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용기

더 브레이브 레퍼런스

by 임경주



진짜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옳다고 믿는 길을 선택하고 관철시키는 힘이다.

난 전직 형사인데 알코올 중독자다. 술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

당뇨가 심해져서 한쪽 눈을 적출했다. 한쪽 다리도 썩어문드러지고 있어 곧 잘라내야 하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술을 끊지 못한다.

착하고 착한, 너무나 착한 사람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꼭 같이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을 두 눈 딱 감고 들어주었으면 죽음을 막았을 것인데 외면했다. 그로 인해 그 착한 사람이 죽었다. 사람들이 많은 아침 출근길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살인범은 그녀의 전남편이다. 의처증으로 시작된 가정폭력은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았다. 결국은 그 착한 사람이 죽어서 끝났다. 그 미친놈은 지금도 자신의 행위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판사 앞에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죄를 뉘우치는 척하지만, 자기 지인들에게는 그년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하소연을 한다. 알고 보면 내가 오히려 더 피해자라고.

그 형사 놈과도 몇 번이고 몸을 섞었을 거라고.

의뢰가 들어왔다.

흥신소를 3년 전에 차리고 먹고 살기 위해 별 더러운 짓을 다 처리해주었는데 오늘은 진짜 어처구니가 없는 일감이 하나 들어왔다.

의뢰인은 젊은 여자다.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런 의뢰를 해온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울 정도로 예쁜 여자다. 사연은 더욱더 안타깝다.

자기를 엄청 사랑해주었다가 다른 년 만나서 자기를 버리고 가버린 놈을 잡아다가 야산에서 생매장을 하고 싶단다.

“어이, 아가씨. 아니 손님. 제가 이 흥신소를 차린 뒤로 별의 별 사건사연을 다 듣고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었지만 이런 일은 또 참.... 아니, 요즘 세상에 생매장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할 거 같아요? 사방이 카메라에 도처에 눈이 깔려 있는데 멀쩡한 놈 잡아다가 생매장을 어떻게 시켜요?”

“그래서 못하겠어요?”

“못하죠.”

“알았어요.”

이 아가씨.

찬바람을 일으키고는 그냥 휙 나간다.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아가씨. 아니, 손님!”

“왜요?”

“차 몰고 왔죠? 손님은 여기 올 때부터 이미 길거리에 있는 카메라란 카메라는 다 찍혔어요. 그러니까 어디 다른 데 가서도 이러지 마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래서 걸어왔거든요?”

“....”

이 젊은 아가씨는 만만의 준비를 다 했다고 한다. 완전범죄가 가능하다고 설명을 해주는데 그럴싸하기는 하다.

일단 여기 서울 도봉구에서부터 강원도 정선까지 도보로 이동한다.

타깃은 정선카지노 딜러 K다.

정선카지노에 도착하면 내가 어떻게든 K를 산 채로 납치해 야산으로 끌고 가야 한다. 증거를 남겨서도 안 된다. 그러면 수면제에 주사기에 삽도 챙겨야 한다. 총도 챙길까?

이 아가씨 남자의 집은 알고 있나?

한 번 해볼까? 갑자기 흥미가 땅긴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작전이다.

난 술잔에 남은 양주를 얼음까지 몽땅 입안에 털어 넣었다. 와드득. 얼음까지 깨부숴 먹기는 또 처음이다. 식도를 타고 쓸고 내려가는 싸구려 양주의 화끈함이 그나마 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난 못한다. 그래서 슬쩍 이 아가씨랑 농담이라도 따먹고 싶어진다.

“강원도 정선까지... 도보로요? 아가씨,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 줄은 알고 하는 소립니까?”

“180킬로미터 정도 되죠. 하루에 30킬로미터씩 걸으면 일주일이면 가요. 산길과 국도 변두리만 이용하면 CCTV는 거의 다 피할 수 있어요. 이미 루트는 다 짜놨으니까.”

“아니? 잠은요?”

“노숙이죠.”

“헐....”

여자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미친 건가 싶어 얼굴을 뜯어보니, 광기보다는 오히려 지독하게 투명한 슬픔이 보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내가 이 일을 3년 해보고 깨달은 사실이다.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지만. 내 상식을 벗어난 의뢰인들은 죄다 무섭다. 한이 맺혀 있다.

