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반가의 가신들
중국인노부부는 표관장을 보자마자 엎드려 절을 올렸다. 표관장은 깜짝 놀라 그들의 몸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위소는 영어와 일어 그리고 중국어는 물론 6개 언어가 가능하기에 그 들이 하는 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표관장은 위소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님들을 관장실 안으로 모셨다.
위소는 보호구를 정리하며 귀를 세웠다. 관장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잠시 오고가더니, 중국인노부부는 한국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을 꺼냈다.
“표시엔성, 다름이 아니라 나선문의 재건을 위해 ‘나선력’을 돌려받기를 원합니다.”
표관장은 대답이 없었다.
위소는 표관장의 대답을 듣기 위해, 살금살금 관장실 앞으로 걸어갔다.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의 소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위소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홍사범을 비롯해 수련생들이 마치 자신을 도둑고양이 보듯 보고 있었다.
“나선문의 재건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돌려드려야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저도 어렵습니다. 스승님의 유지도 있고, 반씨의 대가 끊어진 지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양해를 바랍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표관장이 말했다.
“지금 당장 가지고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표시엔성께서 직접 가지고 들어오시길 원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나선력’은 저에게도 무용지물입니다. 허니, ‘나선력’이 불산에 있든, 저에게 있든……. 이것은 이제 하나의 신성과도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나선문의 재건을 위해 불산에 존재해야겠죠.”
“표시엔성, 문주께서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허면, 언제까지 가능하겠습니까?”
표관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오고갔다.
“그것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으니 두 분께서는 저를 믿어주십쇼.”
또 다시 침묵이 오고갔다.
“이 모든 것이 다 서양오행의 음모입니다.”
중국인남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표관장은 침묵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위소는 서양오행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표시엔성께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결례가 아니라면 듣고 싶습니다.”
중국인남자가 물었다. 표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곤란하시다면 말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표관장은 손을 저었다.
“곤란하지 않습니다. 밖에 있는 저 아이입니다. 저는 그릇이 작아 나선문을 이끌 수 없지만, 저 아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나선탄을 전승하고 있는 중입니다.”
중국인노부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두 내외는 벌떡 일어나 표관장에게 또 큰절을 올렸다. 표관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몸을 부축해 일으켜 세워주었다.
“표시엔성, 저희도 발 벗고 나서서 돕겠습니다.”
“아닙니다. 딱히, 두 분께서 도울 일은…….”
“돕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두 내외는 표관장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중국인노부부는 위소에게도 큰 절을 했다. 절을 하고 일어나서, 위소의 몸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표관장을 향해 또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중국인노부부가 돌아간 뒤, 표관장은 위소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내가 입문했을 때, 나선문은 두 파로 나누어져 있었지. 스승님에겐 첩이 있었는데, 그 첩에게서 난 아들이 ‘나선력’을 물려받아 문주자리에 오르게 되었어. ‘나선력’을 물려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다루지도 못했지. 친아들은 인정하지 못했고, 가문을 떠났는데 며칠 뒤, 북경역사박물관화장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지. 그리고 다음 날, 첩에게서 난 아들은 문주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사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불 속에서 죽어 있었어. 한동안 시끄러웠지. 나도 경찰조사를 받았고, 나선문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어. 스승님께서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더니, 나에게 유지를 맡기고 등선하셨단다.”
표관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위소는 중국인노부부가 한 말 중에 의문가는 것이 있어서 물었다.
“네…… 근데, 관장님. 아까 그 분들 하시는 말씀 중에……. 애브젝트(*주, Abject. 비천한, 영락한, 절망적인 또는 생리혈의 의미로 사용되는 이 단어는 미술계에서 존재와 비존재, 일상과 비일상, 평범함과 초월적인 경계의 의미로도 표현된다)의 앰비그램을 서양오행으로 돌려 말하던데, 거기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나요? 지금 저들의 일이 세계 비밀 조직 중의 하나로 알려진 애브젝트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때 위소는 분명히 보았다. 표관장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너 중국어도 하냐?”
