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관하여
간만에 일찍 자려고 했는데 가족들 단톡방에 조카손녀 영상이 올라왔다.
29초짜리 영상이었는데, 책을 앞에 펼쳐두고 책에 관심이 전혀 없이 딴 소리를 하는 영상이었다. 그게 귀엽고 예쁘다고 누나들은 오냐오냐 하고 있다. 나는 속이 너무 상해 핸드폰을 꺼버렸다.
조카손녀가 앞에 펼쳐둔 책은 내가 직접 사서 넣어준 전집으로 웅진 마술피리 꼬마다. 이 책은 굉장히 유명한 책이다. 만 3세 아이까지는 반드시 읽고 지나가야 하는 책이다. 이 시기는 어떤 아이라도 언어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기이기에 이 마법과도 같은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 책을 접하면 어떤 아이든 언어가 발전된다.
한데, 책 읽기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상태로 딴 짓거리를 하고 있는 조카손녀의 모습에 속이 다 뒤집어진다. 조카내외에게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해주었다. 아무리 사는 거 힘들어도 제발 아이랑 시간 많이 보내고 책으로 같이 놀아 주라고. 그래서 비싼 돈 주고 책도 사서 넣어주었다. 그 때 대답은 아주 잘하더라. 한데, 정말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 때 차리라 전 그렇게 못해요! 라고 선을 분명 그어 대답했으면 기대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29초짜리 영상 그 어디에도 책을 좋아하는 모습은 단 1초 아니 0.1초도 없다. 글자는커녕 그림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저 나이 때 아이는 그림이라도 좋아하는데 저렇게까지 거부하는 것을 보면 답은 하나다. 허구한 날 시간만 되면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거다.
에이, 그냥 참고 자자. 내가 조카손녀 인생 끝까지 책임질 것도 아니고 하다가 혹시나 유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성장기의 아이는 부모와 함께 책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책이 아니라면 장난감이어도 좋다. 무엇이든 좋다. 제발 함께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말이다. 핸드폰만 던져주지 말고, 잘 때만 예뻐하지 말고.
보통 젊은 맞벌이 부모들은 또래 커뮤니티나 그 바운더리 안에서 더 좋은 집 더 나은 차를 가지고 있는 게 그들 세계에서 더 나은 우월함과 자부심을 유지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긴 인생을 두고 보면 큰 오산이다.
그 집 그 차를 구입하느라 안고 가는 채무를 갚느라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 잘 안다.
그러면 또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고 그러니까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아이는 내내 기관에 맡겼다가 겨우 잠깐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저녁시간에 또 핸드폰에 맡겨진다.
이제는 제발 성인이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른이라는 자들이 자기들끼리 술 마시고 놀며 아이를 방치한다. 그러면서 한마디씩 한다. 너 핸드폰 너무 보는 거 아니야? 그러면 자기들 놀고 있는데 아이 혼자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제발 힘들어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소주 한 잔하면서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내라.
책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아이의 어휘가 확장되고 상상력이 눈부시게 발전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즐거움으로 일상의 피곤함을 버티어 내라.
이게 그렇게 어렵나?
난 우리 아이 갓난아기 때부터 육아에 들어와 아이와 함께 합숙을 했는데 잠을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이런 식으로 쪼개 잤다. 사람 하루 수면시간이 1시간 반, 두 시간 이러면 사람 죽을 거 같지? 절대로 안 죽는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빼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성장기 아이와 놀아주었다. 그 놀이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한글을 일찍 받아들인 내 아들은 한글도 일찍 떼었다. 누가 들으면 신동이라고 하는데 절대로 신동 아니다. 다 요령이 있다.
우리 아들 24개월 때 내가 직접 한글을 낱말카드부터 시작해 하나씩 떼어주기 시작해서 28개월에 한글을 끝냈다. 30개월부터는 스스로 책을 읽었고 나랑 책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수준까지 갔다.
아이의 어휘가 눈부시게 확장되고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실로 놀랍다.
창의성이란 어휘의 발전이고 연속이다.
어디 시커먼 곳에 가두어 둔 아이가 무슨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나?
도대체 뭘 믿고 아이를 내버려두고 자기들 좋을 대로 살아가는지 난 정말 모르겠다.
제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보내라. 책이 아니어도 좋다. 장난감이어도 좋다. 함께 하라.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어느 시기가 되면 아이 혼자서 굴러간다. 더 깊은 어휘를 스스로 찾아가고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찍어 보게 된다.
1분에 1000글자 이상을 읽어내지 못하면 고등학교에 진학해 시험문제를 푸는데 엄청난 장애가 발생한다. 시험시작 종이 울리고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문제를 풀기는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시험지를 반납해야 한다.
공부 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너무 일찍 영어조기교육으로 가는 것도 문제가 굉장히 많다. 국내에서는 성적이 나올 리가 없다. 그러니 외국으로 돌린다. 근데 돈이 엄청 많아야 한다. 이건 뭐 그 사람들 돈이 있어서 이런 교육방식을 택했을 테니까 내가 이 부분은 더 이상 할 말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 공부를 잘하고 영특하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려면 책과 함께 부모가 같이 노는 것이다. 영어 책 말고 국산 책으로 말이다.
아니, 아이는 당연히 건강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 근데 거기에 공부도 잘하면 좋은 거 아닌가? 왜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있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
자기들 좋을 대로 편한 대로 막 키워놓고 막상 내 새끼가 공부 못하니까 배가 아픈 거겠지. 이런 부모들이 꼭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해? 정말 불쌍하다. 딱하다.
아이는 7세까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눈부신 황금의 그 시기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 숨은 우연과 운명에 희생 당하지 않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기반을 갖추고 진짜 고유의 삶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니 아이를 제발 혼자 두지 마라.
책이 아니어도 좋다. 어떻게든 함께 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라.
제발, 대답만 잘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