“돈은요? 생매장 삽질 하려면....”

이 여자 어디까지 가나보자. 구체적인 돈 문제를 언급해보았다. 와, 근데 돈도 이미 다 준비했다. 진짜 사람 하나 완전범죄로 묻을 작정인 것이다. 근데, 나는 왜? 나 이거 진짜 해야 해? 도대체 내 맘이 끌리는 이유는 이 젊은 여자의 매력 때문인 걸까?

여자는 가방에서 신문지에 싼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묵직했다. 대충 봐도 내가 3년 동안 흥신소 구르며 번 돈보다 많아 보였다.

“이건 선금이에요. 저 평생 벌어서 모은 돈이고요. 일이 끝나면 두 배를 더 드리죠. 그리고... 사장님 술 좋아하시잖아요? 정선 가는 길목마다 사장님 마실 술은 내가 책임질게요. 단, 취해서 비틀거리지는 마세요. 갈 길이 멀거든요.”

술. 항상 그렇다. 그놈의 술이 문제다. 사실 내게 필요한 건 진짜 용기가 아니다. 맨 정신으로 세상을 버틸 수 없는 비겁함을 가려줄 알코올뿐이다. 다 필요 없다. 그래서 이 여자가 말하는 생매장에는 기묘한 설득력이 있다. 나도 그렇다. 늘 완전범죄를 꿈꿔왔다.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놈들이 어디 한 둘인가.

“좋아요. 갑시다.”

아이고. 내가 미쳤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 봐요.”

“손님이 지금 날 이용해 먹고 있다는 거 내가 다 알아요. 나 지금 눈알 하나 적출하고 다리 한쪽도 썩어가고 있고 뭐 불쌍한 인생 다 끝나가는 인간이긴 합니다만...”

“그쪽 이용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을 찾다가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뿐. 싫으면 하지 마세요. 경찰에 신고해도 되고요.”

“아니.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손님이 맘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솔직히 말할게요. 지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건 뭐냐면 손님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 놈이 자기 무덤 앞에서 질질 짜면 나더러 삽질 멈추라고 할 거잖아요?”

“아니요? 그놈 입에 흙 막 집어넣구 묻을 건데요?”

“...”

“그냥 다른 놈 만나면 안 돼요?”

“네. 안돼요.”

“왜요?”

“소신이요.”

“예?”

“내 소신이 그걸 허락하지 않아요.”

소신이라.

난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난 저런 소신이 내 인생 단 1분이라도 있었나?

“알겠습니다. 의뢰를 받겠습니다. 가시지요.”

이 여자 사람 절대로 못 죽인다. 그래, 가보자. 다 끝나가는 인생 돈도 벌고 좋다.

우리는 그날 밤 준비한 배낭을 하나씩 메고 도봉구를 벗어났다. 카메라가 없는 산길을 타고 걸었고 어두운 국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 배낭에는 술이 가득하다. 내 앞을 걷는 매력적인 의뢰인의 등 뒤에는 짙은 슬픔과 죽음의 냄새가 일렁이고 있었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 놈은 뭐하는 놈이고,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고 이 매력적인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근데 말이죠. 그 딜러 K라는 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요? 아니, 도대체 뭔 짓을 해서 생매장까지 당해야 하는 건가요?”

내가 묻자 여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장님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아요?”

“죄송합니다.”

여자의 발이 다시 빨라졌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발바닥에 닿는 산길의 감촉이 부드럽다. 정선까지 남은 거리 180킬로미터. 이 길의 끝에서 난 도대체 뭘 보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는 내 머리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1일차.

높은 암벽이 내 앞을 딱 가로 막고 있다. 돌아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요즘 그 어떤 마을이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피해갈 수가 없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이동하는 게 목적이고 그로 인해 완전범죄를 완성해야 한다면 지금 이 눈앞의 암벽을 넘어야 한다.

물론 난 어떻게든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여리고 여린 여자는 넘을 수 없을 것이다.

“끝났네요. 이만 돌아가시죠? 아가씨, 아니 손님도 이제 정신 차리시고 본업으로 돌아가시고요. 돈은 안 받겠습니다. 그래도 전 한 번 의뢰인은 영원한 의뢰인이니 돌아가시는 길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아가씨 배낭을 풀어 장비를 챙긴다.

