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7

#7 눈썰미

by 임경주

홍사범, 홍가연은 천성적으로 마음이 약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위소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그녀가 아킬레스건 파열로 다리를 저는 것처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곁을 떠나질 못했다. 위소가 쌓아올린, 천재피아니스트의 위치가 너무도 아까운 그녀였다.

홍사범은 집에까지 쫓아와 빨래며 밥까지 해주었다.

“와, 장가가도 되겠네?”

홍사범은 위소의 집에 들어와,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낡은 피아노를 보며,

“호호, 피아노를 이렇게 둔 집은 처음 본다.”

라며 웃었다.

위소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아빠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위소는 사고를 당한 뒤, 단 한 번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피아노덮개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피아노만 보면 아빠가 그리웠고,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위소야, 피아노 좀 쳐 주라.”

위소는 못 들은 척 했다.

홍사범은 피아노의자에 앉아 덮개를 열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쳤다.

피아노소리를 듣는 순간, 위소의 몸에 전율이 일었다. 다시 피아노를 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그날의 악몽사이에서 위소는 괴로웠다.

“사범님.”

위소는 낮은 목소리로 홍사범을 불렀다.

“응?”

홍사범은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보았다.(실제로 그녀는 눈망울이 크고 피부가 하해서 예쁘고 귀여웠다. 키가 크고 어깨가 벌어졌지만.)

“죄송한데요. 피아노…….”

위소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으, 응?”

홍사범은 그제야 눈치를 채고 덮개를 닫았다.

“미안해.”

“아뇨, 제가 죄송해요.”

홍사범은 위소가 딱해 보이기도 했고, 대견해보이기도 했다. 3살 아래 동생인지라, 꼭 자신의 친동생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쓰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 정은 수련 중에도 드러났다. 위소는 홍사범에게 따로 검도를 배웠다.

“뒤로, 뒤로, 뒤로, 뒤로, 뒤로.”

위소의 발은 기계처럼 움직인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뭐야, 벌써 숨찬 거야?”

습득하는 능력은 천재적이었지만, 체력에 문제가 있었다.

“아니, 아니요. 하아, 하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좀 쉬었다가 하자.”

홍사범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다가와, 옷소매로 위소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수련생 중에 강일중이라는 고3선배(나이는 같지만, 나선도장 선배)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땀을 닦아주던 홍사범은 동작을 멈추고, 위소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었다.

“그만하자. 나, 솔직히 너에게 검도 가르칠 맛이 안나.”

“왜요?”

홍사범은 대답대신, 위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보세요?”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위소는 홍사범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연습할래요.”

“위소야.”

“사범님. 전 더 이상 피아니스트가 아니에요. 어차피, 손가락 부러져서 옛날처럼 칠 수도 없어요.”

위소는 홍사범을 피해, 자리를 옮겨 허공에 죽도를 내려쳤다. ‘가가여여’였다.

홍사범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리를 절며 위소의 옆으로 다가왔다. 위소는 홍사범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다리로 시합 뛸 수 있어요?”

“못해.”

“저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그만두세요.”

위소는 홍사범의 말을 자르고 죽도만 내려쳤다.

어디선가 피아노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다섯 달이 지난 지금, 위소는 아직도 왼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오른손이 왼손을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소는 염려하지도 않았고,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많은 성취를 이루어보았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된다는 것을 알기에 과정을 철저히 즐기는 여유와 근성이 뿌리 깊숙이 박혀있었다. 그것은 위소의 아빠, 탁위향이 심어준 커다란 유산이었다.

죽도를 내려치며, 오른손 근육발달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데, 홍사범이 말했다.

“칼끝을 쭉쭉 뻗어야해. 낚싯대 던지듯이. 봐, 이렇게.”

붕붕, 하며 홍사범의 칼끝은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 위소는 곧장 따라했다.

