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 #1

#1 프롤로그 조직통합을 주도한 핵심인물 위소(危巢)의 일대기

by 임경주

프롤로그

16세기,

인간들의 무지(無智)에 의해 탄생한 연금술은 ‘실패한 과학’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남겼지만, 단 하나의 성과를 이루었다.

-신(神)의 해방-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비밀조직 ‘애브젝트(Abject)’가 바로 그것이었다.

‘애브젝트’는 연금술사들로 조직되어 있었다. 조직원들은(연금술사들은) 일상과 비일상, 존재와 비존재 그리고 평범과 초월의 경계인 ‘틈새의 영역’에서 그림자처럼 숨을 죽이며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산업혁명을 주도해 20세기부터 21세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암암리에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애브젝트’는 0도에서 5도까지 그 ‘틈새의 영역’이 나뉘어져 있다.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율(律)이었다.

0도는 문화, 1도는 정치와 군사를, 2도는 경제를 주물렀고, 3도는 과학을, 4도는 미스터리를, 5도는 암흑가를 지배했다.

이 이야기는 문화영역을 지배하는 ‘애브젝트 0도’의 음모에서부터 시작된다.

‘애브젝트 0도’는 21세기에 이르러서야, 아시아로 눈을 돌려 오리엔탈(Asia-Oriental)탐구에 몰두했고, 중국의 무공(武功)에 그 초점을 두었다.

중국 불산(佛山)에 ‘나선문(螺線門)’이라는 신비의 문파(門派)가 현대에까지 건재했으니,

‘나선문’은 애브젝트 0도의 마수(魔手)에서 안전할 수가 없었다.

멸문의 화(滅門之禍)를 당한 ‘나선문’은 마지막제자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나선력(螺線力)’을 전승하는데…….

2010년 5월 5일 어린이 날,

‘애브젝트 0도’는 그들의 영역을 벗어난 ‘나선력’이라는 변수를 만나 그들의 율(律)을 깨고 독자적인 고집에서 탈피해, 과학영역 ‘3도’와 미스터리영역 ‘4도’ 그리고 암흑영역 ‘5도’와 협력체재를 이룬다.

율을 깨는 것, 이것은 조직의 붕괴를 의미했다.

이 ‘틈새의 영역’을 파고든 신흥조직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신성 애브젝트 7도’라 불리었다.

‘7도’는 -0도에서 5도까지- 조직통합의 위업을 달성해낸다. 조직통합을 주도한 핵심인물의 이름이, 바로 ‘위소(危巢)’이다.

위소(危巢)’라는 이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조직통합을 주도한 핵심인물 ‘위소(危巢)’의 신화적인 삶과 사랑에 관한 매우 지루하고도 긴 내용 중에서도, 성장보고서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우리와 같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기에 더욱 더 기억해야 한다.

-신성 애브젝트(Abject) 7도 ‘위소(危巢)’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1,

이 세상과 자연만물은 우리의 질문에 모든 것을 대답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만큼, 딱 보이는 그 만큼만 대답하고 들려줄 뿐이다.

-애브젝트(Abject) 0도 ‘나선력개발프로젝트’ 보고서 중에서-



막노동꾼 탁위향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던 그는 지독한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했다.

앵벌이, 구두닦이, 소매치기, 나이트클럽삐끼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 본드를 불고 부탄가스에 중독되어, 방화, 강도사건에 얽혀 소년원을 들락거렸고 20살이 되어서는 도박에 빠졌다.

“고스톱이라고 다 같은 고스톱이 아니거든? 점에 100만 원짜리 고스톱과 10원짜리 고스톱은 뭐가 다른 줄 알아? 100만 원짜리 고스톱은 판 자체에 그냥 광채가 나. 화투가 반짝반짝 빛을 뿜어낸단 말이야. 광 박에 피 박에 독박까지 쓰고…… 흔들기까지. 그 때는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판에서는 여전히 광채가 나는데, 귀는 멍한 게 말이야.”

그가 개과천선해서 막노동꾼동료들을 모아놓고 과거를 회상하며 하는 말처럼, 그의 삶은 절박함의 기록이었고, 희망의 농도는 탁했다. 그는 도박에 미쳐, 병든 홀어머니가 홀로기거하고 있는 전세보증금까지 날렸다.

어머니와 함께 길거리노숙자신세가 될 판에, 왼쪽장기를 팔아 길거리신세는 면했지만, 불법시술로 인해 옆구리가 썩어 들어가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동반자살을 결심했다.

어둠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김빠진 소주한잔, 담배꽁초 한 모금에도 취하는 밤.

눈이 펑펑 내리는 화이트크리스마스이브, 그는 방안에 연탄을 피우고 어머니와 함께 잠들었다. 천주교봉사단체가 유리창을 깨부수고 들어와 자살을 막았을 때, 그는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음에도, 죽음에서 부활했고, 부활은 기적을 가져다주었다.

천사를 만난 것이다.

탁위향은 요양원에서 천사를 만났다. 천사는 그를 간병해준 제법 예쁜 여자였는데, 그녀 역시 알코올중독자아버지 밑에서 성폭행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중학교 때 가출 해 다방오봉에서 창녀까지 산전수전 안 겪어 본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듬고 상처를 치료해나갔고, 정이 들어 홀어머니와 함께 새살림을 차렸다.