클라이밍을 해본 솜씨다. 상의를 탈의했는데 바위틈에 손가락을 넣을 때마다 꿈틀거리는 어깨근육이 어지간한 남자 저리가라다.

와.

“뭐하세요?”

“...”

“아니 그냥 다른 남자 만나면 안돼요?”

“사장님은 그 입 좀 다물면 안돼요?”

“네.”

암벽을 먼저 타고 올라가는 손님이 바위틈새에 카라비너를 박고는 나를 위해 로프를 연결해 내려준다. 길을 개척한다. 나는 그저 그 뒤를 따라갈 뿐이다.

암벽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다. 개척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카라비너를 박을 곳이 없다. 손님이 건너편을 응시하더니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 건너편으로 점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찔하다. 무모하다. 저건 용기가 아니다.

하지만 손님은 새처럼 가벼운 몸으로 날라 올라 건너편 튀어나온 바위를 붙잡고 매달렸다. 한 손을 놓쳤을 때 지렸다. 우리 인류는 그 조상이 원숭이라는 말이 맞다. 지금 엉덩이 꼬리뼈가 찌릿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찔한 순간 나도 모르게 꼬리를 이용해 뭐라도 붙잡으려하는 이미 퇴화된 신경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지금도 찌릿찌릿하다.

손님은 다른 한 손으로 겨우 버티나 싶더니 카라비너를 박고는 로프를 연결해 나에게 던져주었다.

“미쳤어요?”

“뭐래?”

“죽을 뻔 했잖아요!”

“아오, 시끄러워.”

“예?”

와,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암벽에 올라섰을 때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여기서 하룻밤 자야겠어요. 체력을 너무 많이 썼네.”

“....”

손님이 배낭에서 원터치 텐트를 꺼내더니 평평한 바위 위에 던졌다. 그물처럼 생긴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저절로 펴지더니 텐트가 완성되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손님은 텐트 안으로 들어가 매트를 깔고는 침낭을 펼치더니 보란 듯이 텐트 지퍼를 잠가 올렸다.

난 텐트도 없다. 비가 온다. 추적추적.

“저기요.”

“왜요?”

“비가 계속 와서요.”

“그래서요?”

“전 텐트가 없거든요.”

“잘 챙기셨어야죠. 어디 나무 그늘이라도 찾아가세요. 피곤하니까 더 말시키지 마세요.”

“예.”

1일차 새벽.

나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떨어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달 떨면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아침을 기다려야만 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엄청 취했지만, 뭔가를 깨달았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손님 앞에서 호랑나비 춤을 추었다. 똑바로 서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자꾸 휘청거리며 뒤로 간다. 나무뿌리에 걸려 뒤로 발랑 자빠졌다. 난 어른이다. 재빨리 일어섰지만 또 다시 호랑나비 춤을 춘다. 날 지켜보는 손님의 표정은 딱 이거다. 얼씨구?

“술 마시는 건 좋은데 적당히 마시라고 했죠?”

“...”

“진짜 가지가지 하신다.”

“야.”

“뭐요?”

“너 솔직히 말해봐.”

“너?”

“그래 너. 여기 너 아니면 누가 있어.”

“하유. 그래요. 뭐요? 말하세요.”

“너가 지금 그토록 분노하는 거.”

“...”

“너도 똑같아.”

“뭔 소리야?”

“너도 나 지금 사람 쉽게 보고 있잖아. 사람 쉽게 보여서 나한테 의뢰한 거고. 뭐 눈 알 하나 빠지고 없고 다리 한 쪽 썩어 가는 노인네 돈만 주면 수족처럼 부려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네네. 어르신 쉽게 본 거 아니고요. 사람을 알아보다 보니 사장님이야 말로 적임자라고 판단했어요. 그게 다예요. 어르신 쉽게 본 거 아닙니다.”

나는 이 손님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뭐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돌아가자고 했던 것도 같다. 중요한 건, 내가 휘청거리다가 뒤로 자빠져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2일차 낮.

새벽에 내린 비로 인해 불어난 강물이 우리 앞을 딱 가로막고 있었다.