“이렇게 해야, 어깨 근육이 빠르게 발달 되서 왼손을 따라가지. 그렇게 깔짝깔짝해서 어느 세월에 두 손이 같아지겠냐. 가르쳐준 대로 연습하고 있어.”

홍사범은 뒤돌아 화장실로 향했다.

“어디가세요?”

“응? 화장실. 그걸 물어보냐.”

“…….”

위소는 얼굴이 발개졌다. 발개진 얼굴을 숨기려고, ‘가가여여’에 집중했다.

홍사범은 홀로 수련 중인 위소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손을 씻으며 얼굴을 만지다가, 소매를 코에 가까이 댔다.

“흠흠.”

위소의 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홍사범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위소는 거울을 보며 혼자 연습하다가 그만 실수를 저질렀다. 뒤에서 연습중인 수련생의 옷 끝을 밟고 말았다. 바지가 찢어지며 자빠진 선배는 화가 나서 위소의 얼굴에 주먹질을 했고, 위소도 본능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나선도장의 수련생들은 뭔가 특별대우를 받는 위소가 못마땅했던 참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혼자서 나선검을 따로 배운다는 것 자체가 꼴불견이었고, 부러운 것을 넘어서 시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뒤엉켜 바닥을 구르며 치고 박는 과정에서 나선도장의 양대 산맥으로 인정받고 있는 강일중과 박태일이 나서서 싸움을 중재했다.

표관장은 나서지 않았다. 홍사범이 말리려고 했지만,

“나둬. 자기들끼리도 위계질서가 있는 법이니까.”

라고 말하며 모른척했다.

강일중과 박태일은 위소와 싸운 녀석을 불러 정식으로 시합을 하게 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위소의 ‘나선검’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가여여’는 검도고수들이 보기에 그저 양손을 사용하는 기본적인 내려침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동작은 우스웠다. 아무 생각 없는 로봇 같았다.

“뭐야.”

강일중과 박태일은 실망했다. ‘나선검’이 저 따위라면 욕심낼 필요도 없었다. 위소는 보기 좋게 두들겨 맞았고, 비웃음소리를 들었다.

킬킬킬, 소리에 순간 대통령캐릭터가면이 보였다. 망치와 피비린내까지.

위소는 벌떡 일어났고, 그동안 배우고 연마한 ‘가가여여’를 사용해 상대를 향해 계속 내려쳤다. 흡사 로봇과도 같은 정교한 동작에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위소는 상대의 공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피하고 내려치기를 계속 해서 상대의 머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것은 ‘가가여여’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아버지가 심어준 유산, 눈썰미 때문이었다. 상대가 죽도를 내뻗어 공격해 올 때는, 어깨가 먼저 움직였고, 어깨가 움직이기 전에 상대는 전체적으로 개구리처럼 몸을 위축시키고 있음을 보게 된 것이었다. 눈썰미가 트이면서, 위소가 보기에 상대의 움직임은 정말 둔했다.

위소는 상대를 쓰러트리고, 소리쳤다.

“다음! 나와! 나한테 불만 많다는 거 다 알고 있어. 뒤에서 욕하지 말고 나와서 말해!”

위소는 소리쳤지만, 모두 저 새끼 뭐야? 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하하하!”

박태일이 큰소리로 웃었다. 그는 위소의 발전이 실로 놀라웠다. 같은 남자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만, 여기까지. 모두 자리로 돌아가.”

박태일의 말 한마디에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각자 수련을 했다. 위소는 이런 분위기가 더러웠다. 한 때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었고,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부러진 손가락. 잃어버린 꿈.

무엇인가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느낌……. 그것이 하늘이라면, 지금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아버지처럼 거역했다가는 큰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처럼, 그저 순응하고 사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위소는 거울을 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빠……. 운명이란 것은 거역할 수 없는 건가 봐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위소야, 네 이름대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시련을 이겨내고 나면 대성할 거다. 점쟁이가 그랬어.

‘아빠…….’

위소는 거울을 보며 죽도를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거울 속, 놈들의 가면이 사라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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