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奇)와 혈(血)의 시대 #24

안녕

by 임경주

식인귀가 다시 나타난 곳은 시청 앞 광장이었다.

청계천의 식인귀난동으로 집회인원은 백만 인원에서 모두 뿔뿔이 흩어져, 몇 만으로 줄어 있었다. 식인귀는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 정중앙에 나타났다. 식인귀는 시민들과 군인들 그리고 경찰들을 구별하지 않고 마구 잡아먹었다.

─미친 듯이 사념을 빨아먹고 또 먹어, 덩치가 갈수록 거대해졌다.

어둠 속에서 퀭한 눈이 발광해, 빌딩을 넘어뜨리고 차들을 짓밟는다. 놀란 군인들과 경찰들은 식인귀를 향해 발포하다가 아무 곳이나 발포한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허벅지가 잘려나가 뒹굴고, 머리가 굴러다닌다. 시청광장에는 피가 발목에 잠길 정도로 흐르기 시작한다. 페노메논 연구소로 향했던, 증오와 원망 그리고 지독한 한을 품고 있는 사념덩어리 일부가 방향을 시청으로 바꾸었다. 시청광장에는 사념들이 하나로 모여 산처럼 부풀어 커지기 시작한다.

식인귀의 덩치는 빌딩을 이미 넘어섰고, 급기야 남산타워를 넘어서고 있었다. 시커먼 밤하늘과 맞닿는 높은 곳에서 퀭한 눈이 발광한다. 척추와 갈비뼈를 훤히 드러내고서 미친 듯이 포효한다. 쇳소리 한 번에 남산타워가 맥없이 꺾여 넘어간다.


***


“이제야, 모든 것이 끝인가. 끝내야 될 때군.”

박주용은 <순수의 자아>를 꼭 안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그 때 단비와 눈이 마주쳤다. 단비는 모니터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정신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뺨도 꼬집어본다.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박주용은 단호하게 말한다.

“안녕, 어서 여길 나가.”

짧은 인사, 단비의 눈을 피해 키보드로 향한다. 엔터를 향한 중지손가락이 떨린다. 천사 같은 단비의 얼굴을 더 보고 싶다.

“안 돼, 난 갈 수 없어. 안 갈 거야.”

단비는 얼굴을 계속 확인하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박주용은 뒤돌아보지 못한다.

“양성자가 가속되어 폭발하면……. 난 그 끝을 알지 못해.”

“싫어!”

“식인귀가 팔을 다 먹고 나면 또 다시 널 공격할 거야! 일단 몸을 피해. 화이트브레인이 있는 한, 죽진 않겠지만 머리가 잡혀 먹히면 모든 것이 끝나버려.”

“그만 둬. 그만 둬! 그만 둬! 다 그만 둬!”

단비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소리친다.

“그만 돌아가. 세상을 원위치 시켜야지.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

“오빠는! 오빠는 미치광이야! 미쳤어! 완전히 돌았다고! 안 가! 절대로 안 가! 못가!”

이제는 변한 외모고 뭐고 안중에도 없다.

“이 세상은 더 미쳤어.”

박주용은 짧게 말하고 뒤돌아 키보드를 향해 중지손가락을 내리꽂는다. 바로 그 때다. 단비는 달려와, 뒤에서 박주용을 안았다. 꼭 껴안았다. 결국 마음속의 진심을 말하고 만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단비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박주용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학대받고 상처받은 이후로 이모에게 받았던, 그 따뜻한 마음이었다. 진심은 진심을 알아본다. 진실 된 마음이었다.

박주용은 뒤돌아보지 못한다. 단비는 박주용의 연약한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알 수 있다. 전해져 온다. 이 남자의 진실, 식인귀로 하여금 자신을 공격하게 한 것은 이 남자가 아니라 대머리 <전능한 자아>의 짓이었다는 것을. 이 남자는 지금 필사적으로 안고 있는 소녀, 순수하고도 오직 선한 자아일 뿐인 것이다. 십이성을 강제로 투여한 것도 이상유전자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박주용은 허리를 강하게 묶고 있는 단비의 고운 손을 잡고 말한다.