난 건널 수 있지만 저 여자는 절대로 못 건넌다. 이제 돌아가자. 너무 힘들다. 돌아가는 길은 그냥 큰 길을 찾아가서 누구든 만나면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나와 저 손님은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그냥 산길을 잃고 헤매다가 구조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 손님. 와.

또 탈의를 하더니 옷을 곱게 싸서 배낭을 머리 위로 짊어 올리고는 저 불어난 강물을 건넌다.

“뭐해요? 안 건너와요?”

“....”

“돌아간다고요? 그러면 선금 다시 돌려받을 겁니다.”

“....”

미친년. 난 이를 악물고 강물을 건넜다.

그래도 여자라 그런지 어쩐지 불을 피우는 요령은 또 잘 모른다. 춥긴 춥나보다. 강을 건너느라 소진된 체력에 젖은 몸과 머리까지 한기가 몰려오나 보다. 달달 떠는 걸 보면.

마른 장작을 모아 불을 피워준다.

“아 따뜻해.”

좋아하니 더 큰 장작을 잔뜩 구해와 불을 엄청 크게 활활 피운다. 두 손을 앞으로 하고 멍 때리고 있는 손님의 옆모습을 살짝 훔쳐보았다. 예쁘다. 젖은 머리카락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도 예쁜 얼굴이다. 새카만 눈동자가 우수에 젖어 있다. 멍 때리는 것 같지만, 그놈을 생각하고 있나보다.

그놈. 도대체 그놈은 뭐하는 놈일까? 나도 궁금해진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그 때다.

“그렇게 훔쳐보지 말고 라면 좀 끓여 봐요. 내 배낭에 코펠이랑 라면 있어요.”

“예.”

이런 식으로 1주일 산행을 지나 정선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K를 불러내야 한다. 유인해야 한다. 이것은 납치다. K가 영업장을 이탈한 것에는 내 손님과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어야 한다.

K를 사진으로는 보았지만 실제로 직접 봐야했기에 일단 카지노에 입장부터 하려는데 음주측정에 걸렸다. 입장불가. 한데, 하늘이 기회를 주었다. 딜러들의 교대시간이었다.

“저놈이에요.”

“누구요?”

“저기 저 놈이요.”

“저기 저 잘 생긴 놈이요?”

“퍽도.”

손님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연예인처럼 잘 생긴 놈이 한 놈 있었다.

“오, 키도 크고 늘씬하고. 여자 꽤나 울리게 생겼네. 뒤따라가서 차에 올라타면 그 때 덮치죠?”

“사방이 카메라잖아요. 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해요?”

“끙. 그럼 어떻게 해요?”

손님이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날리고는 바닥에 버리더니 발로 마구 짓밟는다. 대포폰이란다.

-1:1 게임 원합니다. 판돈 3억. 장소 정선 모텔 103호. 비밀번호 4444.-

“놈이 들어오면 사장님이 제압하고 묶어 두었다가 아침에 모자 쓰고 이 놈 옷을 입고 나가세요.”

“....”

“왜요?”

“무섭네요.”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빠지세요.”

“아니요? 한 번 끝까지 가봅시다. 내가 봤을 땐 아가씨 이 놈 절대로 못 죽여.”

“아, 정말. 그만 좀 하시죠?”

이 매력적인 손님이 날 노려본다. 그동안 날 쭉 지켜보지 않았느냐. 뭐,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난 사실 나의 바람을 얘기했을 뿐이다.

사람 잡아다가 생매장해서 죽일 생각 그만하고 다 잊고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아가씨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택시를 잡아타고 정선 모텔로 향한다. 정말 K가 올까?

난 알코올 중독자이지만 도박 중독자는 아니다. 술이라면 그곳이 지옥불구덩이라고해도 찾아 갈 것이다. 하지만 도박은 잘 모르겠다. 정말 올까? 진짜 왔다.

손님과 나는 팔짱을 끼고 불륜처럼 모텔에 들어왔다. K는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103호 방 그러니까 호랑이 굴을 제 발로 찾아 기어 들어왔고 난 놈을 단숨에 제압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약물은 종류가 다양하다. 일단 주사 한 방으로 놈을 깊게 잠재웠다.

다음 날 아침, 난 모자를 눌러쓰고 K의 옷을 입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K의 차문을 열었다. 조수석에 나뒹굴고 있는 고급 위스키가 눈에 확 들어왔다.

