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남자
5/Fantasie Impromptu Op.66
페노메논 웨이브(Phenomenon-Wave) 연구소.
하얀 소라껍질처럼, 특이한 생김새와 구조를 이루고 있는 건물주차장에 기인전담반 소속의 오토바이가 멈춰 선다.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단비다. 검은 부츠와 타이트한 복장이 단비의 몸매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단비는 바이크의 스탠드를 세우고, 지상5층 높이의 거대한 소라고깔을 올려다본다. 단비의 시선은 건물 중심에서부터 양쪽으로, 쭉 뻗어나가 있는 원형터널을 따라 간다.
지름2미터가 넘는 파란색의 거대한 원형터널이 하얀 소라고깔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뻗어 나와, 공중으로 쭉 뻗어 청계천을 따라 돈다.
마치, 대규모 물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길고 거대한 미끄럼시설 같았다.
지금 단비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된 공중터널의 총 길이는 무려 27킬로미터에 달한다. 거대한 원형터널은 시청과 광화문 또 숭례문을 포함하고 있으며 한강 일부를 비롯해 잠실대교까지 포함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미스터리서클을 보는 듯하다.
이 거대한 원형터널이,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부정권이 적극추진하고 있는 LHC파동원인 찾기 실험의 본모습이었다.
실험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14년 전, 파동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각 나라마다 앞 다퉈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암, 졸려…….”
단비는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고나서, 눈물을 닦았다. 소라모양의 희한한 건물과 간판을 다시 본다.
“페노메논 웨… 이브연구소? 사이비종교치고는 정말 색다르단 말이야?”
최근 시사프로에서 한 번 크게 때려서 보았다. 신도들은 150명인데, 모두 젊은 여자였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교주는 우주인과 대화를 나눈다고 주장했다. 또 에너지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변형시켜 자연만물을 통해 신비한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단비는 정문 앞에서 인터폰을 누르려다 멈춘다.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가 계기판 아래에 부착된 단말기를 켰다. 액정화면을 통해 연구소 책임자의 신원을 확인한다.
작은 액정화면에서 인물들이 빠르게 검색되었다. 페노메논 웨이브연구소 소장 박주용이라는 인물이 화면에 떠올랐다.
나이는 스물 둘!
귀공자처럼 순한 눈매에 잘생긴 코와 하얀 피부가 단비의 눈을 확 사로잡았다. 화제의 인물답게 정말 잘생겼다.
“와…….”
단비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핫브레이슬릿 미등록이라고 확실하게 떴다.
단비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신 후, -카메라 앞에서 조금 떨어져 얼굴이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게 한 후- 인터폰을 눌렀다.
오랫동안 인터폰을 눌러도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단비는 정문에서 조금 떨어져 보안시스템을 자세히 보았다. 홍채인식과 지문인식을 비롯해 보안이 철저했다.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까다로운 것이 틀림없었다. 이 거대한 장비의 공사가 시작되어 완성되던 그날까지, 시민들의 농성은 물론, 난동과 침입이 잦았던 것을 기억해낸다. 단비는 즉시 팀장에게 연락해, 페노메논 웨이브연구소 출입허가를 받아내 줄 것을 요청했다.
“기다려 봐, 5분 안에 열릴 거야.”
잠시 후, 거짓말처럼 문이 열린다.
“뭐야, 이거?”
단비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서자, 프론트에 비서로 보이는 여인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한다. 하늘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건물 어디에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굉장한 실력이다. 아니, 어마어마한 실력이었다. 단비가 평생을 받쳐(그래봐야 19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포기하고만 하머클라비어 소나타다.(*Hammer Klavier,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나 플랫 장조, 작품 106의 곡명. 웅장한 구상의 작품이며, 1819년에 작곡하였다) 단비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머클라비어 소나타, 저 괴물에게는 피아노천재 또는 관일의 혜안 같은 것, 통하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페이스 난조로 얼마나 좌절했던가. 단비에게 있어서, 진짜 괴물은 식인귀도 아니오, 오직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였다. 물론, 혼자서 힘들게 연주자의 꿈을 키워가던 단비에게 괴물은 많다. 바흐, 쇼팽 등등 평생지고가야 할 십자가 같은 곡들을 내려놓았을 때, 단비는 비로소 포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 땅의 수많은 천재들이, 정규과정을 거쳐, 일류대학에서 더 뛰어난 천재 스승을 만나, 천재들만 모인 프라하, 빈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 그 천재들보다 더 열심히 해도, 힘들고도 먼 길.
연주자의 길……. 거장의 길……. 단비는 그 길을 엄마와 함께 헤쳐 나갔지만, 결국 스승이 먼저 넘어졌고, 다음으로 단비마저 넘어지고 말았다.
“누가 치는 건가요?”
“아, 네.”
비서는 수줍어서 말하지 못한다. 단비는 참 웃기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치기에 말도 못한단 말인가.
단비는 동그란 원형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보고 싶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원형계단에는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햇살 속에는 먼지하나 반짝이지 않는다.
단비는 꿈을 꾸듯, 그 햇살 속으로 들어간다. 난간을 잡고 계단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더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피아노 선율이 단비의 심장을 꼭 붙잡아버렸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누군가가 온몸을 사포로 빡빡! 문지르는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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