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지나간 자리 23화
어떤 일들은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주변을 한 번 더 살폈고, 지나갈 것들은 모두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이제 정말 괜찮겠지 싶어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가려던 순간, 어디선가 무언가가 휙 하고 시야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들린 소리는 충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묘한 ‘툭’이었다. 놀라서 멈춰 섰고, 혹시 내가 뭔가를 잘못 느낀 건 아닐까 잠시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속도도 없었고, 흔들림도 없었고, 눈에 보이는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 이미 상대는 내려서 헬멧을 벗고 있었고, 허리를 짚고 있었다. “허리가 아프네요.”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빨라서, 나는 아직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말 살짝 닿았어요.” 말을 하면서도 이 말이 필요한 상황인지 스스로 헷갈렸다.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경찰 부르죠. 보험 처리해야죠.”라고 말했다. 그 한 문장으로 상황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고, 나는 아직 방금의 ‘툭’에 머물러 있었다. 설명할 틈도, 맥락을 맞출 여지도 없이 일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이상하게도 그 속도만큼은 방금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억울함보다는 묘한 감정이 남았다. 화가 나기엔 너무 싱거웠고, 웃어넘기기엔 또 이상하게 현실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신호 없는 사거리를 지날 때면 더 오래 멈춰 서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도, 혹시 또 내가 모르는 기준이 갑자기 튀어나오지는 않을지 괜히 살피게 된다. 살다 보면 이렇게 설명하기도 애매한 일들이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엔 상황이 너무 작고, 그렇다고 없던 일로 치기엔 이상하게 또렷하게 남는 일들이다. 그날의 ‘툭’은 사고라기보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어이없음 중 하나를 직접 밟아본 경험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일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무엇보다 세상이 늘 내 상식 안에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기억하게 되었다.
당황스러움.
그건 나를 멈춰 세운 단어이자,
세상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게 만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