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 내려놓고 다시 서다

마음이 지나간 자리 17화

by 전태영

열 일곱번째 감정, 당당함

행복은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느낄 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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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참 많이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정점에서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왔다. ‘교육장’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나는 다시 ‘학교의 원로교사’가 되었다. 누구나 가는 길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처음 걷는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39년 전, 초등교사로 첫발을 내딛던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교단 앞에 서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던 그날의 공기, 아이들의 눈빛, 분필 가루가 희미하게 날리던 교실의 풍경까지.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흘렀다. 나는 교실을 떠나 행정의 자리로 옮겼고, 교육의 현장을 넘어 한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완성’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8월의 어느 무더운 날, 내 마음은 조용히 요동쳤다.


“교육장님, 이대로 명예롭게 퇴직하시지, 무슨 원로교사세요?”

주변의 만류는 어쩌면 당연했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1년 반. 이제는 속도를 늦추고, 무사히 내려와도 충분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쪽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멈춰도 괜찮을까?’
‘한 번쯤은, 진짜 현장으로 돌아가 보고 싶지 않은가.’

퇴직이 아닌, 다시 교사로의 복귀. 그 선택은 누구의 조언으로도 대신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많은 밤을 뒤척이며 고민했고, 계산도 해보고, 마음도 달래보았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자리’가 아니라 ‘아이들 곁’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론에 닿았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편안함 대신 낯선 하루를 택했고, 내려옴 대신 교실의 소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내게 매일 새로운 설렘을 안겨주고 있다. 아침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설 때면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나를 맞이한다. 선생님들과 나누는 짧은 인사, 사소한 질문 속에서도 다시 ‘배움’이 움튼다. 나는 다시 하루를 준비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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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간은 또 한 번 나를 다른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 다가오는 2월, 나는 정년퇴직을 맞는다. 39년의 교직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순간이 눈앞에 와 있다. 예전 같았으면 퇴직은 ‘끝’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려놓음, 비움, 작별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아이들 곁으로 다시 돌아와 보니, 퇴직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쉼표처럼 느껴진다. 충분히 걸어왔고, 충분히 나누었고, 이제는 숨을 고르며 다음 문장을 준비하는 시간 말이다.


요즘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어디에 서 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이유는, 그 일이 크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다. 내가 즐겁게, 당당하게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당함은 누가 달아주는 훈장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믿음이며, 선택에 대한 책임이다. 곧 교단을 공식적으로 떠나더라도, 나는 여전히 교사로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 곁에서 배운 시간, 교실에서 얻은 마음, 사람을 믿는 법은 은퇴와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나처럼,
스스로의 선택을 사랑하고
그 길 위에서 하루를 성실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내게 준 가장 큰 축복 아닐까.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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