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라켓 가방이 무거웠던 이유

마음이 지나간 자리 16화

by 전태영

열 여섯번째 감정, 부끄러움

양심은 언제나 가장 엄격한 재판관이다 -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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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테니스 동호회에서 회비를 정산하는 일이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계산서를 받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숫자가 적힌 종이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오늘은 몇 명이었더라.’

머릿속으로 빠르게 얼굴들을 떠올리며 인원을 셌다. 그러다 늦게 참여한 두 사람이 생각났다. 공을 치지 못했고, 중간에 먼저 자리를 떴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둘을 빼고 계산했다. 고의로 사용료를 줄이려 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오늘 테니스를 거의 하지 않았고, 체육관에 머문 시간도 짧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 순간에는 합리적인 판단처럼 느껴졌고, 별일 아닌 선택 같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라켓 가방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어깨에 멘 가방이 평소보다 더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집까지 이어지는 길을 달리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숫자가 떠올랐다.

‘아까 그 계산, 맞았나?’

숫자를 다시 세어볼수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그건 몇 천 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서도 아니었다. 다만, 나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 계산이 완전히 정직하지는 않았다는 걸.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라.”

그날 밤, 그 문장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구의 눈에 띄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사람은 늘 자기 자신과 가장 오래 함께 살아가니까. 그 시선 앞에서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다음 주, 다시 모임이 열렸다. 총무가 코트를 예약하고 사용료를 계산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데, 마음 한켠에서 뜨거운 감정이 천천히 올라왔다. 괜히 시선을 피하게 되고, 사소한 장면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정직하지 못한 선택은 마음에 작은 돌 하나를 얹어놓는 일이라는 것을. 그 돌은 당장은 가볍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게를 더한다는 것을. 반대로, 정직한 행동은 내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이란 나를 무너뜨리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다시 세우는 감정이라는 것도.


그날 테니스장의 따뜻한 햇살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작은 진실을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라켓 가방을 멜 수 있기를 조용히 다짐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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