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남, 다름을 틀림으로 착각할 때

마음이 지나간 자리 19화

by 전태영

열 아홉번째 감정, 화남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 하지 않아서 화를 낸다 -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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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당구장에 갔다. 대학 시절부터 즐기던 취미라 가끔씩 생각나면 큐대를 잡곤 한다. 그런데 그날, 참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어렸을 때 절친했던 친구를 무려 45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서로의 얼굴에 세월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반가움만큼은 그때 그대로였다. 우리는 잠깐 동안이나마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당구를 치기로 했다. 첫 게임은 실력이고 승부고 떠나, 그저 좋았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만났을 때 일이 조금 달라졌다. 친구는 당구를 치며 이것저것 설명을 쏟아냈다.

“당구는 이렇게 치는 거야.”

“초크는 이렇게 발라야지.”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편한 친구를 만났으니, 말이 조금 과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렇게 치면 안 돼.”

“그것도 못 치면서 무슨 당구를 치냐.”


그 말들이 내 귀에 박히는 순간, 오랫동안 쌓아온 내 당구 자존심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대는 아마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일지도 모른다. 비싼 큐대를 자랑하며 프로처럼 치는 그의 모습 뒤에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 안에서는 묵직한 화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화를 터뜨릴 수 없었다. 45년 만의 만남을 그렇게 망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내 마음을 담아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자네 스타일대로 치고, 나는 나대로 치는 거야. 프로가 아닌 이상, 당구는 즐기는 거면 되는 거지.”

말을 꺼내자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그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날의 나는 순간적으로 올라온 화를 어떻게 다루느냐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상처받고, 때로는 화가 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화의 대부분은 ‘상대가 틀려서’가 아니라 ‘나와 달라서’ 생기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문제는 그 기준을 상대에게 그대로 들이밀 때 일어난다. 내 마음의 공간이 좁아지면 상대는 상처를 받고, 나는 화를 억누르게 된다.


화가 났던 그날 이후로 조금은 알게 됐다.

모든 감정의 출발점은 결국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려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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