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奇)와 혈(血)의 시대 #19

식인귀의 비밀

by 임경주

9/십이성(十二成)


연구소에 도착한 박주용은 정문에서 홍채를 인식하기 전 주변을 둘러본다.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만 같다. 적막한 밤하늘부터 시작해, 하얀 소라모양의 건물을 한 바퀴 뱅 둘러본다. 그리고 양쪽으로 쭉 뻗어나가 있는 공중터널까지.

한참을 그렇게 서성거리고 있는데, 문이 저절로 열린다. 비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박주용을 확인하고 즉시 문을 열어준 것이다.

“소장님, 안 계시는 동안 이 여자가 와서 막 행패 부렸어요.”

비서는 불쾌하다는 듯이 녹화장면을 보여준다. 가로등 아래, 단비의 모습이 보인다. 단비의 목소리와 바이크의 화면을 통해 상관과 나누는 대화가 박주용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온다. 박주용은 실험실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비서에게 말한다.

“내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게 하지 마.”

선한 눈웃음. 비서는 가슴에 손을 모으며 고개를 힘껏 끄덕인다.

실험실 안에 들어서니, 대머리남자와 어린아이가 원탁 의자에서 일어나 박주용을 반긴다.

“모두 잘 들어, 놈이 따라붙었어.”

박주용의 말 한마디에 둘의 표정은 순간 굳어버린다.

“우릴 잡아먹을 거야! 우릴 잡아먹으려고 따라붙은 거라고!”

뱀눈을 굴리고 뱀의 혀를 날름거리는 또 다른 대머리박주용은 소리를 지른다.

그 뱀 사나이 옆에서 큐브를 신경질적으로 맞추고 있는 네 살 배기 아이는, 화산 분화구 같은 뿔 수십 개가 머리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뒤통수가 숨을 쉬듯 크게 들쑥날쑥한다. 부풀 때는 분화구가 곧 폭발할 듯 커졌다가 작아지며 연기가 새 나온다.

“아, 열받아! 잘 안되잖아! 젠장! 또 왜 나타난 거야?”

큐브를 사정없이 내동댕이 쳐버린다.

“맞아, 이번에는 반드시 우릴 잡아먹기 위해 나타난 거야. 아니? 아냐. 잡아먹으려면 진작 잡아먹었겠지. 놈은 왜 우리 주위를 맴도는 걸까?”

아이는 서랍에서 새로운 큐브를 꺼내어 만지며 혼자 중얼거린다. 밤송이 같은 분화구에, 볼 살이 빠지지 않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박주용과 꼭 닮았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있다.

한 소녀가 사방이 유리벽으로 청정이 유지되고 있는 진공실험실 안에 잡혀있었다.

의자에 단단히 묶인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는, 아직 사춘기를 거치지도 않은 앳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끔찍하게도, 머리는 양쪽으로 절단되어 뇌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뒤통수에는 척추에서 척수가 밖으로 빠져나와 노란 식물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허리까지 이어진 척추도 피부가 갈려, 훤히 드러났고, 등껍질이 나비의 날개처럼 양쪽으로 펼쳐져 핏줄과 함께 고정되어 있다. 또 쇠파이프가 3초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양쪽 무릎을 타격한다. 계속 같은 충격과 속도로 타격이 이루어진다.

화이트브레인을 통해 십이성을 추출하는 과정이다. 대뇌, 즉 소녀의 좌뇌와 우뇌 중앙에는 눈꽃처럼 하얗게 꽃을 피운 화이트브레인, 즉 백뇌가 솟아올라와 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로, 자랄 만큼 자라 버린 악성 종양과도 비슷했다. 단지 색깔이 눈처럼 새하얄 뿐.

“조용, 조용 여길 봐.”

박주용은 두 사람을 진정시킨다. 바로 그때, 소녀의 머리 위에 위치한 붉은 조명이 깜박인다. 박주용은 불빛을 보고 재빠르게 반응한다.

“잠시만 기다려…….”

박주용은 청정 복장을 꼼꼼하게 챙겨 입고 진공실험실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강력한 에어세척과 소독을 마친 후, 이중자동문을 지나쳐 소녀의 앞에 섰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은빛우주인 복장의 박주용을 바라본다.

붉게 충혈된 눈망울에 루비 같은 눈물이 맺힌다. 박주용은 그 눈물을 외면하고 소녀의 등 뒤로 돌아가, 뒤통수에서 척수를 잡아 뺀다. 원형유리파이프 안에 손을 넣고 그 유리파이프 안에서 척수를 빼내는 것이다. 100% 청정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척수 양쪽에 위치한 30쌍의 신경을 먼저 잘라낸다. 그리고 잡아 뺀다. 척수가 빠져나오자, 척추를 따라 전신에 퍼진 신경이 우두둑 떨어진다. 신경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그 부위에 따라 소녀의 몸도 서서히 마비된다. 중추신경계는 완전히 끊어졌지만 아직 살아있는 말초신경계에 의해 미세하게 떨릴 뿐이다. 45센티미터 길이의 지네와도 같은 노란색 중추신경이 척추에서 쑥 빠져나왔다. 진공유리파이프 안에 들어간 후, 밀봉된다. 소녀의 고운 얼굴은 무표정하다.

잠시 후, 화이트브레인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척수가 다시 빠른 속도로 자라난다. 거짓말처럼 30쌍의 신경계가 다시 연결된다. 소녀는 신경이 다시 연결됨과 동시에 고통을 느끼며,

“옳지 않아요. 잘못된 수단이에요…….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요.”

소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운다.

뇌와 척추를 훤히 드러낸 채로, 눈망울에서 떨어지는 피눈물은 작은 루비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박주용은 소녀의 척추에서 뽑아낸 척수를 유리관 안에서 조심스럽게 분쇄기로 이동시킨다. 다음, 척수를 분쇄기로 갈아 미세한 가루입자로 만든다. 그 붉은 가루에 피 같은 액체를 섞는다. 피 같은 액체는 소녀의 뇌하수체, 즉 뇌분비선에서 직접 뽑은 통증억제호르몬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우리 인간은 일정하고도 규칙적인 통증을 장시간 겪게 되면 그것을 극복하고자 뇌하수체에서 통증억제호르몬을 내보낸다.

소녀의 뇌에서 직접 혈액과 함께 추출한 것이 바로 액체로 된 통증억제호르몬이고, 척수를 뽑아 가루로 만든 것은 고체 통증억제호르몬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강력한 자극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십이성(十二成)이다. 이른바 인체에 부작용이 전혀 없는 마약인 것이다. 이 십이성이라는 강력한 마약을 만들고 화이트브레인을 발견해 내는 과정에서, 박주용의 아버지는 미쳐버렸다.

박주용의 아버지는 사람들을 납치해, 생체실험을 통해 화이트브레인과 십이성을 찾아내기를 시도했다. 납치한 사람들의 머리에서 화이트브레인을 발견하고자, 분노를 이끌기 위해, 실험실에 가두어 보는 앞에서 두개골을 가르고 뇌를 꺼내 보여주는 방식으로 공포를 조장했다.

그중 공포에 억눌리지 않고, 가장 침착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택해, 실험대 위에 다시 올렸다. 두개골을 열어, 백뇌를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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