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가여여
두 달이 지나갔을 때, 뭔가 특별대우를 받는 위소를 시기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툭하면 보호구를 닦아놓으라는 둥, 땀에 젖은 수건을 빨아두라는 둥 위소를 종 부리듯 부리며 시비를 걸었지만 위소는 그 때마다 네, 네하며 넘어갔다.
세 달이 지나자, 표관장은 직접 위소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밤 11시,
수련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도장에는 위소만 혼자 남았다.
“이제 청소는 그만 해라.”
표관장이 서류봉투를 들고 나왔다.
‘이제 시작인가?’
위소는 적어도 1년 동안은 청소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년 동안, 생각을 정리하며 천천히 적응해 나가자고 생각했는데, 세 달의 적응기간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믿는다. 아니다 싶었으면, 도장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네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수도 없었겠지. 자, 이제 시작이다. 각오는 되어 있느냐?”
“네.”
위소의 대답과 동시에 표관장은 선수등록서류를 내밀었다.
“쭉 읽어봐라. 지금이라도 내키지 않으면 관두고.”
위소는 1분에 1만자를 넘게 읽는, 놀라운 문자정보해석능력을 가지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1분에 800자에서 1000자를 읽는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경우, 속독을 했을 경우 3000자를 넘게 읽지만,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1분에 1만자를 읽는다고 하면, 한 페이지를 사진보듯 찍어보는 능력을 말한다. 위소는 갓난아기 때부터 사물을 비교하고, 분석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눈썰미가 튀었다. 거기에다가 책과 함께 살아오면서, 문자를 해석하는 뇌의 능력이 보통사람과는 하늘과 땅차이의 차별을 두고 있었다.
위소는 선수등록서류를 사진보듯 보고는 대답했다.
“사인하면 되는 겁니까?”
“자세히 읽어보라니까?”
“자세히 읽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소리하지 말고, 꼼꼼하게 훑어봐. 시합 중에 죽거나, 부상을 당해도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해. 개죽음이야. 작은 부상이야,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다지만 식물인간이라도 되어버리면 나도 널 버릴 수밖에 없어.”
“다 읽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고요.”
“알았다.”
표관장은 위소의 사인이 들어간 선수등록서류를 챙기고 들어가 도복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상한 도복이었다. 검도복이 아니었다. 검도복은 남색과 흰색 두 종류이지만, 표관장이 입은 도복은 중국 전통의상이었고 상하 모두 흑의였다. 마치,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암살자의 복장이었다. 검정색도복 왼쪽가슴에는 이중나선이 새겨져있었다. 표관장은 위소에게 여벌을 건네주었다.
“자, 갈아입어라.”
“여, 여기 서요?”
“우리 둘 뿐인데, 뭐 창피해?”
“아, 아뇨.”
위소는 도복을 갈아입었다. 조금 컸지만, 작은 것보다는 나았다. 표관장이 직접 발목과 손목의 매듭을 묶어주었다. 위소는 표관장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 정좌해라.”
위소는 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정좌라면, 우리 나선문에서는 무릎을 꿇는 자세를 말한다.”
“네? 아, 네. 네? 나선문이요?”
위소는 무릎을 꿇고 바르게 앉으며 물었다.
“잘 들어라 우리 나선문은 그 뿌리를 중국 불산에 두고 있다 나선문에는 일대종사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일검론이라는 것이 있단다 일검론이란 태초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 한번 가름으로 법이 생겨난다는 무학의 기본이며 그 시작이다.”
표관장은 숨도 쉬지 않고, 한 번에 많은 말을 토해냈다. 위소는 깜짝 놀랐다.
“검도 배우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나선검이다.”
“나선검이요?”
“그렇다. 나선검이다.”
“나선검이요? 이, 이거 계약위반이에요.”
“그래서 내가 자세히 읽어보라고 했지 않느냐?”
“나, 나선검? 그런 말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도 않았다고요!”
