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3

#3 사건의 시작

by 임경주

2026년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

맑은 하늘아래, 푸른 풀들이 파릇파릇 자라났고 졸졸졸 흐르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일렬로 길게 늘어진 상가를 벗어나, 청계4가에서 성동구 마장동으로 향하는 뻥 뚫린 고가도로 우측아래에는 오래되고 낡은 빨간 벽돌다세대 주택들이 성냥갑처럼 밀집해 있다.

좁은 골목의 주택가는 비교적 한산했다.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하는 골목길을 따라 가스배달트럭이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 트럭 뒤로, 청계천이 흐르는 복잡하고도 정교한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트럭은 녹색대문 집을 지나쳐, 4차선 도로를 만나 우회전해 사라졌다. 그 모퉁이에, 두 남자가 녹색대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탁위향은 피곤에 지쳐, 짐을 대충 꾸리고 문단속을 하고 이불을 깔고 일찍 누었다.

위소는 그렇게도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었다. 왠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위소가 피아노의자에 앉아 덮개를 열자, 아빠가 말했다.

“위소야, 민폐다. 시간 봐라. 민폐도 엄연한 죄다. 이 세상의 모든 죄는, 결국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거니까. 물론, 그 강약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람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니까.”

“9시가 넘었다고 해서 피아노 연주하는 게 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요?”

“그래, 죄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안했으면 좋겠구나. 민폐니까.”

하지만 위소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 자신은 천재피아니스트이니까.

위소는 짐을 싸둔 복잡한 상자를 치워내고, 아빠가 좋아하는 곡 ‘쇼팽의 즉흥환상곡’(*주, Fantasie-Impromptu Op.66. 쇼팽의 즉흥곡 중 네 번째. 죽어서도 출판을 거부했다. 오른손과 왼손의 리듬이 전혀 달라, 악구가 교차하는 부분에서 환각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신비한 곡으로 유명하다)을 연주해주었다. 시간이 9시 10분을 넘어가자, 옆집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소리를 내질렀다.

“아, 시팔! 9시가 넘었는데 피아노 땡땡거리면 어쩌라고! 아들새끼 잘 키운 거 아니까! 제발 좀 조용히 삽시다! 네? 제발! 땡땡거리는 소리, 진짜 못 들어 주겠거든요?”

“아, 네네!”

위향은 옆집아저씨에게 사과했다. 위소는 손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괜찮아. 저놈들이 배 아프니까 그러는 거야. 어디 감히, 예술의 전당에서도 독주를 한 천재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땡땡거린다고 표현하는 거야. 무식한 것들. 영광인줄은 모르고.”

“아빠. 제가 잘못했네요.”

위소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위향은 아들의 말이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위소는 피아노덮개를 닫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옆집아저씨의 말은 은근히 상처가 되었다. 땡땡거리는 소리 못 들어주겠다니…….

“위소야, 신경 쓰지 마.”

아빠가 다시 말했다. 위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빠였다.

“괜찮아요.”

위소는 활짝 웃어보였다. 아빠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빠가 최고에요.”

위향도 위소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아들이 최고네요.”

다정한 부자는 소리 내어 하하하! 웃었다.

“뉴스 좀 볼까?”

위향은 베개를 배 밑에 깔고, TV를 켰다. 뉴스는 국내소식을 전하고, 지구촌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유럽이 뛰어난 여성지도자에 의해 하나로 뭉쳐지고 있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쏘았는데, 불발에 그쳤다. 미국국방부장관은 도발이라며 강력 대응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죽음의 땅 아프가니스탄에 2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새벽 카불 중심가의 유엔 숙소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유엔직원 5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이 죽었다.

미국대통령은 파병수를 다섯 배로 늘인다고 발표했는데, 정치생명에 오점을 남기는 지름길이라고 시민들은 반응하고 있었다.

위향은 건성으로 TV를 보다가, 한 소녀가 등장하자 집중했다.

“위소야, 봐라. 예쁘게 생겼네. 어, 잠깐! 위소야, 저 애 멘사 모임에서 만났던 그 아이 아니냐?”

위향이 놀라서 소리쳤다. 위소는 책을 읽다가, 책 너머로 눈을 들어올리고 TV를 보았다. 위소가 읽던 책은,

‘근육운동과 힘의 세계 그 역학의 법칙(MUSCLE MOVEMENT AND WORLD OF POWER MECHANICS A RULE)' 이라는 책으로 바로 TV속의 소녀가 저자였다.

위소는 TV에 빨려들 듯 집중했다.

“기무라란코…….”