“다시 만나게 되면 반드시,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곡을 들려줄게.”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세상이 원위치 되면 오빤,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서! 안 죽는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다시 만나요? 난 그 세계가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지금 오빠밖에 보이지 않아요! 설사 다른 세계가 있다고 해도! 날 어떻게 알고, 내가 오빠를 어떻게 알고 다시 만난단 말이에요?”

박주용은 단비의 손을 잡아 풀며 말한다.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끼리는 서로의 심장이 강하게 묶여 있대.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라도 반드시 만나게 될 거야.”

또 그 소리…….

단비는 소리쳐 묻고 싶었다. 정말 다시 만나면, 또 그 때는 내게 무슨 이용가치가 남아있는 거냐고! 난 오빠가 정말 좋아서, 정말 사랑하니까 다시 만나고 싶은 건데…….

바로 그 때다.

연구실 출입문이 쾅! 하고 터진다. 최루가스가 들어와 순식간에 사방이 뿌옇게 변했다. 단비의 동료들, 기인전담반요원들이 현관을 파괴하고 들어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검은 밤하늘을 가득매운 사념덩어리들은 살아있는 요원들의 사념까지도 빨아들인다. 요원들은 이성을 잃고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희미한 가스로 한시 앞도 보이지 않는다. 혼절한 비서가 기침을 해대며 정신을 차린다.

바로 그 순간이다. 바닥이 크게 흔들리며 원형장비 <아틀라스>가 뿌리 뽑혀져, 옆으로 무너졌다.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두 넘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의 유리벽이 팡! 하고 터지며 깨지고 여기저기 걸려있던 대형 모니터들이 우두둑 떨어져 내린다.

페노메논 연구소가 통째로 뿌리 뽑혀 들려지고 있었다. 거대민달팽이가 연구소건물을 들어 올리며 지상으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연구소 건물은 소라껍질과 같은 외벽 일부가 떨어져 날아가고 사각 실험실 본체가 지저분하게 남았다. 건물이 뿌리 뽑혀 솟아오르는 과정에서, <아틀라스> 양쪽으로 뻗은 원형터널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버렸다.

거대민달팽이에 의해 솟아오른 연구소건물은 지상으로 다시 추락한다. 원형터널이 엿가락처럼 휘어버린다. 철벽은 보존되었지만 유리벽은 산산이 터져 버렸다. 새하얀 그랜드피아노가 밖으로 빠져나가 뒹군다. 쾅! 소리와 함께 피아노가 지상에 비스듬하게 섰다. 건반이 있는 앞쪽 다리 두 개가 모두 부러진 것이다.

단비의 동료들, 팀장을 비롯한 기인전담반요원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국제회의 요원 네 명은 피아노를 건너 뛰어 박주용을 노린다. 푸슝, 소리와 함께 크로스보우가 발사되었다. 균형을 잡고 일어서고 있는 단비와 박주용을 사이로 날아왔다. 단비는 급히 박주용을 밀어버렸다. 벌어진 사이로 작살이 날아온다.

“그만 둬요!”

단비가 소리치며 급하게 한 사람을 막아서는 때, 또 다른 국제회의요원이 박주용을 향해 크로스보우를 발사한다.

“크악!”

작살은 박주용의 발목을 정확하게 꿰뚫어버렸다.

단비와 팀장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또 한 방이 날아와 박주용의 손목을 꿰뚫어 피아노 위에 박아 버린다. 단비는 아주 잠깐, 팀장을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팀장은 단비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단비는 여유가 없었다. 박주용의 품에서 <순수의 자아>가 바닥에 떨어져 피아노 옆에서 구르고, 박주용은 손과 발이 작살에 꿰뚫려 피아노위에 고정되었다. 엉덩이가 건반에 눌려, 불협화음이 들려오고, 붉은 피가 새어나와 작살과 연결된 와이어를 타고 줄줄 흐른다.

“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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