“네…… 조금.”
“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하구나.”
“옛날에 책에서 읽었는데 생각이 나서요.”
위소를 호통치고 내치려했던 표관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싹 바뀌어 설명해주었다.
“저들은 나선문을 이어온 반(潘)가 가문의 오래된 가신들이란다.”
“네.”
위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심이 매우 깊은 양반들이지. 이제는 주인도 없는 나선문을 그래도 어떻게 살려보겠다고……. 그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다녀와야 할 것 같구나.”
표관장은 말하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위소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선문’에 멸문의 화를 입힌 놈들이, 바로 애브젝트다.”
“네?”
위소는 깜짝 놀랐다. 각국의 수뇌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경제인들 대부분이 애브젝트의 조직원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들이 이 세계를 암암리에 지배하고 있다는.
하지만 그것이 실재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근데, 너 아직도 안 갔냐?”
표관장의 말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홍사범이 옆에서 나섰다.
“저 위소 데리고 밖에 좀 나갔다 올게요. 위소야, 나가자.”
홍사범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위소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잡아 이끌었다.
“아니요. 잠깐만요.”
위소는 홍사범의 손을 뿌리쳤다.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
위소는 협상에 들어갔다.
“지금 나를 상대로 협상하자는 거냐?”
“제, 인생이 걸린 일이에요!”
“여기서 결정해!”
위소는 ‘나선탄’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절 내치지 마세요.”
“위소야…….”
홍사범은 위소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위소는 자존심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표관장 역시 위소의 속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정좌.”
표관장의 말에 위소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네 잘못이 무엇인지 돌아보아라. 집에 갈 때까지. 그리고 너, 이제 앞으로 토요일 일요일도 없어. 무조건 도장에 나와서 수련해.”
“네?”
위소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표관장은 열쇠꾸러미를 가져와 키를 하나 빼서 위소에게 건네주었다.
“복사하고 다시 가져와. 허튼짓 한 번만 더 하면 그 때는 짤 없어. 그리고 너 혼자 사는 것도 문제가 있어. 기대하고 있어. 곧 짐 싸들고 집에 찾아갈 테니.”
표관장의 돌발선언에 위소도 놀랬고, 홍사범도 놀랬다. 둘 만의 공간이 깨지기 때문이었다. 표관장이 열쇠를 건네줄 때 박태일은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우리 집에 왜, 왜요?”
“왜는 뭐가 왜야? 넌 아직 미성년자이니까, 보호자가 필요할 것 아니냐. 방 하나 비워 둬.”
“그, 그건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참, 내 정신 좀 봐! 대회심사관 준비도해야 하는데! 정장한 벌 제대로 된 것도 없고……. 에이 씨, 내가 이러고 살아서 뭐해.”
표관장은 대충 얼버무리고 관장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복이 널려있는 옷장사이에서 낡은 양복을 한 벌 꺼내 옷솔로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위소는 무릎 꿇은 상태로 표관장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빠가 저랬다. 자기는 간편한 티 한 벌 사지도 않으면서, 위소에게는 수 십 벌의 정장을 사주었다.
위소는 한동안 표관장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토요일일요일은 수원바닥을 뒤져 원수들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 길이 막혀버렸다.
“뭐해? 눈 안감아?”
“아, 네…….”
위소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잠을 못자면 못 잤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야. 당신이 뭔데 우리 아빠 집에서 함께 살겠다는 거야.’