위소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기무라란코. 그녀가 레고로 쌓은 일자 3층탑은 그 역학구조가 불가사의한 것으로 건축학계의 이슈가 되고 있었다. 오늘 소식은 그녀가 재학 중인 동경대학원 운동장에서 레고로 일자 10층탑 쌓기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열 세 살짜리가 대단하네. 기가 막히는 구나! 와, 어떻게 레고로 저렇게 얇고 높은 탑을 쌓을 수가 있지? 바람에 흔들리는 것 좀 봐. 어, 어어! 와……. 안 넘어지네. 신기하다.”

위향은 입이 떡 벌어졌다. 소녀의 레고 탑 쌓기에 크레인이 동원되고 있었다.

“위소야, 세상엔 대단한 인간들이 정말 많구나. 우리 아들도 대단하지만, 저 애는 진짜 대단하다. 저런 애를 며느리로 맞아야 할 것인데.”

“호호호! 당신은 벌써 며느리 타령이에요?”

“왜? 장가 갈 때 되었잖아?”

“누가요?”

위소가 웃으며 물었다.

“너 말이야, 너.”

“에이, 왜 그러세요. 정말.”

위소는 아빠의 농담이 웃기지도 않아,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TV를 보았다. 소녀의 얼굴을 집중해 보았다. 어렸을 때보다 더욱 예뻐져 있었다.

위소는 소녀가 실패하는 것을 보고, 방으로 들어갔다. 10층 꼭대기에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든 부분에서 탑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히 발을 내딛을 때 무너져서 다치지는 않았다.

“기무라란코! 일주일 뒤에 여기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그 때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소녀는 명랑한 목소리로 인터뷰를 마쳤다.

위소는 방에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소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크레인에 올라타, 레고를 하나하나 쌓아 올리던 그 진지한 얼굴. 10층 꼭대기에 새집처럼 둥지를 만들고 그곳으로 한 발을 내딛던 그 신중한 얼굴. 그리고 와르르 무너져버린 탑.

위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탁위소, 무슨 생각하는 거냐.”

위소는 고개를 흔들며 짐을 정리했다. 내일이면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부푼 꿈을 안고서.

그날 밤,

그림자 세 개가 벚나무 옆 담을 넘었다. 낡은 군화 발들은 화단을 짓밟았다. 남자 세 명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잠금장치를 따고 들어왔다.

바로 옆문이 주인집 현관문이건만, 놈들은 탁위향의 현관문을 선택했다. 삐걱, 현관문이 열렸고, 손전등에서부터 강렬한 플래시가 터져 나와 레이저처럼 거실 곳곳을 뒤졌다. 비좁은 거실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를 지나, 벽에 걸린 엄마아빠의 결혼식사진을(살면서 사진만 찍었다) 비추고, 천재피아니스트의 중학교졸업사진을 비추었다. 불빛은 꽤 오래 머물렀다.

플래시 불빛은 다시 춤을 추듯 어지럽게 움직이다가 안방 문에 고정되었다.

안방 문이 열리고, 탁위향과 가족들의 얼굴로 불빛이 쏟아졌다. 그 때 위소는 옆방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를 듣고 살짝 깨어난 상태였다.

불빛이 얼굴로 쏟아지자, 탁위향은 지그시 눈을 뜨다가, 깜짝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내도 벌떡 일어났다. 위소의 할머니도 눈을 떴다.

세 사람은 모두 강렬한 불빛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위향은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엄마의 비명소리에 위소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순간,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아빠의 머리가 터져 피가 솟구치는 환상이 보였다.

퍽, 위향은 머리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놈들의 얼굴을 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고, 고개를 똑바로 세우려 해도, 자꾸 옆으로 넘어갔다. 머리가 터져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갔다. 더 이상 뿜어지지 못한 피는 끈적끈적하게 뺨을 타고 흘렀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이었다. 놈들은 강제로 위향의 머리를 붙잡고, 손전등을 얼굴에 들이댔다.

“이놈이 아니잖아.”

다른 자가 재빨리 움직여, 옆방 문을 비추었다.

“지키고 있어. 내가 잡아올게.”

“이, 이놈들!”

위향이 놈의 팔을 붙잡는 순간, 퍽하며 두 번째 타격이 이어졌다. 위향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아내의 입을 막았다. 아내의 비명소리가 묻혔다. 어머니가 놈들의 다리를 붙잡다가 구석에 몰려 망치로 머리가 계속 터지고 있었다. 이사를 위해 쌓아둔 박스로 피가 튀었다.

“아, 아아…….”

입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는 이것뿐이었다. 위향은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뭐야, 잠겼네? 아니구나? 이런, 허허! 문고리를 잡고 있었네?”