K의 차량으로 이동해 K처럼 행동하며 대형여행가방과 삽을 구입해 다시 모텔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술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뭐야? 그새 술 마셨어요?”

“마시긴 했는데 안 취했는데?”

“안 취하긴 뭘 안취해요? 아휴, 술 냄새!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난 취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자꾸 뒤로 걷는다. 두 눈으로 보아도 어지러울 세상이 술에 잔뜩 취해 한쪽 눈으로만 보니 구토가 몰려올 지경이다.

“아, 진짜.”

“서두릅시다.”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손님이 운전을 했다. 난 K가 실려 있는 대형여행가방을 질질 끌고 강원도 정선의 어느 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삽질을 신나게 했던 것 같다.

땀이 쏟아져 내리고 술이 다 깼다.

여행가방을 열어 K를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K가 몇 바퀴 굴러 구덩이에 처박히더니 정신을 차리고는 벌떡 일어섰다. 강렬한 손전등 불빛으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며 묻는다.

“뭐야? 당신들 뭐야?”

“이유라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난 삽으로 흙을 퍼서 K의 얼굴에 뿌리며 손님에게 물었다.

“다 알면서 저러는 거예요.”

순간 K가 아가씨를 알아본다.

“어? 잠깐만.... 너야?”

“그래, 나야.”

“야? 너 도대체 뭐하는 거냐?”

“사장님 어서 묻으세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는.”

“예.”

“아니, 잠깐만! 지금 뭐하자는 거야?”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그저 일입니다.”

빡!

난 삽 등으로 K의 정수리를 내려친 뒤 흙을 퍼부었다. 허리에도 퍼붓고 머리에도 퍼붓고 다리에도 퍼부었다.

“이 미친 새끼들아! 그만해! 야! 잠깐만. 너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도 몰라?

난 순간 멍해져서 삽질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그 흙 있잖아요. 저 아가리부터 채워주면 안 될까요?”

“예.”

다시 삽질을 하는 그 때다. K가 젊긴 젊나보다.

두 손이 뒤로 묶여 있는 상태인데도 발을 박차 뛰어 올라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

이미 늦었다. K가 그대로 돌진해 머리로 내 가슴을 들이박고는 냅다 도망친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더니 여유가 생겼나 다시 되돌아와 손님까지 머리로 들이받아 버린다.

“미친놈 년의 새끼들!”

K가 욕을 내뱉고는 줄행랑을 쳤다.

내가 아무리 노쇠해도 전직 형사다. 나는 다시 일어나 발을 박찼고 온힘을 다해 놈의 뒤로 따라붙어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데 성공했다. 놈이 보기 좋게 나자빠진다. 그렇게 다시 붙잡아 오는데 K가 등 뒤로 묶여 있는 손을 두 다리를 빼내서 앞으로 위치해 다시 또 공격해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술이 원수다. 놈이 젊어서가 아니다. 제대로 붙으면 싸워 이기고도 남을 것인데 다 술 때문이다. 놈을 이길 수가 없다. 얼마나 얻어맞은 걸까? 이제는 일어서지도 못하겠다. 날 지원해주던 손님도 같이 얻어맞고는 옆에 쓰러져 있다.

“이 미친 노인네야! 당신 나한테 뭘 놓은 거야? 뭐야? 여기까지 내 차로 온 거야? 와, 이 미친놈들!”

K가 자신의 차량을 발견하고는 키 박스에서 키를 회수하고는 실내를 확인하더니 내 배낭을 찾아 거꾸로 뒤집고는 흔들어댄다. 내용물이 쏟아져 내린다. K에게 사용했던 약물과 주사기세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거네?”

“아니야. 그거 아니야.”

“뭐가 아니야?”

“그거 안 돼. 사람 죽어.”

“죽기 뭘 죽어. 나 지금 안 죽고 잘 살아 있잖아?”

“너한테 쓴 거랑 달라. 지금 그거 맞으면 해독제도 없어. 24시간 안에 치료 못하면 죽어.”

“그거 잘됐네.”

주사기는 손님의 목을 향하고 있다.

“하지 마. 한 때 사랑한 사람이잖아?”

“누가? 내가?”

“아니야?”

“뭔 소리야? 뭐, 잘 됐네.”

