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사랑 바이러스
책상에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
죽은 듯 멈춰있는 머리와 몸.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복순이가 책상을 손바닥으로 팡! 치며 벌떡 일어났다. 머리를 질끈 묶고 나서, 가방에 옷가지와 책을 쑤셔 넣다가 한숨을 “휴…….”하고 내쉰다. 또 다시 멍해진 눈에, 멈춰버린 손.
해바라기모양의 시계바늘이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
다시 책상에서 책을 챙기다가, 또 동작이 멈춘다.
복순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책상에 앉아만 있었다.
“청승떨고 앉았네. 빨리 기숙사 가서 공부해 이년아! 아빠 기다리잖아.”
복순이는 벌떡 일어났다. 노크도 없이 문을 확! 열고 다가오던 엄마는(여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복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애, 애가 왜 이래…….”
엄마가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살펴보니 딸의 표정이 귀신에 홀린 듯했다.
내가 너무 조여서 애가 쇼크 먹었구나!
“보, 복순아.”
얼굴에 손을 가져가는 그 때, 복순이의 눈이 번쩍! 하며 다시 살아났다.
“오메, 참말로! 이것이 뭔 일이여 시방!”
얼마나 놀랐으면, 레이저부인의 입에서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왔다.
“엄마,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복순이는 그대로 거실로 뛰쳐나가 아빠를 본체만체 현관을 빠져나갔다.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해! 애가 쇼크 먹었잖아!”
복순이 아빠가 목에 힘껏 힘을 주며 소리쳤다. 레이저부인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따진다.
“이 화상이, 뭐 한 게 있다고! 나가서 돈이나 벌어와, 이 웬수야!”
복순이 엄마 목소리가 훨씬 컸다.
똥개처럼 그대로 기가 죽어 꼬리를 내리는 복순이 아빠. 조용히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한다. 나이 45세에 빌로우 코리아에서 명퇴 당했다. 퇴직금도 어느새 다 까먹고, 빛은 눈 불어나듯 불어나고 있었다.
***
이불에서 엎치락뒤치락, 복순이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휘나는 시은이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획! 걷고 일어난 휘나는 핫배지를 들고 베란다에 서서 야경을 감상했다.
복순이와 함께 한 오늘이었지만 시은이의 얼굴만 아른거렸다. 별주부놈까지!
미칠 것 같은 그리움 그리고 질투. 어쩐지 꿈속에서까지 나타나더니!
갑자기 또 그분이 오셨다. 식신께서 오셨다.
먹고 싶다!
또 미친 듯이 먹고 싶어졌다.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다가, 몇 초 버틴다. 신경질적으로 냉장고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린 휘나는 방안 곳곳을 서성이다가, 아빠 방에서 오래된 앨범을 꺼내어 엄마의 사진을 보았다.
오랜만에 엄마 사진을 보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 아빠는 오늘도 술 먹나봐. 아빠도 나도 많이 힘들어. 아빠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힘들고, 난 엄마도 보고 싶은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더 힘들어. 엄마, 엄마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어? 복순이는 날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자 같은 영혼을 가진 아이야. 난 복순이 때문에 다시 태어났어. 겉모습도 많이 변했고, 성격도 변했어. 옛날의 내 모습이 이제는 정말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너무도 많아. 하지만 복순이보다 시은이가 자꾸 좋아져.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지만 시은이가 무척 좋아졌고 지금도 시은이가 너무도 좋아. 시은이가 보고 싶어 죽겠어. 나 어떻게 해야 해?”
사진 속에서 엄마가 웃으며 대답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니 맘대로 하세요!”
휘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아빠가 언제 들어왔는지, 뒤에서 엿듣고 놀리고 있었다.
“엄마, 난 복순이보다 시은이가 더 좋아앙!”
“뭐야! 비겁하게.”
“시은이가 보고 싶어 죽겠어잉!”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