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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차는 달려가고 Jul 08. 2023

나쓰메 소세키가 벗어나려 했던 세계

끄적끄적

20세기 초에 활동한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을 공부하여 대학 교수로 있다가,

잡지에 연재한 소설 <나는 고양로소이다>로 뒤늦게 작가가 되었다.

소설이 크게 평가받자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신문사 소속의 전업작가가 된다.

그 후 건강이 몹시 나쁠 때를 제외하고 십여 년 쉴 새 없이 글을 썼다.


국가에서 장학금을 받아 영국에 유학하던 시절에 그는 책을 사느라 상당히 곤궁하게 지냈다고 하고.

지인에게 보낸 편지던가에는 '내게 큰돈이 생기면 도서관을 짓고 그 안에서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일본 도쿠가와막부의 마지막 해에 태어나서,

권력도, 가치관도, 삶의 방식도 모두모두 격변하던 메이지 시대를 통과하며 어른이 된 작가는,

물질만능과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출세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작가의 소설들이 본인이 속한 세계,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그대로 본뜬 것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일본 근대기 다른 사소설들처럼 본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었다.

숙환으로 사경을 헤맨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수필로 썼는데.

지금 내가 쓰는 내용은 모두 <유리문 밖에서>라는 책의 내용으로 나는 기억한다.



이미 충분히 아들들이 있는 상황에서 쉰 살이 넘어 뜬금없이 태어난 아기를 아버지는 남에게 줘버린다.

노점상인 양부모가 추운 날씨에 장사하느라 데리고 나와 볼이 빨갛게 얼어있는 막냇동생을 본 큰누나는 아기를 도로 데려오고.

아버지는 다시 자식이 없는 잘 아는 부부에게 아이를 입양 보낸다.

수시로 거짓말을 하고 시기심과 이기심에 위선적이며,

서로 자기편으로 아이를 끌어당기던 양부모.

그들의 거짓된 내면을 꿰뚫고 그런 성정을 미워하는 명석하고 결벽한 어린 소세키.

양부모가 이혼하면서 소세키는 본가로 돌아오고 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신다.

소세키를 도로 데려가라며 그간의 양육비를 요구하는 양부와,

장남은 요절하고 집안을 이을 총명한 막내아들이 필요해진 친아버지는 오랫동안 돈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벌이는데.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상황에서 소속이 불분명한 탁구공 신세였던 자신의 성장기를 소세키는 담담하게 토로한다.


본가도, 처가도 쇠락한 소세키는 주변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야 했는데.

매정한 남편과 사는 큰누나에게도 매월 일정 액수를 송금했다.

누나가 잘 해준 기억이 분명히 있고,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누나에게 소세키는 안쓰러움을 느끼지만.

고마운 마음을 엉뚱하게 드러내는 주책맞은 큰누나와 마주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그토록 자신이 벗어나려 했던 세계,

도저히 사랑할 수는 없는 그 세계를 큰누나가 보여주기 때문이겠지.

뜬소문을 입에 달고,

불평불만과 부러움으로 하세월 하면서.

사리분별 없는,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공정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이며 안이한 사람들의,

좁디좁은 가볍고 우둔한 세계 말이다.


그러니까 소세키는 어릴 적부터 못난 어른들의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산적이고 야비한 거짓의 세계를 응시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올바른 가치관에 좋은 인성품격을 갖춘 정신세계를 고양하는,

그런 세상에서 우정을 나누고 협력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었고.

책에서 엿본 그런 세계의 일원이 되고자 소세키는 무진 발버둥 쳐왔던 것이다.



우리가 꿈꾸고 갖고자 노력하는 더 나은 세상이라 함은 단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화려한 그런 차원만은 아닐 것이다.

넉넉하고 올바른 인격과 반듯하고 품위 있는 태도를 갖추고.

이상을 향하며 진실에 호응하는.

그렇게 성숙한 인격체들이 서로 도우면서 이루어내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상.


하지만 이상향은 단지 손에 닿지 않는 꿈일 뿐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란 서로 치고받고 거짓말을 내뱉으며,

약육강식,

먼저 먹는 놈이 임자!,

내 손에 쥔 떡은 많을수록 좋다는,

그저 인생은 고해일 뿐일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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