위소는 눈을 뜨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가족의 원수인 가면범인들이 사라지고, 자신이 씩 웃으며 앉아 있었다. 위소의 악한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주는 또 다른 자아였다. 진정한 상대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말, 위소는 실감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위소의 손톱이 빠지고 새로운 손톱이 돋아났는데, 그것은 곤충의 것처럼 날카롭고 딱딱했다. 위소는 다리의 털이 새삼 딱딱하게 느껴져 확인했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것은 털이 아니라, 곤충의 가시였다. 위소는 재빨리 도복으로 다리를 덮어 감추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좌하고 있지만 다리 전체가 따끔거렸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위소는 홍사범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표관장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관장님에겐 어떤 사명이 있나봐. 관장님 좋으신 분이셔. 화나면 불같아서 그렇지만……. 휴, 난 네가 그냥 학교를 갔으면…….”
“사범님…….”
위소는 홍사범의 말을 끊었다. 듣기 싫었다. 머릿속에는 몸에 돋아나는 가시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위소는 살짝 바지 밑으로 손을 넣어 가려운 곳을 긁으며 가시를 확인했다.
위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웬 한숨이야?”
“아니에요. 근데, 관장님께서 정말 우리 집에 쳐들어올까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표관장이 집에 쳐들어오면 몸의 변화도 변화지만, 그야말로 꼼짝 마라! 이니, 답답했다.
‘설마 쳐들어오겠어.’
위소는 그냥 하는 말일 것이라고 위안했다.
“괜히 하는 말씀이 아닌 것 같던데?”
“젠장.”
“성은아줌마라고, 너 한 번도 못 봤지? 가끔 도장에 찾아오거든. 그 아줌마랑 관장님이랑 옛날에 죽고 못 사는 사이였는데, 헤어졌다가 요즘 다시 만나.”
홍사범은 화제를 돌렸다.
“왜요?”
위소는 처음 듣는 얘기라 흥미를 느꼈다.
“당시, 관장님은 검도심사관들의 부정부패에 불만이 많았지. 사실, 이 바닥 더러워. 다 학연지연으로 이어져 있고, 정당하고 신성해야할 시합에서도 학연은 통해. 머리! 하고 분명히 들어갔는데도, 주심이 깃발을 안 들면 끝이야. 관장님은 그게 불만이었어. 결국 이사협회에 반기를 들었다가, 국가대표에서도 제외되었지. 그 뒤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어. 성은아줌마는 관장님 기다리다가 결국 라이벌에게 시집가버렸고.”
“그런데도 지금 만나요? 난 한 번도 못 봤는데요?”
“응, 지금도 서로 좋아하니까. 가끔 찾아오셔.”
“둘 다 웃긴다.”
위소는 표관장을 비웃었다. 고상한 척 하면서 불륜을 저지르다니.
“관장님도 불쌍하셔.”
“왜요?”
“협회에서 제명당하고 중국으로 떠났는데, 그나마 몸담고 있던 나선문도 망했다고 들었어. 오죽했으면, 모추용 그자에게 자존심 죽이고 협회로 다시 들어갔겠어.”
“모추용?”
“응, 지금 한국검도협회회장이자 문화부장관.”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요.”
“응, 표관장님 오랜 라이벌에 성은아줌마 남편이기도 하지.”
“아, 그렇게 되는 구나.”
위소는 표관장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 다 왔다. 내려.”
위소의 아파트 입구에서 홍사범은 차를 멈추었다.
“네, 고마워요.”
위소는 홍사범에게 인사하고 안전벨트를 풀었다. 바로 그 때였다.
“위소야, 잠깐만.”
위소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홍사범의 입술이 다가왔다. 위소는 꼼짝없이 당했다. 입술과 입술이 포개졌다.
위소는 몸이 굳어버렸다.
“왜, 싫어?”
홍사범은 위소의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 위소는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싫었나 보네. 미안.”
위소는 홍사범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첫 키스였다.
입술의 감촉이 너무도 부드러웠다.
“바보.”
홍사범은 위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소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자, 홍사범은 한숨과 함께 출발했다.
“야, 홍가연 무슨 짓을 한 거야! 낼 모레 애들 시합이다! 정신 차려라!”
홍사범은 운전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