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광기는 인간이 지닌 모든 사악한 것을 지배한다. 게다가 광기는 정치의 현자를 육성하는 야망, 부를 증대시키는 구두쇠근성, 철학자와 교양인을 고무시키는 경망스러운 호기심등 인간의 모든 사악한 것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들을 간접적으로 지배한다.
-애브젝트 0도 보고서,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에서 발췌-
2년 뒤.
위소가 조기 졸업한 배화영재고등학교 뒤편, 봉서산 아래약수터는 수질오염으로 대장균기준치가 초과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곳이었다. 어느 날부터, 비행청소년들이 모여들었고 위소는 이곳에서 오늘도 비행소년들을 상대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시비는 항상 위소가 먼저 걸었다. 책가방을 깔고 앉아 오순도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패거리들에게 다가가, 엉덩이 밑의 가방을 걷어찼고 욕을 퍼부었다. 보통 이런 식이면, 놈들은 처음에 잠깐 놀랬다가 혼자라는 것을 알고 기가 살아 덤벼들었다. 위소는 한 놈만 죽어라 팼다. 그럴 때면 광기가 살아나, 무작정 패다가 귀를 물어뜯기도 했다.
오늘 싸움이 붙은 녀석들 중에는 위소와 몇 번 싸운 경험이 있는 녀석도 있었다. 놈은 단단히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저 새끼, 저거 잡아. 손목 잡아. 오늘 작살을 내버릴 거니까.”
놈들은 여러 명이서 위소를 붙잡아, 팔을 내뻗은 상태로 바닥에 제압했다. 그 중에 한 녀석은 위소 앞에서 큰 돌을 쥐어 들더니, 손등을 위협하며 소리쳤다.
“이 미친 새끼야. 너 듣자하니 천재피아니스트라며? TV에도 여러 번 나오고 그랬다며? 천재피아니스트가 피아노나 칠 것이지, 왜 여기 와서 시비 걸고 지랄이야!”
“킥, 다 죽여 버리고 싶거든.”
위소는 제압당한 상태에서도 비웃으며 말했다.
“아, 시팔!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도대체 이유가 뭐야?”
“사람 죽이는데, 이유 있어?”
“이런 미친 새끼가!”
녀석은 참지 못하고 돌을 내려쳐버렸다. 위소의 중지손가락뼈가 부러져버렸다. 위소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냈다. 고통 속에서 느껴지는 희열은 무엇일까. 사람과의 싸움……. 직접 부딪쳐보니, 싸움은 별거 아니었다. 고통이 고통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그렇게 두려워 벌벌 떨기만 했을까.
“이 독한 새끼, 소리도 안 지르네? 한 번 머리가 터져봐라!”
놈은 위소의 머리를 향해, 다시 한 번 더 돌을 내리쳤다. 빠악, 소리와 함께 위소의 머리가 터져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킥!”
위소는 웃었다.
“더 쳐.”
“이, 미, 미친…….”
“더 치라고! 더 쳐봐!”
위소의 고함소리가 약수터에 메아리쳤다.
“지금 날 죽이지 못하면, 넌 내 손에 죽을 거다. 구원 같은 것은 없어.”
위소의 광기에 놀란 소년들은 제압하고 있던 힘을 풀고 하나둘 물러서기 시작했다.
“아, 안 잡어? 안 잡고 뭐해 새끼들아!”
위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 때, 다른 녀석이 공포를 이겨내며 발을 날려 위소의 복부를 걷어찼다.
“개새끼, 죽어버려!”
위소는 다시 고꾸라졌다. 한 놈이 달라붙어 발길질을 시작하자, 놈들은 다시 위소에게 달라붙어 폭력을 행사했다.
2년 전부터, 위소는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다. 위소의 딱한 사정을 아는 경찰관들은 처음에는 호의적이었지만, 이제는 진절머리를 쳤다.
나선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표운삼관장은 차로 봉서산 아래를 배회했다. 한적한 공원, 차가 라이트를 밝히는 곳에서 청소년들이 한바탕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부앙, 표관장은 차를 몰아 녀석들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이놈들이! 뭐하는 짓이얌마!”
표관장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소리쳤다. 놈들은 동작을 멈추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이 씨, 뭐야?”
표관장은 차에서 죽도를 들고 내려, 놈들 앞에까지 조용히 다가갔다.
“아저씨는 뭐요?”
한 녀석이 침을 찍 뱉으며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놈은 죽도로 머리를 얻어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놈들은 깜짝 놀라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그러나 한방에 한 놈씩.
머리, 허리, 그리고 찌름. 꽤 맷집이 있는 녀석은 다시 한 방.
“아이고, 나죽네!”
놈들은 하이에나처럼, 슬슬 기며 뒤로 물러섰다. 표관장은 그들을 가로질러, 땅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위소 앞에 섰다.
“일어서라.”
위소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 때의 불빛을 보았다.
위소는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광기에 젖은 눈동자. 쥐약을 먹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개와 같은 상태.
차량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불빛 때문이었다.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위소는 앞으로 돌진했다. 차를 향해 미친 사람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입에서는 침이 새어나왔고, 터진 머리와 손등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온몸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때도 이랬다면, 그때도 이럴 수 있었다면 무언 가는 바뀌었을 것이라고. 아버지와 할머니 둘 중 한 사람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내가 소리만 질렀다면, -피아노소리에 불평불만이 많지만- 이웃집이 신고를 해주었을 것이라고, 자신이 칼에 찔려 죽더라도 소리를 질렀으면 엄마가 놈들에게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위소는 울부짖으며 보닛위로 양 주먹을 내리쳤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었다. 미치고 싶어도 미치지 않는 것은 하늘이 주는 벌이라 생각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무얼 먹었을 땐 죄책감에 시달려 다시 손가락을 넣고 토해버렸다.
