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지나간 자리 26화
아름다움은 보는 눈이 아니라, 머무를 줄 아는 마음에서 태어난다
매일 아침 7,000보를 채우기 위해 집을 나선다. 학기 중에는 늘 시계부터 보며 서둘렀지만, 겨울방학에 들어서고부터는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급하게 어딘가로 가야 할 이유가 사라지자, 길 위의 풍경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무의 가지 끝, 얼어 있는 풀잎, 연못 위에 얇게 남아 있는 겨울의 빛 같은 것들. 예전 같으면 그저 배경으로 지나쳤을 장면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나를 붙잡는다.
오늘도 고수부지의 강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고요한 물 위로 바람이 아주 살짝 스치고, 그 사이에서 하얀 백로 한 마리가 천천히 날개를 펼쳤다. 급한 기척 하나 없이, 마치 이미 이 장면을 오래 준비해 온 것처럼. 날개가 열릴 때마다 물 위의 햇빛이 반짝이며 흩어졌고, 잔잔한 물결은 그 빛을 조심스럽게 받아 안았다.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물 위에 드리운 백로의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 비친 또 하나의 하늘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며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대로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사진으로 남길 생각도 없이, 그저 눈으로만 담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순간에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었을 것이다. 해야 할 일, 내일의 일정,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겨울방학이라는 느린 시간이 주는 여유 덕분에, 지금의 나는 이 고요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곧 백로는 천천히 날아올랐다. 하얀 몸이 공기 속으로 스며들 듯 떠오르며, 물 위에 부드러운 흔적을 남겼다. 그 선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잔향 같은 것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상’이란 어쩌면 멀리 날아오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를 묵묵히 걸어내는 일, 잠시 멈춘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펴는 일이 진짜 비상일지도 모른다고.
백로는 바람과 빛과 물결 속에 스스로를 맡긴 채 올라가고 있었다. 애쓰는 기색도, 힘을 주는 모습도 없이 그저 흐름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유난히 예뻐 보였던 건, 완벽해서가 아니라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는 눈부신 높이로 날아오르고, 누군가는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며 마음의 날개를 조금씩 편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성실함과 용기는 다르지 않다.
나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연못을 벗어나며도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겨울방학이라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예쁨은 멀리 있는 특별한 풍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람이 스치고, 빛이 머물고, 마음이 조금 열리는 그 순간, 그 평범한 하루 속에도 충분히 예쁨은 존재한다는 것. 오늘 아침, 연못 위의 백로는 내게 그 조용한 진실을 남기고 하늘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