“이미 계약은 끝났다. 난 너의 에이전트이자 스승이다.”
“말도 안 돼.”
“말 돼. 네 머리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으니 한 번만 더 설명해주고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표관장은 또 숨도 쉬지 않고, 일검론에 대해 설명했다.
일검론이란 태초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 한번 가름으로 법이 생겨난다는 무학의 기본이며 그 시작이다
위소는 도장 정중앙에 무릎 꿇고 앉아 표관장의 말을 새겨들었다. 듣고 보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위소는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매료되지 않았으면, 속았다며 이미 도장을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일검론은 모든 무학의 기본이며 그 시작이지만 그 기본이, 정수 그 자체임을 명심해라.”
‘일검론이라.’
위소의 눈은 반짝 빛이 났다. 한 번 가름으로 법이 생겨난다. 위소는 그 법이 되고 싶었다.
“일어서라. 모든 검학의 기본자세는 중단이다. 중단이란 공격과 방어가 공존하는 자세를 말한다. 중단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나선검은 두 개의 칼을 동시에 들고 ‘가가여여’를 그 기본중단으로 한다.”
표관장은 양손으로 중단을 잡았다. 두 개의 죽도 끝이 위소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이 상태로 가가여여의 전진보법을 실행하면, 칼끝은 상대의 목을 뚫는다.”
순식간에 표관장의 죽도 두개가 목에 닿았다. 위소는 그 조용하고 빠른 위압감에 깜짝 놀랐다.
“자, 중단을 잡아보아라.”
위소는 표관장이 건네주는 죽도를 건네받았다. 양손에 쥐고, 중단을 잡아보았다. 죽도 끝이 꼭지 점을 이루며 표관장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어색했지만, 무엇인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했다. 양손의 죽도는 자석처럼, 서로를 잡아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가여여는 기본 내려침이다. 어깨의 힘을 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표관장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양손의 움직임은 가볍지만 정확했고, 무게가 실려 있는 내려침이었다.
위소는 동작을 따라했다. 오른팔과 왼팔이 따로 움직였다.
“흠, 왼손잡이로구나.”
오른손에만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왼손 내려침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오른손 내려침은 긴장된 상태로 삐거덕거리고, 흔들렸다.
“왼손은 멈추어라.”
표관장의 말에 주문이라도 걸린 것처럼, 위소는 왼손 내려침을 멈추었다.
“오른손이 왼손을 따라올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힘을 길러라. 다음 수업은 그 때 가능하다.”
위소는 오른손만 계속 내려쳤다. 오른손이 왼손을 따라오려면, 17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위소는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어둠 속에서 보았던 놈들의 얼굴, 역대대통령의 캐릭터가면을 쓴 부모님의 원수들을 한 놈씩 베고 있었다.
위소는 입문과 동시에 ‘가가여여’를 배웠다.
가가여여란 기본적인 내려침이다. 젓가락으로 냄비뚜껑을 두드리며 트로트를 부르는 것처럼 오른손과 왼손을 반복해서 내려치는 동작이다.
매우 가볍고 간단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이 훈련은 오른팔과 왼팔의 균형적인 발달을 위해, 나선검을 배우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 가야 할 관문이었다.
“가가! 여여! 가가! 여여!”
위소는 다른 수련생들과는 다른 특별대우를 받았다. 밤 11시를 기준으로, 나선도장은 검도도장이 아닌, 중국의 ‘나선문’이 되어 위소를 변화시켰다. 위소는 ‘가가여여’를 외치며 오른팔과 왼팔을 수직으로 흔들어 죽도를 내려쳤다.
‘가가여여’는 총 9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다. 1단계는 멈춘 상태에서 두 팔을 내려치는 것이었고, 2단계는 좌로 10보, 우로 10보 스텝을 밟아 이동하며 내려치는 것이었다.
3단계는 전진과 후진의 반복이며, 4단계는 대각선을 이루는 횡보였다.
