던 구멍가게 같은 제 브런치에,

갑자기 조회수가 급증해서 놀라고 있답니다.

글을 써 온 지난 3년 동안의 누적 조회수를 30시간도 안 되는 동안에 넘어버렸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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