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냥 친구
8/ 현(現)-1
사랑에는 대단한 이유가 없다.
그저, 연기(緣起)처럼 A로 인하여 B가 기하듯이
사랑은, 사랑으로 인해 사랑하니까, 사랑할 뿐이다.
휘나는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는 어떤 것이 됐든지 절대로 타지 않았다. 느닷없이 보도로 뛰어들어 엄마를 날려버린 검정색 승용차.
보도를 물들이던 붉은 피와 엄마의 초점 없는 눈동자. 그 모든 것이 아직도 끔찍한 악몽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생애 첫 데이트다! 청용열차 앞에서 무섭다고 말하면 안 되지!
박력 있게 먼저 계단을 밝고 올라갔다. 삐그덕! 거리는 철제계단이 저승으로 가는 지름길 같았다. 휘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오빠, 놀이기구 잘 타요?”
“그럼!”
휘나는 턱을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에이, 못 타는 구나?”
복순이가 손가락으로 턱을 가리키며 말한다.
“얼굴에 다 써져 있어요. 오빠, 얼굴 하얗게 변했어요.”
“아, 아냐. 나 잘 타. 하나도 안 무서워.”
복순이가 휘나의 팔을 강하게 잡아끈다.
“그냥, 물개 쇼 보러 가요. 사실 제가 못 타요. 저걸 어떻게 타. 아, 끔찍해.”
복순이는 소름 끼친다는 듯이 얼굴을 떨며 말했다. 실밥이 터진 짧은 청치마에 하늘색 체크무늬남방. 한껏 멋을 낸 복순이의 다리는 유난히 길었다.
휘나는 복순이가 이상하게도 편했다. 말투도 고분고분 예쁘게 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에, 인물이면 인물, 몸매면 몸매,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었다. 아! 공부를 못한다고 했지. 괜찮아, 예쁘면 다 용서 돼!
복순이를 바라보는 휘나의 얼굴이 저 푸른 하늘처럼 맑기만 하다.
아, 이렇게 좋은 애를 두고 왜 난 먼길을 돌아온 거냐.
휘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헌데, 갑자기 시은이 얼굴이 떠올랐다.
뭐냐! 사라져라. 날 부려먹는 놈은 시은이라도 용서 못한다. 휘나는 갑자기 오기를 부린다.
“그럼, 나 혼자 타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으아, 무슨 말을 한 거냐. 휘나는 천천히 차례를 기다리면서 무척 후회했다.
청용열차에 올라 탄 순간부터 시작해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래, 죽여라! 죽여! 하며 말이다.
그러나 출구로 나오는 순간에는 복순이를 의식해 머리도 만지고 눈을 똑바로 떴다. 다행히도 오바이트가 쏠리지는 않았다.
“탈만 하네.”
내려오며 복순이와 함께 사진을 보았다. 잔뜩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얼굴이 참으로 볼썽사납다.
“오빠, 한 번도 눈 안 떴죠?”
“아냐, 딱 한 번 감았는데 그 때 찍힌 거야.”
“피이, 거짓말.”
“진짜야.”
“오빠는 거짓말 할 때면 턱을 세워드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봐요, 또 거짓말. 얼굴이 하해. 호호호!”
휘나는 재빨리 턱을 가슴에 붙였다. 호호호! 복순이의 웃음소리가 맑게 퍼진다.
“사실, 무서워서 혼났어. 동물이나 보러가자.”
휘나의 밝은 표정에 복순이도 활짝 웃었다. 순간, 복순이의 얼굴이 시은이의 얼굴로 변해버렸다. 휘나의 눈이 가운데로 몰리고 있었다.
“오빠, 왜 그래요? 그러니까 타지 말라니까요. 어머, 눈 사시된 거 좀 봐!”
“아냐, 아냐. 괜찮아,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딸꾹질이 나온다. 복순이는 급히 음료수를 사왔다.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딸꾹질은 계속 나왔다.
휘나는 딸꾹질과 함께 물개 쇼를 보고, 물개 쇼 주변의 동물원을 돌아 테마공연장에 도착했다. 마침, 테마공연장에서 마당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왜 하필 별주부전이란 말이냐!
용왕 앞에 나아가 명을 받는 별주부의 복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시은이 주문한 것과 비슷했다. 대머리만 다를 뿐.
저걸 왜 못 입는 다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민희와 처음 핫라인을 연결했을 때 꿈속의 장면을 기억해냈다.
시은이는 한국예대에 들어가려고 저런 걸 준비하고 있었구나. 별주부가 나와 인연이 참 많구나 하며 마당놀이를 지켜보는 휘나의 눈이 매우 진지하다.
“이제 어디 갈까요?”
마당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자리를 떠나자 복순이가 물었다. 복순이가 대답 없는 휘나의 눈을 보니,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별주부를 향해 있었다.
“저 거북이 아저씨 아는 사람이에요?”
“으, 응? 아니. 그냥 재밌게 생겨서.”
휘나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그 때다.
소품을 챙기는, 하얀 색 옷을 입은 아르바이트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무대를 휘 저으며 배우들이 사용한 소품들을 익숙하게 챙기는 그녀.
휘나의 눈이 동그래졌고, 심장 뛰는 소리가 복순이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복순이가 휘나의 확대된 동공을 바라보는 그 때,
“시은아.”
휘나가 홀린 듯이 시은의 이름을 부른다. 허리를 숙여 황소 뿔을 집어 들던 그녀는 동작을 멈추었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휘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야, 김휘나!”
시은은 반갑게 소리치며 미끄러지듯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무대 계단을 훌쩍 뛰어 관중석으로 내려왔다. 그 순간, 귀에 걸린 핫배지가 유난히 번쩍였다.
“넌, 별 걸 다 한다?”
휘나는 핫배지를 못 본 척 물었다.
“인라인?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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