낮에는 막노동, 밤에는 아내를 도와 포장마차.

탁위향과 아내는 열심히 일했고, 1년 만에 지하단칸방에서 방 두개짜리 전세방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날, 그의 병든 어머니가 울었고 아내도 울었다. 탁위향은 울지 않았다. 내 집 장만을 하는 그날까지, 눈물은 아껴둘 것이라며.

유턴(U-Turn)이라고 했던가.

그의 삶은 변화되었다. 순풍이 불어왔다. 담배를 끊고, 술도 끊었다. 몸과 정신이 깨끗해지니, 끊어져버렸던 천상을 향한 전망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시도하는 것마다 다 잘 되었다. 포장마차가 제법 자리를 잡아갔고, 아내배속에 아기가 생겼다.

아들을 낳아 가슴으로 안았을 때, 탁위향은 결심했다.

“나, 이놈을 잘 키워보고 싶구먼. 일을 그만 둘 거여.”

그의 아내도 기꺼이 동의했고, 탁위향은 막노동을 그만두었다. 진정한 육아는 부모의 성장이라고 했겠다. 그는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밤, 포장마차에서 기분 좋은 언쟁이 오고갔다. 위향과 그의 막노동꾼 동료들 간에 일어난 소소한 언쟁이었다.

위향은 열변을 토했다. 영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동료들은 어림없다며 콧방귀를 꼈다. 탁위향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거니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서 무조건 우기기만 하는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동료들이 보기에, 탁위향은 그렇게 보였다.

“에끼, 이 사람아! 될 놈은 다 따로 있는 겨. 만들어지면 다 영재고 다 천재겠다! 사람이 무슨 로봇이여?”

“해봤어? 영재 만들려고 노력이나 해봤냐고?”

“어허, 이 사람아! 씨가 이 모양이고 밭이 그 모양인데 무슨 노력이여? 하나 마나지!”

“맞구먼, 다 팔자구먼. 사람은 다 팔자를 타고 태어나는 거여.”

“좀, 유식한 말로 운명이라고나 할까나?”

“이 사람들이 쯧쯧쯧! 노력도 안 해보고 그런 소리 하덜 마라고! 영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니께! 설사 운명이라고 해도 그것은 바꾸면 그만 아니 여?”

“운명을 어떻게 바꾸나 이 사람아!”

“왜 못 바꿔? 나 봐! 나는 분명, 내 운명을 바꾸었어! 옛날얘기 또 해줘?”

“그놈의 옛날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니까는, 이제 시끄럽구먼! 하여튼 영재든 천재든 다 타고나는 거여!”

위향은 4대 1로 고전했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자신의 환경이 그러했듯이, 반대로 좋은 환경에서는 아이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고.

그의 올바른 생각은 육아서 탐독으로 이어졌고, 어느 새 삼 백 권의 육아서적을 통달하게 되었다. 육아서 300권이라면 국내에 출판된 대부분의 책이 여기에 해당되었다.

그는 책과 자신이 자라온 성장과정을 통해, 영재란 부모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시끄러워! 내가 한 번 보여줄 거니까는! 다들 두고 보자고? 팔자? 운명? 내가 한 번 제대로 바꿔주마! 내 자식 잘 되면 똥물 좀 튀겨야 할 텐데 말이야.”

탁위향은 앞치마를 두른 상태로, 동료들을 향해 국자를 들고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이 사람이, 국자로 뺨 때리겠네? 똥물이 아니라, 국물이 튀네!”

“호호호!”

그의 아내가 한쪽에서 아들 젖을 먹이며 웃었다.

“뺨 뿐이여? 확! 그냥. 지금부터 잘들 모셔. 우리 아들은 큰 인물이 될 테니까는.”

“하하! 좋았어, 그래 좋다! 미래대통령을 위해 건배 할까나?”

“하하하하! 자, 건배하세!”

포장마차의 밤은 깊어만 갔고,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무럭무럭 성장하는 아들처럼, 탁위향의 삶은 기쁨과 환희로 빛났다.

탁위향은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먼저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가, 거금 2십 만원을 주고 작명을 부탁했다.

“운명을 바꿀 것이구먼요. 좋은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운명을 바꾼다. 허허……. 우리는 하늘의 뜻과 인연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네.”

“아니구먼요. 아니에요.”

“자네는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

“네,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해왔습니다.”

“좋네. 위소, 탁위소.”

점쟁이는 대나무 발 뒤에서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했다. 위향은 점쟁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위소, 탁위소. 위탁소?”

“어허, 위탁소라니. 탁위소. 위소(危巢)란 높은 곳에 지어진 새집을 일컫는 말이야.”

탁위향은 높은 곳이라니, 일단은 좋았다. 하지만 점쟁이의 해명은 달랐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 불안하긴 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면…… 자네말대로 운명을 극복하면 대성할 거야. 가봐. 다음!”

“아, 네.”

위향은 아들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쪽지를 받아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밝은 태양 아래에서 쪽지를 펴보니, 이름에 광채가 나는 것만 같았다.

“위소, 탁위소라!”

사실,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었다. 뭐, 대호라던지. 청룡이라던지 그런 포스가 작렬하는 이름을 원했다. 하지만 점쟁이가 큰 사람이 될 거라니까, 일단 흡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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