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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숏츠

장르문학에 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by 임경주


영화판은 감독이 왕이다.

1시간 반을 기준으로 영화 한 편을 찍는데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치자. 감독은 그 과정에서 배우와 스텝들을 아울러야 하고 예기치 못했던 변수를 만나면 다시 찍고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한다.

어쨌든 긴 시간을 두고 만들어진다.


드라마판의 왕은 작가다.

50분짜리 월화 드라마를 예로 들면 일주일 안에 두 편을 찍어야 한다. 거의 두 시간짜리 영상이다. 시간으로만 보면 한편의 영화다. 똑같이 명배우가 딴지를 걸기도 하고 연출감독이 대본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모든 요구조건을 일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 다 들어주고 조율하고 바꾸고 하는 건 솔직히 무리다.

그래서 드라마작가는 대본도 빨리 써야 하고 이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이 곧 실력이다.

근데 이것도 어쩌면 옛날 말일 수도 있다.


요즘 넷플릭스를 통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전체를 다 찍어서 완결성을 가지고 선보이는 드라마도 꽤 많다. 그러면 영화처럼 긴 시간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니, 작가가 왕이라는 말은 연속극에 해당될 것이다.


요즘은, 아니 좀 오래되었다. 웹툰이나 웹소설이 대흥행을 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유명작가가 판권을 가져가 각색하면 톱스타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넷플릭스 편성은 지금 따내도 29년에나 볼 수 있다나.


이야기는 그것이 한 편의 에세이든, 순문학 소설이든, 장르문학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서로 다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내가 장르문학에 입성한 건 드래곤 라자가 폭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비디오가게 한편에 진열된 호위무사와 권왕무적은 그전에 이미 대히트를 친 작품일 것이다.

그래 한 번 읽어볼까? 그렇게 하나 둘 접했는데 딱히 재밌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나랑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난 그때 나름 뭐가 있는 놈이라며 보르헤스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으니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너무 재밌게 읽은 나는 비디오가게에 진열된 판타지나 무협소설이 그리 재밌지 않았다. 유치했다. 시시했다. 대여료가 아까운 글들도 많았다.


내가 작가라면 난 이런 글을 안 쓸 거야.

하지만 이 생각을 바꾸게 해 준 작품이 있다.


전민희 작가의 룬의 아이들 원터러와 데모닉이다.

전민희 작가의 룬의 아이들을 읽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도 되지도 않는 순문학 판에서 매일 좌절하고 울고 있을지 모른다.


룬의 아이들은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다. 경계의 작품이다.

와, 나도 이렇게 써보고 싶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사실 군생활할 때 김용의 영웅문 3부작을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전역을 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영웅문 2부 신조협려에서 양과가 소용녀를 잃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결심을 할 때의 그 문장이 너무나도 다시 읽고 싶어 도서관도 찾아가고 그랬다.

근데 이때 나온 고려원 영웅문이 해적판이란다.

그래서 김영사에서 실력 있는 한학자들의 번역으로 영웅문이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로 나왔는데 난 오직 양과가 외친 저 문장을 정식판으로 접하고 싶어서 10만원의 거금을 들여 신조협려를 질렀다.

기대하고 또 기대하며 그 장면에 도착했는데…

이런, 양과가 그냥 뛰어내린다. 뭔 말을 하고…


아! 나는 그때 깨달았다.


문학의 경계를 따진다는 거 자체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고 변했다.

비디오가게도 사라지고 그 옆에 진열되어 있었던 판타지, 무협, 로맨스도 사라져 갔다.

내가 시작할 때만 해도 초판 4천 부를 찍었는데, 800부 찍는다고 들었다. 지금은 찍지도 않고.

전국 비디오가게가 다 문을 닫은 것이다.

시장이 사라졌다. 이렇게 장르소설은 망한 줄 알았다.

한데,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그 종이책시장이 그대로 옮겨져 왔다.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가 그 선두에 있다. 작품 수도 엄청나다. 인기작가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노출을 대문에 극대화하면 하루 1억 매출을 찍는다고 한다. 자릿세, 편집자 떼고 나면 적어도 하루 3천은 가져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작가들 사이에서 도는 말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여기에 드라마, 영화제작 판권으로 또 팔려 나간다.

10년 전만 해도 300만 시장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재밌는 이야기는, 좋은 글은 언제든 인정을 받게 되어 있고 절대로 어둠 속에 묻히지 않는다. 어떻게든 팔린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장르작가가 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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