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5

#5 신(神)들을 포함한 이 세계를 이끄는 사람

by 임경주

진정한 무도인(武道人)이란,

<무도(武道)의 승리자>를 말하며,

무도의 승리자란 모든 의혹을 넘어서고 고뇌를 떠나 탐욕과 경쟁심까지도 버리는 자,

그리하여…….

신(神)들을 포함한 이 세계를 이끄는 사람을 말한다.

-애브젝트 0도, 오리엔탈보고서 중에서-



위소는 도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 수련생들의 동작을 유심히 살피며 머릿속으로 따라해 보았다. 이미지트레이닝이라는 것이 있다. 위소는 피아노를 치는 과정에서도 이미지트레이닝을 곧잘 했다. 머릿속에서 치는 피아노연습은 실전에서 꽤 효과가 있었다. 위소는 그 방법을 여기서도 적용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사범이 도장 중앙에 서서 수련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여자사범은 위소를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위소는 동작만 익히고 있을 뿐이었다.

“묵상”

여자사범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 위소는 자기도 모르게 쪼그려 앉은 상태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수련생들을 따라 두 눈을 감았다.

‘잊어버려라……. 위소야, 괜찮다. 잊어버려라…….’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자신이 너무 미웠다. 겁에 질려 문고리를 잡고 버티었던 자신이 창피했고 병신 같았다. 그 마음을, 위소의 아버지 탁위향은 잘 알고 있었다. 응급차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위소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괜찮다. 위소야…….

위소는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조차도 하지 못하고 엉엉 울뿐이었다.

“그만.”

정적을 깨는 여자사범의 목소리에 위소는 두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너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었다.

겁쟁이, 비겁한 자식, 병신……. 창피한 자식.

너는 네 엄마가 강도들에게 돌아가며 강간을 당해도 두려워 벌벌 떨기만 했다. 네 아버지는 너를 천재로 키워주며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넌 두려워 문고리를 잡고 버티었다.

위소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병신, 개자식, 죽지도 못하고 미쳐버리지도 못하는 나약한 병신새끼.

죽어버려, 죽어버려, 죽어버려! 너 같은 놈은 맞아죽어도 싸!

그렇게 한참동안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데, 커다란 눈망울이 앞을 가렸다. 눈망울 속에는 자신이 거꾸로 앉아 있었다. 위소는 깜짝 놀랐다.

“뭐야? 뭘 그렇게 째려보는데? 거울 속에 귀신이라도 있어?”

여자사범은 명랑한 목소리로 다가왔다.

“아, 아니요.”

위소는 코앞에 얼굴을 들이댄 여자사범이 부담스러웠다. 땀과 화장품냄새가 범벅이 되어, 코를 자극했다. 좀 비켜주었으면 좋겠는데, 여자사범은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음, 잘생겨서.”

위소는 할 말을 잃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은 그 때 표관장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왔다.

“위소, 들어와 봐라.”

관장실에서 표관장이 부르고 있었다. 위소는 벌떡 일어나 관장실로 걸어갔다.

위소가 들어갔을 때, 표관장은 일어서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관장의 뒷모습은 듬직했다.

‘아빠…….’

저 사람이 뒤돌아보면 아빠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위소는 아빠의 그림자를 털어내고 표관장을 다시 보았다. 허리에 갑상을 연결하는 끈 한쪽이 풀어져 흘러 내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전투를 끝낸 장군 같아 보였다. 오른쪽 소매가 올라가 있어, 팔뚝에 화상을 입은 상처도 볼 수 있었다.

위소도 5층 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리에는 지나가는 자동차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여기 저기 고개만 돌리면 흔히 보이는 태권도장과 합기도장 그리고 검도장간판이 위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위소는 그 중 검도장간판의 검(劍)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도로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던, 표관장은 뒤돌아섰다. 위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옛날 스승님께 들은 이야기 하나 해줄까?”

“네? 아, 네…….”

위소는 책상 위, 사진 속의 노인을 보았다. 표관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중국인이 틀림없었다.

“그래, 그분이 내 스승님이란다. 신비로운 분이셨지. 불산의 나선문하면 신비로움을 간직한 몇 안 되는 문파로 소문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맥이 완전히 끊어졌단다.”

표관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위소는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새 아파트 이사 전날,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며 오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위소는 문파의 맥이 끊어진 이유가 궁금했다.

“왜…… 죠?”

표관장은 위소의 눈에서 단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위소는 그 안광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눈을 피하는 순간,

“다 하늘의 뜻이겠지. 운이 거기까지니까…….”

라고 대답했다. 위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평소 아버지로부터 운명은 바꿀 수 있다고 배워왔었다. 하늘의 뜻이라느니, 운명이라느니, 이런 말들을 아빠는 굉장히 싫어했다. 하지만 아빠는 응급차 안에서 눈을 감으며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지금 눈앞의 듬직한 남자가 아빠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것.