위소의 입에서 짐승과도 같은 울부짖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표관장은 미친 소년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이 자식이, 남의 차를.”
위소는 뒤돌아 주먹을 날렸다. 목표도 없는, 허공에 날리는 주먹이었다. 주먹이 날아오자, 표관장은 고개를 숙여 피한 후, 소년을 보닛위로 밀어붙였다.
“킥!”
음산한 웃음소리.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표관장은 뒤로 물러나, 죽도를 꽉 쥐었다. 여차하면 한 방 내려쳐버릴 기세였다.
“그 새끼 미친 새끼에요! 우리는 잘못 없다고요!”
“꺼져라.”
표관장이 뒤돌아서며 고개를 좌우로 젖히며 몸을 풀자,
“아이, 진짜! 저 미친 똘아이 새끼 때문에 뭐야! 아, 재수 없어!”
라고 욕을 내뱉으며 가방을 챙겨 도망쳤다. 표관장은 도망치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혀를 쯧쯧 찼다.
표관장은 다시 뒤돌아보았다. 라이트가 불빛을 뿜어내는 곳엔 하루살이가 들끓었고, 상처 입은 짐승 한 마리가 보닛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보며 울다 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울어 뱉은 피 도로 삼키는 처절한 눈물과 광기가 가득한 웃음소리는 봉서산 아래 약수터공원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표운삼관장이 상처 입은 짐승을 다시 만난 것은 경찰서였다. 자신의 도장 수련생이 싸움에 휘말렸고, 가서 보니 그 때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경찰서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년을 보니, 머리는 상처를 가리기 위해 검은색빵모자를 썼고, 오른손은 골절로 붕대를 감은 상태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표관장은 경찰관으로부터 소년의 사정을 전해 들었다. 소년의 사정을 들은 표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얘기 해봐도 되겠습니까?”
경찰관의 허락을 받은 표관장은 위소 옆에 앉았다. 휴, 하며 또 한숨을 내쉰 다음 말을 걸었다.
“나 알겠냐?”
소년은 고개를 숙인채로 대답이 없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오고갔다.
“밥은 먹고 다니냐?”
표관장은 또 물었다. 소년의 얼굴에는 광대뼈만 남아있었다. 소년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음, 내 소개부터 하마. 난 나선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표운삼이라고 한다.”
소년은 말이 없었지만, 그래서요? 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 있잖아. 검도해라. 진검도.”
고개 숙인 소년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진검도는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검도경기를 말한다. 진검도는 죽도를 사용하는 검도와 똑같지만, 보호구를 전혀 착용할 수가 없다.
표관장은 소년이 검도에 관심이 없어서 진검도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네 분노와 슬픔을 거기에 쏟아내라. 합법적으로 말이다.”
위소는 숨을 멈추었다. 합법적이라……. 굉장히 매력적인 말이었다.
“싸움질만 일삼다가, 평생을 전과자로 살아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다. 싸울 상대는 세상에 널렸거든.”
표관장은 일어섰다.
표관장이 수련생과 부모를 설득해 합의를 끝낸 다음, 경찰서문을 열고 나가자, 위소는 한참동안 고개숙인채로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표관장의 뒤를 쫓았다.
표관장이 주차장에서 승합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을 때, 위소는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표관장이 창문을 열고,
“해볼 테냐?”
라고 소리치자, 위소는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저는 돈이 없어요.”
위소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표관장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부리부리한 두 눈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왔는데, 보통사람의 눈과는 달랐다.
“네 아버지가 남긴 보험금이 있을 거 아니냐.”
위소는 표관장을 노려보았다.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그 돈은 제 돈이 아니에요. 또 엄마 병원비 대기도 빠듯해요.”
“너 어렸을 때부터 학원 공짜로 다니고, 학교도 공짜로 다녔지?”
위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짜가 아니라 돈을 벌고 다녔다. 각종 대회에서 입상해 상금을 받았고, 장학금을 독차지했으니.
“배우고 싶으면 돈 내라. 공짜는 없다.”
“다른데서 배울게요.”
“그럼, 그렇게 하려무나.”
표관장은 창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 앞을 위소가 어영부영 막아섰다. 표관장은 브레이크를 잡고, 창문을 다시 열었다.
“뭐냐? 비켜라.”
“저기…… 1년, 1년 정도 하면…….”
“1년 뭐?”
위소는 우물쭈물 말하지 못했다.
“1년 정도 하면 잘 싸울 수 있나요?”
표관장은 기가 막혔다.
“너 뭐 때문에 검도를 배울 생각이냐? 싸움질이냐? 솔직히 말해봐.”
위소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이 네! 라고 대답하는 것과 똑같았다.
“그런 불손한 생각을 가진 녀석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위소는 또 먼 산만 바라보았다. 여전히 앞은 비켜주지 않고 있었다. 사실, 2년 동안 아빠가 너무 그리웠다. 새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은 외롭고 고독했다. 밤이 무서웠고, 누군가가 그리웠다.
미치도록 아빠가 그리운 날엔,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었다. 그러나 정신병원의 엄마를 홀로 내버려두고 아빠를 따라 갈 수는 없었다.
아빠와 비슷한 연배의 표관장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위소는 은근히 좋았던 것이다. 듬직하고, 뭔가 있어 보이고, 또 인연처럼 느껴졌다. 위소는 표관장을 통해 아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있었다.
“비켜라.”
위소는 옆으로 비켜주었다. 차가 막 움직이려고 하자,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럼, 검도의 목표는 뭔가요?”
“너 같은 녀석, 사람 만드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타라.”
표관장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안타면 밀어버린다.”
부앙, 하며 차가 급출발을 했다가 급정거했다. 위소는 옆으로 이동해,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에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