놈은 위소의 방문 고리를 돌리더니, 열리지 않자 힘으로 밀었다. 위소가 안에서 고장 난 문고리를 꽉 잡고 있다가, 그대로 밀려 나가 떨어졌다.

“이런, 잡녀르새끼가.”

위소는 머리카락이 잡혀, 질질 끌려나왔다. 끌려오는 중에 피아노덮개를 잡고 버텼다가 복부를 얻어맞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위소는 뻘뻘 기어 피아노 밑으로 숨었다.

“킥! 이 새끼 쥐새끼처럼 숨는 거 봐라?”

위소는 이빨이 덜덜덜 떨렸다.

“잘 들어. 네 엄마는 창녀였고, 네 아비는 킥! 본드쟁이에 노름꾼에 인생개차반이었거든?”

“누구냐?”

위향이 물었다. 그는 재빨리 과거 원한을 진 동생들이나 형님들을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옆구리가 썩어들어 갈 때도 이들은 없었다. 삶을 포기하고 연탄가스를 마시고 있을 때도, 지금 이놈들은 없었다. 도박 빚은 장기와 맞바꾸지 않았던가.

“빚이라면 다 해결했어. 만일, 내가 갚아야 할 게 있다면 다 주마. 아니, 다 드리겠습니다.”

위향은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

“사, 살려주세요. 여보. 통장 드려. 어서, 드려. 카드도 다 드리고. 비밀번호는 4980, 4980입니다.”

위향은 빌었다. 그의 꿈이, 희미해져가는 그의 의식처럼 앞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그의 전부인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위소야, 위소야.”

움직임이 없었다. 죽은 자처럼 고요했다.

“위소야!”

위향은 정말 두려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많은 일을 경험했지만, 아들이 걱정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니 새끼 오줌 싸고 있다 자식아. 애새끼네, 애새끼.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놈들은 위향을 놀리기라도 하듯,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위향은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다리 밑에서 달달달 떨고 있는 위소의 움직임을.

“위소야, 괜찮다. 괜찮아…… 겁내지 마라. 아빠 여기 있다.”

“뭐야, 이거. 새끼 잘 키워놓았다고, 동네방네 소문 쫙 내고 다니더니. 이거 진짜 실망인 걸?”

놈들 중 한 명이 말하며, 위소의 가슴에 칼을 대고 그었다.

왼쪽 가슴에서부터 옆구리까지────────.

하얀 백지위에 자를 대고 칼로 긋듯, 위소의 몸은 사선으로 베어졌다. 살이 벌어지며 피가 줄줄 새나왔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위소는 아픔을 느낄 수가 없었다. 칼이 가슴에서 옆구리를 지나갔을 때, 옷만 갈라진 줄 알았다.

“이런 잡녀르새끼. 비명도 못 지르네? 이거 병신 아냐? 약했나? 어허, 칼을 그어도 꼼짝 안하고, 제 아비 머리에 빵꾸가 났는데도 오줌만 싸고 있으니. 어디, 지 엄마 강간해도 가만있나 볼까? 뭐 어차피 창녀라 내가 맛 좀 본다고 흔적이 남는 것도 아니잖아?”

“이, 이놈!”

위향이 팔을 내 뻗었을 때, 세 번째 타격이 이어졌다.

“시팔새끼, 어디서! 확! 이런 잡녀르새끼가 뒤질라고.”

위소는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심장발작을 일으킨 사람처럼, 축 늘어진 상태로 몸을 발발 떨었고, 엄마는 놈들에게 돌아가며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놈들은 일부러 엄마의 얼굴에 불빛을 들이댔다. 가슴과 엉덩이에도 불빛을 들이대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엄마가 반항하면, 뺨을 때렸다. 위소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불빛이 옮겨 다닐 때마다, 엄마를 겁탈하고 있는 놈들의 얼굴이 보였다. 역대대통령들의 캐릭터가면이었는데, 무시무시한 괴물로 보였다. 위소는 두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고 엄마의 비명소리를 차단했다. 다시 눈을 뜨면, 아침이 밝아오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리라.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기적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도 않았고, 피아노다리 밑으로 낡은 목재냄새와 짐을 싸둔 박스에서 솔솔 풍겨 나오는 먼지 냄새 그리고 피아노를 구성하고 있는 금속덩어리들이 풍겨내는 쇠 비린내와 아빠와 할머니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피비린내가 섞여 코를 계속 자극하고 있었다.

위소는 오바이트가 쏠려 나왔고, 항문의 괄약근이 풀려버려 대변이 저절로 꾸역꾸역 빠져나오고 있었다.

똥과 오줌을 잔뜩 싼 채로, 위소는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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