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기무라 란코
위소의 첫 번째 타깃은 강일중이었다. 강일중을 이기면, 진검도시합에서 8강에는 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사실은 강일중 놈이 꼴 보기 싫었다. 밟을지, 밟힐지는 붙어봐야 아는 것. 위소는 싸우기로 결심했다.
위소는 강일중에게 정중히 대련을 신청했다. 사실, 키가 작은 박태일이 강일중보다 더 쉬어보였다. 하지만 박태일은 사사건건 시비는 걸지 않았다. 호의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없지만, 인간적이라면 인간적일까.
“위소야, 너 절대로 못 이겨. 하지 마.”
홍사범이 다리를 절며 다가와 말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간 넘어야 할 벽이에요.”
“너, 크게 다친다.”
홍사범은 위소가 걱정되었다. 실력 차이를 알기 때문이었다.
“비참한 날의 연속이로다!”
강일중이 뒤에서 벽에다가 대놓고 소리치고 있었다. 강일중은 위소의 ‘나선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합에서도 4강의 벽을 넘지 못해 속상해 죽겠는데, 애송이가 도전을 해오니 씁쓸했다.
박태일은 옆에서 웃었고, 강일중은 위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기, 저 녀석 있잖아. 송수천. 저 녀석 먼저 이기고 와. 그럼 상대해 줄게.”
송수천은 중학생이었다. 중학생치고는 제법 키가 크고, 감각이 남달라 유망주로 통하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위소는 강일중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송수천에게 갔다.
“한판 해줄래?”
위소가 부탁하자, 송수천은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송수천 역시 위소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 그만. 뒤로 물러 앉아.”
홍사범의 말에 모두가 훈련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 보호구를 벗고 뱅 둘러앉았다. 위소와 송수천은 중앙에 서서 보호구를 착용했다.
주심은 홍사범이었고, 부심 두 명은 강일중과 박태일이었다.
“앞으로.”
위소와 수천은 호면을 착용하고서, 도장 중앙에 마주보고 섰다. 두 사람 다 키가 비슷했다. 위소의 키는 178센티미터, 송수천의 키는 180이었다.
“상호간의 경례.”
두 사람은 주심의 지시에 따라 예의를 갖추었다.
“차려 칼.”
허리에 칼을 올린 상태.
“뽑아 칼.”
두 사람은 죽도를 세워 서로의 목을 겨누었다. 송수천은 검도중단자세로 위소의 목을 노렸고, 위소는 ‘수수여여’의 중단세를 잡았다. 일보전진과 함께 사선으로 목을 베어버릴 작전이었다.
그 자세는, 송수천이 처음 보는 것이기에 이상했지만, 어쨌든 허점투성이였다.
“흥!”
하며 그대로 목을 찔러 들어오는 순간, 위소는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읽을 수가 있었다. 위소의 눈썰미는 상대의 도약부터 눈치 챘고, 그것이 실인지 허인지조차 구분 가능했다. 위소는 옆으로 피하며 칼을 ‘수수여여’로 내려쳤다. 진검이었다면 목부터 시작해 가슴이 잘려나갈 정도로 정확하고 위력적인 일격이었다.
“몸통!”
주심이 백기를 들며 소리쳤다. 이어서 부심 두 명의 청기도 올라갔다. 송수천은 뭐에 홀린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뒤로 물러섰다.
두 번째 판.
위소는 똑같이 ‘수수여여’의 중단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왼팔이었다. 송수천은 무리수를 둘 수가 없었다. 한 점을 더 빼앗기면 패배이기 때문이었다. 송수천은 칼끝을 뱅뱅 돌리며 몸을 움츠렸다. 여차하면 튀어나갈 기세였다. 그러나 위소는 꼼짝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것은 송수천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마음이 급해진 송수천은 먼저 움직였다. 위소의 오른팔을 노리고 튀어나온 것이다. 사실, 위소는 오른팔을 상대에게 내주고 있었다. 배짱 있으면 잡아먹어보라는 자신감이었다. 부심을 보고 있는 강일중과 박태일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게임아웃이라는 의미였다.
송수천의 칼이 위소의 오른손목을 향해 날아오는 그 순간, 위소는 ‘가가여여’로 바꾸어 9단계 도약을 이용해 상대의 머리를 내리쳤다.
머리를 얻어맞은 송수천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호면을 착용했지만, 충격이 엄청났다.
“머리!”
주심의 깃발이 올라갔고, 부심의 깃발이 모두 올라갔다. 강일중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송수천에게 깃발을 넘기고 보호구를 착용했다.
