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빛이 있었다면,
인류 문명은 소금과 함께 했다.
소금은 사람과 동물의 신체 활동에 필수 성분이라,
산에서 캐낸 소금덩어리나 바다에서 퍼낸 바닷물은
고된 노동을 거쳐 우리가 먹을 만한 소금이 되어 사람 있는 곳이면 어디든 전달되었다.
당나귀 등에 무거운 소금주머니를 매달고 터벅터벅,
안개 낀 뿌옇고 좁은,
가파른 낭떠러지를 걸어가는 행상들을 떠올리면 찌르르, 아련한 아픔이 느껴진다.
목숨을 이어가려는 고달픈 발걸음이었다.
옛날 우리나라 보부상들도 손에 들거나 등짐을 지고 깊은 산간의 오일장까지 찾아다니며 소금을 팔았다.
옛날 우리 집 작은방에는 함지박에 받쳐놓은 천일염 포대가 있었지.
똑똑 간수가 배어 나오는 천일염을 그때그때 작은 병에 덜어 썼는데.
거칠고 탁한 천일염은 무와 배추를 절일 때,
고추장과 된장을 담고 간장을 거를 때,
새우를 굽고 젓갈을 담고 오이지를 만들면서 소금을 풍덩풍덩 덜어냈다.
오징어를 씻으면서도, 오이를 씻을 때도 굵은소금 한 움큼 집어 박박 문지르고.
나물을 데치면서 끓는 물에 소금을 넣었다.
소금은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소금은, 소금을 특징 지워주는 짠맛에 더해 여러 가지 미네랄 성분을 품고 있기에 그 짠맛에 미세한 차이가 있고,
혀에 남는 맛의 여운이 다르다.
당연히 소금의 종류에 따라 쓰임도 구별이 있지.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식재료의 맛과 쓰임을 제대로 알아간다는 의미를 포함하는데,
어디에, 어떤 짠맛을, 어느 만큼 추가할 것인가-를 감각으로 알아채야 한다.
구운 고기는 참기름에 넣은 소금에 찍어먹을 때 그 맛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고.
바지락을 끓일 때 조금 털어 넣은 소금은 바지락의 고소한 맛을 살려주며.
고등어는 굵은소금을 탁탁 뿌려 구워야 제격이다.
기름을 발라 구운 김에는 솔솔 가는소금을 뿌리고.
기름 솥에서 막 튀겨진 튀각에도 소금 몇 알갱이를 뿌려줘야 그 맛이 완성된다네.
쌀로 죽을 끓이면서 소금을 넣고,
국수와 빵의 기본 재료는 밀가루와 물과 소금이다.
소금이 있어야 비로소 음식은 미각을 돋울 수 있다.
흔하고 값싸다고 이 시대의 우리는 소금의 가치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대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사리사욕을 얻어내는데 혈안이 되어,
재물에만 정신 팔려 있는가, 한탄이 나오는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빛과 소금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빛이 없으면 암흑이고,
소금 없이는 생명이 위협받으니.
크거나 작거나 밝거나 희미하거나,
내 자리에서 내 몫만큼의 빛과 소금이 될지니.
소금 몇 알갱이에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런데,
투명하고 파아란 바다에,
우리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쓰레기와 방사능 물질로 오염되고 말았으니,
이제 소금은 어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