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단지 기계라면
난 73년식이다.
그 활발했던 기능이 서서히 꺾였다고 본다. 부정할 수는 없다.
난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누구나 다 생각하고 누구나 다 사연이 있고
누구나 다 아픔과 슬픔이 있겠지.
이런 각자의 개인사정들이 아무 의미 없는 거라면
우리 인간은 로봇일 거야.
내 아부지 한평생 어떤 의미와 어떤 사연과 그 잘 나가던 경찰을 그만둔 피치 못할 사정 어떤 고민 다 접어두고 하나의 로봇으로 가정해 기능한 걸 돌이켜보면
그때가 언제더라
어느 날부터 붓을 잡지 못하셨다.
아버지의 수많은 심부름을 했어도 화선지 심부름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버지가 화선지를 살 겸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장거리로 찾아가는 곳이 있다. 전주에 있는 모 화방으로 알고 있다.
나도 머리가 너무 복잡해지면 까뮈의 이방인을 읽으려고 서점을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부터 화선지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는 걸 애써 무시했다.
항상 먹을 가시던 분이 먹도 갈지 않더라.
왔냐?
아부지 요즘은 글씨 안 쓰세요?
쪼끔씩 써. 근데 손이 떨려서.
아버지의 필체는 여성스럽다. 내가 아들이어서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 글씨를 보면 건담의 안테나가 생각난다.
난 날카로운 선을 좋아한다. 어떤 때는 그 날카로운 선이 황홀하기까지 해서 중독처럼 보고 또 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방안은 묵향보다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냄새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라고 앉아서 벌레들 기어 다니는 거 보고 있으면 시간 금방 가.
더 이상 붓을 들지 못하시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글은 꾸준히 쓰고 있냐?
근데 난 젊었을 때도 너처럼 글은 못쓰겠더라.
읽는 건 좋은데.
난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버지처럼 꼭 심부름을 시켜야 찾아오는 아들을 기다리며 벌레 기어 다니는 거 지켜보면서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게 될까.
난 여전히 삶이 그토록 아름다운 건
내가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다시 한번 더 묻는다.
난 과연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