관장실에서 표관장이 팔짱을 긴 상태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뽑아 칼.”
두 사람은 상호간의 경례 후, 칼을 뽑아들었다. 강일중은 장신에 걸맞게, 상단(*상단, 검을 세워 든 자세)으로 위소의 머리를 노렸다. 위소는 ‘가가여여’로 강일중의 손목을 노렸다. 위소가 보기에 강일중의 머리는 저기 눈 위에 있었다. 칼을 뻗어도 닿을지 의문이었다.
위소는 움직이지 않았다. 위소는 자신의 눈썰미를 믿었다. 제 아무리 장신이라고 해도, 조건반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도약하려면, 그만큼 움츠려야 한다. 머리를 노리고 칼을 내리치려면, 그 만큼 쥐어짜야 한다.
위소의 눈썰미는 적중했다. 움직임이 보였다. 빈틈을 만들기 위해, 떡밥을 던지는 허위공격과 실제공격의 구분이 확실했다.
허와 실의 구분.
박태일은 위소의 발전에 혀를 내둘렀다. 일중이 질 것이라고 예감했다. 그것은 강일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슬링선수들은 서로 손을 마주잡는 순간 감이오고, 씨름선수들은 샅바를 붙잡고 일어서는 순간 감이 온다고 했다. 검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칼을 겨누고 마주하는 순간, 감이 온다. 이놈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말이다.
비슷한 실력일 때, 결국엔 하수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검도다. 강일중은 위축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선제공격을 날렸다. 위소는 그것을 받아냈다.
정확하게 보고, 정확하게 쳐내버렸다. 강일중의 죽도를 받아친 다음, ‘가가여여’로 손목이 아닌 머리를 내리쳤다.
“머리!”
주심의 백기가 올라갔고, 동시에 박태일의 청기가 올라갔다. 송수천은 멍한 상태로 청기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가 주심이,
“뭐야?”
라고 말하자 청기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머, 머리!”
강일중은 고개숙인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비참한 날의 연속이었다. 강일중은 표관장을 향해 원망의 눈빛을 보내다가,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도장분위기는 순식간에 침체되었다. 박태일도 말없이 뒤돌아섰다. 그 속도 모르는 한 중학생수련생 한 명이,
“보호구 벗고 진검도하는 거 보고 싶다.”
라고 말했을 때 박태일은 깜짝 놀랐다. 시합에서 머리가 몇 번이고 터져 아직도 얼얼하고 상처투성인데, 진검도시합을 할 수는 없었다. 강일중은 탈의실에서 나오지도 않고, 박태일은 얼버무렸다.
“위소, 다음에 나랑 한 판 하자. 내가 머리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서.”
“네. 감사합니다.”
위소도 그제야 호면을 벗을 수 있었다. 홍사범은 위소의 천재적인 습득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강일중의 벽을 넘었지만, ‘나선탄’의 벽은 넘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정체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오히려 실력이 퇴보하는 것만 같았다.
답답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나선도장에 일본소녀가 찾아왔다. 붉은색개량기모노를 입은 소녀가, 자신의 신체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체크무늬 여행 가방을 끌고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홍사범은 아이들을 가르치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특유한 옷차림과 큰 여행가방 때문에 위아래를 훑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 여기가 나선도장 맞습니까? 표운삼사마 계십니까? 표운삼사마 찾아왔습니다!”
일본소녀특유의 덧니와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표관장을 찾고 있었다.
“관장님! 나와 보세요!”
홍사범이 소리치자, 표관장이 밖으로 나왔다.
“누구십니까?”
“하이, 표운삼사마 되십니까? 아버지께서 보내셔 왔습니다.”
표관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버지? 니 아버지가 누군데요?”
“제 아버지 이름은, 아니 성함은 성은 양씨에, 이름은 도자 정자입니다.”
소녀는 한국말을 꽤 잘했다.
“아, 하하!”
표관장은 소녀의 정체를 알아채고 큰 소리로 웃었다.
“와, 하하! 정말 보내주셨네. 기… 무라……. 뭐였더라? 아이고, 이거 미안, 미안.”
“기무라란코입니다.”
“아, 맞다. 기무라란코. 두 분은 잘 지내십니까?”
“물론입니다. 아버님어머님 모두 잘 지내고 계십니다.”
위소는 그들을 무시하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나선탄’의 기본적인 요령자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한눈팔 시간이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표관장은 더 이상 지도를 해주지 않았다.
