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절망의 농도
6/Multiple Personality
박주용은 컴퓨터 롬에 디스크를 집어넣는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흘러나온다.
박주용은 음악에 취해 눈을 감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어린 시절 추억의 단편이 떠오른다.
옥상 위에서 보았던 아이.
봉선화 씨앗을 터트리며 좋아하던 아이의 웃음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그 때, 뒤에서 녹슨 쇠를 긁는 것만 같은 자극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음산한 웃음소리까지.
“킬킬, 사랑 놀음인가? 아냐, 아냐 사랑 놀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예뻐. 마치 운명처럼. 나라도 욕심 날 거야. 근데, 도대체 왜 접근하는 거지? 그 여자, 화이트브레인 때문인 거야. 킬 킬킬, 넌 알고 있었어.”
박주용은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인상이 무섭게 굳는다.
“오오, 그렇게 인상 쓰지 마. 내가 방금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주었거든. 내가 마음먹어서 못하는 건 없지. 음악에 맞추어 에너지주파수를 조금 흔들어 주었어. 이 세상 말이야, 결국 에너지의 총합이잖아?”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박주용은 상대를 돌아보지 않고서, 단호하게 말한다.
“킬킬, 14일, 14일이었지. 4월 14일 말이야. 그날은 우리의 생일이었고, 파동을 맞은 기념 적인 날이기도 한 거야.”
어둠 속에서 대머리가 반짝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머리였다. 하지만 입에서는 뱀의 혀가 날름거린다. 박주용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대머리의 귀에는 하늘색 보석의 귀걸이가 걸려있다. 박주용의 핫브레이슬릿은 반응하지 않는다.
“난, 지금이 정말 좋아. 너의 산만한 그 상태, 너무도 좋아. 크리스마스이브보다 몇 천 배나 더 좋아! 난 지금 세상이 다 내 것 같단 말이지! 네놈의 의지에서 벗어나,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단 말이야! 크, 하하하하하!”
뱀의 혀를 날름거리는 대머리 뒤로, 한 사람의 모습이 더 보인다. 마치, 밤송이 같은 머리를 가진 4살배기 아이였다. 아이와 대머리는 박주용과 꼭 닮았다.
“그렇게 순진한 척, 멋진 척 하지 마! 저 계집에게 진실을 까발려주지! 네놈이, 어떤 놈이라는 것을 말이야! 잘도 거짓말을 지껄여 대더군. 뭐? 뭐라더라? 한 사람, 한 사람 시작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겠지요. 한 송이 꽃이 피어나면 산과 들에는 수천, 수만 송이의 꽃이 피어나잖아요? 푸 헤헤! 그래서 그렇게 기인들의 머리를 갈라 댄 거야?
뭐, 어쨌든 그렇게도 얻고 싶었던 십이성을 얻어냈잖아. 이제는 드디어, 저 장비도 완벽하게 돌릴 수 있는 ‘블랭킷’도 손아귀에 쥐게 되었고 말이야. 킬킬, 넌 나보다 더 나쁜 놈이야. 걱정 말고 일본에 다녀와, ‘블랭킷’을 찾아오라고. 저 년은, 내가 다 수를 생각해 뒀어. 저 년이 너에게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말이야. 여자들은 말이야, 모성애를 자극하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거든. 뭐, 제 발로 걸어와서 애써 머리를 갈라 보았더니 화이트브레인이 없다면 그 땐 내가 깔끔하게 처리해줄게. 킬킬! 그리고 사냥꾼 놈들 역시 용서하지 않겠어. 감히, 의뢰인을 배반해?”
박주용은 대머리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참선하듯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바로 고른다. 그러나 교활한 웃음소리는 즉흥환상곡을 눌러버린다. 박주용은 오른쪽으로 무너지며 고통스러워한다.
***
단비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들렀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하얀 병원 건물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 것일까? 박주용이 정말 우주인과 대화를 나눈다면 어쩔 건데? 아, 나도 이 짓 다 때려치우고 신도가 되고 싶어. 내 머리를 기증할까?’
그러다 아빠 얼굴이 떠오른다. 상황에 휩쓸리지 말라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했던 약속.
‘아, 나도 정말 미쳐버리고 싶다.’
단비는 엄마가 좋아하는 슈크림 빵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구, 우리 새끼. 엄마가 젖 줄게.”
엄마는 아직도 단비를 아기로만 생각한다.
단비는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빤다.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단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단비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