5단계에서 회전이 있었고, 6단계에서부터는 좌우도약에서 7단계로 이어지는 전진도약, 후진도약이었다.
8단계에 이르러, 좌우전진후진사선의 보법이 연결되어 한 동작으로 이어졌고, 9단계는 좌우전진후진사선보법으로 이어지는 한 동작의 도약이었다.
‘가가여여’ 과정을 수료하면, 다음 단계로 ‘사사여여’에 해당하는 가로 베기 훈련에 들어가고 ‘사사여여’가 끝나면 ‘수수여여’의 사선 베기 과정을 수료한 다음, ‘나선탄’이라는 실전 급소 베기 과정으로 들어간다.
‘가가여여’, ‘사사여여’, ‘수수여여’는 ‘나선탄’을 터득하기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제멋대로, 또는 고삐가 풀려버린 야생마를 조련하듯 틀 안에 가두어두었다가 한쪽 방향을 터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위소는 특별대우를 받는 자신에 대한 것도, 밤 11시가 넘으면 바뀌는 도장분위기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나선탄’을 완성하고 싶을 뿐이었다.
표관장이 보여준 ‘나선탄’의 위력은 그야말로 신비였기 때문이었다. 멀쩡한 타이어타격대의 목 부위가 볼트에 뚫린 것처럼 한 방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 구멍 안에는 나선의 회전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사람이 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면, 아니 보호구를 착용한 상태라고 해도 목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최소 즉사였다.
밤 11시 30분, 표관장의 두 눈은 먹이를 쫓는 새의 눈처럼, 위소의 내려치는 동작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빠르죠?”
홍사범이 다가와 말했다. 여자사범의 이름은 홍가연. 용인대검도체육과 1학년 유망주였지만, 입학한지 두 달 만에 교통사고로 아킬레스건을 다쳐 학교를 휴학하는 중에 스승 표관장 밑에서 사범을 하고 있었다.
“음, 습득력이 굉장히 빨라. 내 말을 잘 이해하고 있고.”
“숨겨둔 아들이세요?”
“응.”
홍사범의 장난에, 장난으로 맞받아치는 표관장이었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요?”
“나도 저만할 땐 잘 생겼었어.”
홍사범은 피! 하며 웃었다. 표관장도 하하! 하며 웃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그녀가 딸처럼 보일 정도로, 서로 닮은 구석이 있었다. 표관장의 두 눈은 부리부리 한데다가 입술도 두꺼웠다. 코도 컸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강인한 인상이었는데, 까만 피부에 차돌 같은 근육으로 더욱 강인하고 듬직해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홍사범도 여자치고는 어깨가 벌어졌고, 키가 모델처럼 굉장히 컸다.
“수제자로 키우시게요? 그 소문의 ‘나선검’을 가르치시는 게…….”
“응……. 저 녀석이라면 반드시 해낼 거야. 너 저 아이에 대해서 말해주면 놀랄 걸?”
“네? 저 아이가 왜요? 뭐 특별해요?”
“특별하지. 천재야. 아이큐220에 천재피아니스트에 배화영재고등학교를 1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줄리아드음대와 커티스음악원 또 하버드와 예일대를 동시 합격한 상태야.”
“네에?”
홍사범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저 아이…….”
“뭐하긴, 검술 배우잖아. 왜? 천재는 공부만 해야 돼?”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라……. 아, 그냥 운동. 하긴 건강이 최고지.”
“뭔 소리야? 이 길로 갈 거야.”
“이 길이라뇨? 설마, 진검도에 내보낼 건가요?”
“응. 아니면 저 아이 죽어.”
“네에?”
홍사범은 깜짝 놀랐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집에 안 가냐?”
“가야죠. 둘이서 늦게까지 뭐하나 궁금해서 남아봤어요. 이거 섭섭한데요. 나선검을 저 녀석이 독차지하다니.”
홍사범은 거울에 비친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슬픈 눈. 심장을 아리게 만드는 고독한 눈은 어둠의 끝을 경험한 눈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