언젠가 홍사범이 집에 찾아와 세탁기를 돌려줄 때, 위소는 물었다.
“스스로 터득하길 바라고 있나요? 왜 요령을 알려주지 않는 거죠?”
“그러게, 나도 의외야. 그래도 넌 복 받은 거야. 난 ‘가가여여’조차도 배우지 못했어.”
“저기, 그러지 말고, 힌트 좀 줘 봐요.”
“힌트? 내가 뭘 알아야 힌트를 주지.”
위소는 답답했다. 바로 그 때, 세탁기에서 빠져나온 물이 바닥에 가득 찼다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배수구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위소는 깨달음을 얻었다.
“중심은 움직이지 않아. 난 그동안 중심을 회전시키며 안 된다고만 했어!”
“무슨 말이야?”
“나선의 회전은 파고들잖아요? 중요한 것은 중심의 회전이 아닌, 외곽의 회전력이었어요.”
그 때 위소는 번개를 맞은 듯 머리가 반짝였다.
윙, 회전과 함께 타격을 줄 때 ‘가가여여’의 법칙은 변함이 없었다. ‘일검론’ 이었다.
한 번 가름으로 법이 생겨난다는 검학의 기본이자 정수.
위소는 그 점을 상기하며 ‘나선탄’을 반복했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 회전보다는 어깨자체의 회전력을 살리는데 그 중점을 두었다. ‘나선탄’의 회전력은 손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서 시작되어 손목이 그 중심점이 되는 것이었다.
위소의 어깨는 큰 동작으로 움직였다. 회전력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위소는 조금씩 요령을 터득할 수가 있었다.
‘좀더, 빠르고 정확해야 해! 원이 너무 크면 동작도 느리고 허점도 드러나.’
위소는 어깨회전의 크기를 줄여나갔다. 그것은 하나의 틀이 되었고, 그 틀은 변화 없이 작고 세밀해졌다. 그리고 빨라졌다.
위소는 뭔가 되고 있음을 확신했다. 죽도가 회전과 함께 타이어타격대의 심장부위를 찔렀을 때 그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구멍이 뻥 뚫려버린 것이었다.
“해냈다!”
위소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나선의 회전처럼 볼트에 뚫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표관장이 뚫은 것보다는 작은 구멍이었지만, 그래도 흡족할만했다.
“해냈어! 해냈어!”
위소는 정말 기뻤다. 그동안 손에 물집이 터지고, 아물고를 반복했다. 굳은살이 생기다 못해 다시 터졌고 어깨는 탈골된 것처럼 통증에 시달려왔었다. 위소는 다시 한 번 더 시도해보고 싶었다. 해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시 죽도를 잡고, 타이어타격대 앞에서 숨을 들이마신 그 때였다. 위소는 뒤돌아보았다. 일본소녀와 표관장이 서 있었다.
“자, 란코양. 이 아이입니다.”
위소는 두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하이,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위소는 뭘 부탁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시하고 뒤돌아서려다가, 깜짝 놀랐다.
기무라란코! 레고소녀!
“위소, 인사해라. 앞으로 6개월 동안 너의 체력을 담당할 체력코치다. 이름은 기무라란코. 나선문의 재건을 위해 힘쓰고 계시는 분들께서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큰 가봐. 어깨가 무겁겠지만, 잘 해내리라 믿는다.”
위소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체, 체력코치요?”
순간, 위소는 홍사범의 얼굴을 보았다. 홍사범의 인상이 좋지 않았다. 위소는 얼떨결에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위소와 일본소녀는 오래도록 눈을 마주쳤다. 일본소녀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위소는 소녀가 신기해 보고 또 보았다. TV를 통해 보았을 때와 똑 같았다. 하지만 그 때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에, 에취!”
그녀는 재채기를 자주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자, 오늘은 회식이다! 삼겹살 한 번 먹어볼까?”
표관장은 일본소녀를 관장실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위소는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수련을 끝내야만 했다. 홍사범은 삼겹살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리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위소는 보호구를 정리하며 관장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표관장이 일본소녀로부터 낡은 나무상자를 건네받고 있었다.
“이게 무엇인가?”
“저도 모릅니다. 아버님께서 잘 보관하라고 전하셨습니다.”
“나에게?”
“네.”
표관장은 그것을 열어보지 않았다. 나무상자는 캐비닛 안으로 들어갔고, 자물쇠가 채워졌다.
위소는 그것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그것은 박태일과 강일중 역시 마찬가지였다.