위소야, 하늘의 뜻이겠지. 다…… 하늘의 뜻인 거야……. 그렇게도 발버둥 쳤건만……. 천벌을 받은 거지.

위소는 하늘의 뜻이라는 아빠의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위소의 현재가 그 증거였다.

“어쨌든 나는 ‘나선문’의 마지막 제자로 ‘나선문’ 재건의 사명이 있단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 요즘 시대는 스승과 제자보다는 사범과 수련생이라고……. 제자는 야, 야! 하며 허물없이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수련생에게는 함부로 야야 할 수가 없다고. 그러면서 이 못난 나를 제자로 받아주셨다.”

“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넌 나에게 제자가 될 테냐, 아니면 저기 있는 아이들처럼 수련생이 될 테냐? 난 말이다. 널 야야! 하며 허물없이 부르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위소는 방금 전, 여자사범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자신이 처한 사정을 알고, 사람들은 각각 다가오는 모습이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저에게 왜 잘해주시는 겁니까?”

위소는 그것이 궁금했다. 동정이라면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에게 잘해주는 것이냐?”

“네, 잘해주시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대단히.”

“몰랐네. 내가 뭘 잘해줬지? 해준 것도 없는데.”

위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관심을 가져주고 다가와주는 것만도 고마웠다.

“뭐, 어쨌든 앞으로 더 잘해주마. 서로 노력해야겠지. 그렇지?”

“…….”

위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 근데 듣자하니 아이큐가 220에…….”

“그만! 그만!”

위소는 갑자기 소리쳤다. 표관장은 깜짝 놀랐다.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전 쓰레기에요! 아이큐가 뭐가 중요한 가요?”

위소는 분에 못 이겨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흥분되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표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위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위소는 아빠가 너무 그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빠에게 최초로 거짓말 했던 순간 때문에 괴로웠다. 고무동력비행기 날리기 시합에서 보기 좋게 지고 온 날, 위소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었다. 신경질까지 부렸다. 모든 것이 다 아빠 책임이라며.

“넌 쓰레기가 아니다. 놈들이 쓰레기지.”

“놈들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세요? 놈들은 악마예요!”

위소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2년 동안, 놈들을 찾아 헤맸어요! 혹시나 하며 쓰레기들을 찾아 다녔다고요!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놈들에 대해 아는 것은 목소리뿐! 아무 것도 없어요. 대한민국 경찰들 정말 무능력해요! 어떻게 단서 하나도 찾아낼 수가 없는지!”

위소는 분에 못 이겨 씩씩거렸다.

“놈들을 찾아내면 어떻게 할 건데?”

표관장의 질문에 위소는 잠시 망설였다. 결국은 대답하지 못했다. 제발, 제발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면 찢어죽일 것이라 다짐하고 있지만 선뜻 말할 수가 없었다.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겠지. 악연도 인연. 하지만 네 마음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그것을 거부하고…….”

“아니, 아니에요! 놈들을 잡으면 찢어 죽일 겁니다! 두렵다니요? 놈들을 잡으면 그 가족들도 모두 죽일 겁니다. 내가 당했던 거 그대로 돌려줄 겁니다!”

위소는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표관장이 보기에 변명처럼만 들렸다.

“솔직하게 말하마. 난 널 돕고 싶다. 동정심은 아니니, 자존심을 버려라. 네 가슴 속의 두려움을 없애주마. 넌 보이지 않는 상대보다는 네 자신부터 이겨야 한다. 네가 겪고 있는 이 시련을 극복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명랑함과 솔직함, 그리고 용기란다.”

표관장의 얼굴이 아빠의 얼굴로 보였다. 잊어버려라, 괜찮다 위소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위소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다시는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해도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수련이 시작되었다.

표관장은 위소에게 청소부터 시작해 도장의 궂은일은 모두 시켰다. 위소의 됨됨이를 보려는 시험의 과정이었다. 머리를 믿고, 건방지거나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든다면 어찌 가르치겠는가. 또 불손한 목적으로 싸움실력만 쌓아 떠나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였다.

표관장은 위소를 지켜보았다. 그는 위소가 버티어내기를 바랬다. 위소는 군말하지 않고, 청소와 잡일을 도맡아했다. 불평불만이라곤 전혀 없었다.

한 달이 되었을 때, 표관장은 위소를 데리고 진검도시합을 관람했다.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진검도시합은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죽도에 정통으로 목을 찔려, 오바이트를 하는 선수들. 죽도와 죽도끼리 부딪치는 과정에서 파편이 튀어 눈을 꿰뚫어 실명당하는 사고. 머리가 터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손목뼈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져 KO당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였다.

“어때 충격적이야?”

표관장은 장난치며 위소의 표정을 살폈다. 위소의 눈은 변화가 없었다. 어둠의 끝을 본 그에게 진검도시합은 자극적일뿐, 충격적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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