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지나간 자리 25화
아쉬움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만 남는 감정이다.
이제 교단에 마침표를 찍을 날이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맞는, 나에게는 마지막 겨울방학이다. 전문직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지 2년,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다. 학교에서의 첫 날의 공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새로 칠해진 담벼락의 냄새, 복도 가득 울려 퍼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낯설고도 따뜻했다. 다시 ‘선생님’이라 불린다는 사실이, 오래 묵은 마음의 불씨를 다시 피워 올렸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온전히 누리며 보내자고. 아이들의 한마디, 교실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 쉬는 시간의 소란스러움까지 마음에 담아두자고.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났다. 바다를 보며 차 한 잔을 마시고, 낯선 마을의 골목을 걸었다. 그 순간들이 참 소중했다. 다시 교단에 선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선물 같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다짐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수업 준비와 컨설팅 자료, 글쓰기와 업무들이 하루를 빽빽이 채웠다. 어느새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뀌었고, 나는 여전히 새로운 계획 속에 묻혀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과 학교의 풍경은 그렇게 내 곁을 조용히 지나갔다. 문득 집 앞 하천을 걸으며 생각한다.
아이들이 떠들며 뛰어다니는 그 소란스러움을 나는 얼마나 마음으로 느끼며 지냈을까.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 짓궂은 장난 하나하나가 사실은 ‘지금’의 선물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퇴직을 한 달 앞둔 지금, 이 고요한 겨울방학 속에서 나는 오히려 지난 시간들을 더 또렷하게 떠올리게 된다.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깊게 내려앉는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슬픔이 아니라, 내가 이 길을 진심으로 걸어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움이 깃든 자리에는 늘 사랑이 있었고, 놓쳐버린 시간의 한가운데에도 여전히 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마지막 겨울방학이 끝나면,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의 삶도 끝이난다. 하지만 나의 교직 인생이 완전히 멈추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실이라는 공간을 떠나더라도,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수많은 경험과 고민, 시행착오와 배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그것들을 이제 다른 방식으로 나누고 싶다. 교단 위에서 아이들을 마주했던 이야기들,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시간들을, 그 이야기가 필요한 후배 교사들과 학교에 조심스레 건네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방향을 찾는 작은 힌트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학생을 직접 가르치던 삶은 끝나지만, 교육을 향한 나의 마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제 나는 교실이 아닌 자리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선생님’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더 잘하려 애쓰기보다, 더 많이 나누며 살고싶다.
이 순간을 온전히 품은 채, ‘선생님’으로서의 마지막 계절을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지나가고 싶다.
그렇게 아쉬움마저 품은 채,
나는 다음 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