K가 손님의 목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었다. 난 지켜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너 도대체 여기까지 날 찾아와서 뭘 원한 거냐? 아, 그러고 보니까 기억나네. 맞아. 너 누군지 기억났어. 그래 뭣도 모르는 어린 아이 내가 내 멋대로 함부로 대해서 미안하다.”

손님이 발버둥 치며 반항을 몇 번 하지만 소용없다. 주사기를 통해 약물이 주입된다.

허무하다. 저런 개새끼라서 생매장을 해야 했구나 싶다.

“야!”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아났을까.

내 손에 들려 있는 삽은 놈의 정수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두개골이 갈라지는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악마의 얼굴이다. 놈의 얼굴도, 나의 얼굴도.

놈이 나를 노려보는가 싶더니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꺼져 이 새끼야.”

내 발길질에 K는 그대로 구덩이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삽질을 끝냈다. 놈을 묻었다.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을 끝냈다. 이제 주변에 남은 거라곤 K의 자동차뿐이다. 이대로 차를 몰고 내려가면 아가씨도 살릴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끝난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한데, 아가씨를 안고 K의 차량으로 돌아왔는데 키가 없다. 놈이 호주머니에 챙겨 넣은 것이다.

다시 파야 한다.

아가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나는 아가씨를 번쩍 안고 뛴다.

완전범죄고 뭐고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

24시간 안에 가장 가까운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아저씨. 아니 사장님.”

“말하지 마요. 호흡해요.”

절뚝거리며 뛰는 알코올 중독자의 품 안에서 이 아가씨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아가씨의 시선은 한 때 사랑했었던 남자의 낡은 자동차를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끝까지 바라본다.

아가씨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사장님.”

“말하지 마라니까는.”

“북극성은 항상 제 자리에 있어야 하잖아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유난히 별이 밝다.

“지금 북극성도 같이 돌아요.”

“약물 때문에 그래요.”

헐떡거리는 내 입에서 처음으로 단내가 난다. 아가씨의 이마에서부터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온몸이 축축해지고 있다. 이대로는 죽는다.

산 능선이 밝아지고 아가씨의 볼을 닮은 빨간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아가씨가 의식을 잃어간다.

후회된다. 이 아가씨가 철부지는 아니지만, 난 어른이다. 현명하진 못해도 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다.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끝까지 말렸어야 했다. 무서워요. 형사님,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같이 있어줘요. 의처증에 시달리고 얻어 맞던 끝에 남편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후회된다.

난 현명하진 못해도 어른이니까, 남의 구설수에 오르는 행동 그런 상황자체를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남편이 찌른 칼에 그녀가 죽었다.

진짜 용기란 무엇일까?

“제가 묻어버렸어요. 그딴 자식.”

“고마워요. 근데, 사장님 쉬어야 해요.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요.”

“안돼요.”

“사장님 못 버텨요.”

“아직 더 가야해요. 힘내요. 잠들지 마요.”

“누가 누구한테... 힘내래....”

나는 허리춤의 술병을 꺼내 스쳐지나가는 나무에 힘껏 내려친다. 유리파편이 아가씨의 얼굴에도 흩뿌려졌다. 아까운 술도 허공에 날린다.

그 날카로운 유리병의 끝을 허벅지에 박아 넣는다. 피가 다시 통한다. 나는 다시 달린다.

영롱한 아침이슬이 태양으로 인해 곧 사라져갈 시간이다.

“그 자식이 아직도 날 놀려요. 내가 아직도 쉽게 보이나 봐요.”

“누가요?”

“누구긴 누구겠어요.”

“잊어버려요. 제발 좋은 남자 만나요.”

“사장님도 참.”

더 이상은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장님. 보여요?

뭐가요?

저 하늘, 태양, 구름, 나뭇가지, 잎새 하나하나.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에요. 내가 보았던 세상도 아니고요. 난 뭘까요?

아가씨는 아가씨죠.

그냥 달라요. 모든 게 다 달라 보여요.

힘들어서 그래요.


그대로 무릎이 꺾였다. 더 이상은 한계다. 기침이 터져 나온다.

이미 산길에서 빠져나와 도로에 나와 있는 상태다.

빵!

지나가는 차가 경적을 울렸다.

그대로 갈 줄 알았는데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구원의 소리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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